나의 이야기

5번 지식의 집착에서 초연한 행동가로

한국소금 2018. 1. 31. 19:23

지식의 집착에서 초연한 행동가로!

 

                                                                                                                                 한국염

 

에니어그램 5번 유형은 관찰형으로서 탐구자의 특성을 갖고 있다. 5번 유형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사물 모든 것들에 대해 지적 호기심이 있고, 알아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탐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항상 뭔가를 배우고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삶도 탐구의 대상이다. 이런 특성을 갖고 있는 5번의 격정은 인색, 기피는 공허, 함정은 지식, 회개는 섭리. 덕목은 초연이다. 5번은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개발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지식창고가 되길 원하는데 이들이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5번의 격정은 인색이다. 심리적으로 공허한 것을 피해 무조건 채워 넣으려는 경향이 있고 자신의 안정감을 위해 그 채워넣은 것을 남들과 나누지 않으려고 하는 인색함이 있다. 5번의 기피는 공허다. 지식창고에 쌓아둔 것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은 비움에 대한 불안과 공허 때문이다. 차 있어야 공허하지 않으니 원하는 것을 더 채우려 하다 보니 탐욕으로 이어진다. 5번이 공허하지 않기 위해 채우려는 것은 주변 상황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는 지식이다. 얻은 정보를 탐구해서 더 많은 지식으로 채워 넣으려는 함정에 빠진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 이해, 통찰이다. 5번 유형이 안전감과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서 완전하게 지식을 쌓아 전문가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완전히 통달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에 열중하고 거기서 편안함을 얻는다. 그러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것에 대해,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것에, 기존의 학설을 뒤집고 파고 전문가가 될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능하지 못하다.

 

5번 유형의 성서적 인물은 요셉, 도마, 니고데모다. 요셉, 도마, 니고데모 세 인물을 통해 살펴보는 에니어그램 5번 유형은 부모와 양가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부모의 관계에서 비롯된 성품으로 관찰을 잘하고 생각이 많고 궁금증 또한 많아서 질문을 잘한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고 생존을 위한 관찰습관으로 정부와 지식을 추구하게 된다. 요셉의 경우에서 드러나듯이 형들과 나이 차이가 많기 때문에 관계가 소원하지만 형들을 관찰해서 아버지에게 고자질 해 미움의 대상이 되고, 관계소원으로 인해 혼자 있게 되고 혼자 있으니 주변을 관찰하게 되는 연결고리에 있게 된다. 또한 그 속에서 자기 세계를 쌓다보니 보통 사람이 추구하는 세계가 아닌 현실과 다를 세계를 꿈꾸게 된다. 요셉은 관찰을 통해 형들이 자기를 경계하고 지재하고 있는 현실을 파악하고 이와는 다른, 자신이 형들을 지배하는 세계를 그리게 되고, 그것은 꿈으로 표현된다. 어린 요셉은 건강한 사회적 5번인 것 같은데, 지혜로운 사람으로 보이고자 자기가 꾼 꿈을 혼자 속에다 쌓아두지 않고 형들과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는 데 그 결과 더 미움을 받게 되어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가게 된다.

5번의 대인관계는 관찰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악하려고 한다. 자기가 관찰해서 얻은 결론이나 정보를 확신이 들 때까지 탐구해서 분석해 결론을 내야하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받은 정보도 일단 의심이나 회의를 하기 때문에 실증적으로 확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실증주의자 5번의 경우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지식을 쌓고 그걸 자산으로 삼다보니 내놓으면 공허해저 공허를 기피하다 보니 인색해진다. 공허를 채우기 위해 지식을 비롯해 원하는 것을 채우려다 보니 탐욕으로 이어진다. 5번에게 공허-인식-탐욕은 한 연결고리에 있다.

실증주의자 5번 유형의 특색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 도마와 니고데모다. 도마는 부활한 예수를 만나보았다는 제자들의 말에 내 눈으로 보고 못 자국을 만져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소!”라고 한 말 때문에 의심 많은 도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흔히 도마를 의심많은 제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나는 실증주의자라는 말을 쓰고 싶다.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야 믿게 된 도마의 태도는 어떤 정보에 대해 일단 의심하고 그 정보를 본인이 확인을 해야 인정하는 5번의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 밤중에 예수를 찾아와 대화를 하는 니고데모의 모습은 관찰, 생각, 분석, 이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망설임, 회의, 걱정, 신중함을 거쳐야 행동을 보이는 5번의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니고데모는 바리새파 지도자로서 유대의회의원이었다. 그는 예수가 랍비로서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 그 정보도 예수가 행한 표적으로 입증된 정보다. 이 본문에는 니고데모가 하늘나라에 대한 질문이 드러나지 않지만 문맥상으로 보아 하늘나라에 대한 질문을 한 것 같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자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반문한다. ”어떻게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느냐?“, 이에 예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5번의 함정을 잘 드러내준다.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는데 너희가 믿지 않는데, 어떻게 하늘의 일을 알겠느냐?“ 다른 이들이 아는 것을 말해도 5번은 믿지 않고 본인에게 실증이 되어야 믿는 타입이며, 세상 사람들이 아는 보편화된 지식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하늘의 것, 다시 말해 다른 차원의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5번 유형이며, 그 다른 지식도 정보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실증해야 믿는다.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는 지식과 정보를 쌓고 그 얻은 정보를 탐구해서 확인하고 그 확인한 것을 또 확인해야 신념이 되는 5번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할 때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한 말, “우리의 율법으로는 ,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거나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거나 하지 않고서는 그를 심판해서는 안된다.”하는 말은 5번의 특색, 들어보고, 알아보아야 하는 것이 5번의 지식추구 과정이다.

   

이런 실증주의적 지식창고인 에니어그램 5번 유형이 완전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회개해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자가 되면 지식의 함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지식을 이웃과 나누며, 지식에 의존하던 삶에서 결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가가 된다. 도마는 부활한 예수를 만난 후 실증주의 함정에서 벗어나 예수의 제자로서 복음을 위해 행동한 순교자가 되었다. 니고데모는 예수를 만나 자기 지식의 한계를 깨닫고 예수의 비밀제자가 되었다가 박해를 당할 것을 감수하고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안치는 일을 하였다. 5번이 통합되면 생각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격정과 기피, 함정을 벗어나 하나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초연해진 에니어그램 5번 유형의 전형은 이집트로 끌려간 요셉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요셉은 보디발의 종이 되었으나 그가 가진 풍부한 지식을 살려 보디발의 집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었고, 지각있는 관찰자로서 그의 능력으로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고,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믿음으로 덕목을 살려 초연해 져 공포를 이겨내고 그동안 쌓은 지식과 관찰, 탐구로 얻은 예지로 바로왕의 꿈을 해석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그 곳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크신 섭리, “오늘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를 깨달으며, 지식창고에서 인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용서하고 화해하였다. 5번이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면 위기에서도 초연해질 수 있다는 것을 요셉이 가르쳐 준다.


요셉, 도마, 니고데모에게서 배운다.

나도 어릴 때 꿈쟁이 요셉같은 경험을 많이 하였다. 꿈을 잊지 않고 그 꿈이 현실화되는 경험, 데자뷰 현상을 많이 체험하기도 한다. 자라서는 남의 꿈이나, 손금, 성명철학 등에 심취해 이에 대한 지식을 쌓고 그에 근거해서 다른 이에게 해석해주기도 하였는데, 직관이 절반, 쌓은 지식이 절반이었던 것 같다. 나도 5번처럼 지식을 쌓거나 정보를 수집하는데 관심이 많다. 호기심도 많아 어떤 사안에 대해 질문도 많고 납득될 때까지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이 퀘션 마크였다. 그 질문도 괴팍한 질문이 많았고. 질문이 생기면 탐구하기 보다는 남에게 물어 상식을 쌓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5번과 달리 내 경우에는 입수된 정보와 지식을 남과 공유하는데 더 기쁨을 느끼는 편이다. 어른이 되어 별명이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이 역시 탐구가 아니라 레이다 망처럼 다 얻어걸리는 그런 정보로 얻어진 상식과 기억력 때문인데 아는 것을 퍼주는 게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나는 5번과는 달리 70% 알면 100% 남에게 과시하는 성격이다. 지식추구라는 점에서는 맥을 같이 하지만 5번과는 확실히 달라 지식으로 인한 격정이나 기피, 함정 등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그럴 수 있구나, 그렇구나! 하는 정도이지 내 격정과 기피와는 거리가 멀다.

   

에니어그램 5번에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5번의 덕목 초연이다. 5번이 회개를 해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게 되면 지식에 의존하던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유연하며 초연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초연이란 적어도 내 생각에 세상과 등진 그런 듯이 아니라 세상이 무어라고 해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홀연히 자기 길을 가는 것을 말한다. 성서의 인물 에니어그램 5번 요셉, 도마, 니고데모는 지식의 집착에서 벗어나 앎을 실천하는 지경으로 나갔다. 초연의 경지에 다달으면 죽음도 두렵지 않고, 결국 해야 할 일을 위해 목숨까지도 포기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사회에 보면 행동파들이 많은데 위기에 처하면 쉽게 변절하는 모습을 본다. 초연이란 덕목을 쌓지 못한 때문인데, 나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성서의 인물을 통해 보건대 초연이란 덕목을 쌓을 경우 회개했다가 또 격정으로 빠지는 악순환을 쉽게 되풀이하지는 않을 듯하다. 5번의 덕목 초연집착하지 않음에서 비어있음의 경지로 나가는 것을 뜻하는 듯한데, 나에게 이 덕목이 덕목이 되려면 홀로 초연함이 아니라 사회적 변혁, 진리를 위한 창조적 힘과 연동이 되어야 의미가 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허무함을 느끼고 공허가 아니라 자유를 느끼는 것은 좋으나 그 자유가 이웃을 위한 자유로 나가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즉 초연함으로 진리를 추구하며 수행하던 승려들과 수녀들이 베트남 독재에 항거한 승려와 수녀들, 불교를 개혁하는데 앞장선 한국의 비구니들의 행위를 말한다. 초연함에서 비롯된 정의를 향한 행진과 거룩한 분노에서 비롯된 항거중 어떤 것이 힘이 더 있을까? 궁금하다. 초연함은 내가 안 되는 것 중의 하나인데, 나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그 초연함의 덕목으로 타인과 자연의 고통에 감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5번의 기도

공허를 피해 내 안에 지식창고 만들었지요.

아는 것이 힘이라 여겨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묻고 또 묻고

언제나 모자란다고 여겨 자꾸자꾸 채워 넣지요.

창고를 비워야 새 것을 넣는데

비우는데 인색해 창고는 늪이 되었지요.

어느날 섭리로 사는 것이 길임을 깨달아,

내 집만 키우는 달팽이에서 벗어나

나를 개방하여 이웃과 소통하며,

현실을 심오하게 통찰하되

완벽지식의 함정에서 벗어나 비전을 공유하는 삶으로,

냉철한 이성을 갖되

지적 호기심과 탐욕의 외부 관찰자로 머무는 데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동가로,

초연하게 고요한 마음을 갖되

고민만 하는 사색가에서 행동하는 실천가로

마침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초연히 나를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은총이 오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