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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를 만난 사람들

한국소금 2019. 3. 25. 19:50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오늘 우리가 읽은 성탄절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맨 처음 이야기는 예수의 부모, 마리아와 요셉에 대한 이야기다.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메시야의 어머니가 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당시 로마의 점령 하에서 억압받으면서 자신들을 구해줄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는 백성들의 열망을 알기에 처녀의 몸으로서 예수의 어머니가 되는 길을 목숨을 걸고 수락한다. 또한 요셉은 정혼녀가 임신한 것을 알면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리아와 뱃속의 아기를 받아들인다. 민족의 고난 앞에서 당시의 사회적 관습을 뛰어넘은 마리아와 요셉의 결단을 통해서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이다. 사회적 관습을 뛰어넘는 사람, 민족의 고난에 자신을 일치하는 사람,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새 시대, 구원의 담지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예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어느 교회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이야기 연극을 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진행되어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를 데리고 빈 방을 찾는 대목이 나왔다. 각본대로 요셉이 말했다. “빈 방 있습니까?” 여관주인으로 분장한 몇 어린이들이 대답했다. “방 없어요.” 그런데 한 아이가 대본과 다르게 외쳤다. “’방 있어요. 제 방을 내드릴게요. 여기로 오세요.” 아이는 울면서 마리아와 요셉을 끌어 당겼다. 연극은 원래 대본과는 다르게 그 아이 집에서 예수님이 탄생한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되었다. 비록 성서의 이야기와 다른 내용의 연극을 보아야 했지만, 그날 그 교회에서 그 연극을 본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고 한다.

  

임산부가 아기를 마구간에서 낳는다는 것은 얼마나 사회가 메말랐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무도 방을 내어 주지 않아서 예수께서 마구간에서 나시게 된 사건을 성서는 담담하게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메시야를 다윗왕가의 후예로서 왕실에서 나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성서는 메시야는 화려한 왕실이 아니라 초라한 마구간에서 나셨다고 선언한다.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는 사람들이 방을 내어주지 않아 버림받아 밀려 나서 마구간에서 나셨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마구간은 비천함과 버림받음의 상징이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는 가난하고 무력하고 버림받아 고독한 곳에 오셨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려면 바로 이런 곳에 가야 예수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방을 비워 두지 않았다면!

  

세 번째 이야기는 목자들이 천사가 전하는 말을 듣고 가서 메시야를 만났다는 이야기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목자들이 밤에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는데 천사가 나타나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알려주었고 천사들이 준대로 찾아가 아기로 오신 메시야를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중요한 점이 있다. 하나는 하필 성탄의 기쁜 소식이 맨 먼저 목자들에게 전해졌을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천사가 목자들을 향해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했을 때, 누가 주께서 기뻐하시는 이들인가 하는 것이다.

첫째 왜 목자들이 예수 탄생의 첫 번째 청취자가 되었을까? 그것은 당시 목자들의 삶의 정황 때문이었다. 당시에 양을 치는 일이란 돼지치기처럼 천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양을 치려면 안식일에도 양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킬 수 없기에 좋은 직업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거기에다 밤에 양을 지키는 일이란 엄청 고달픈 일이다. 남이 밑바닥일이라고 치부하는 그런 속에서 밤중까지 일해야 먹고 사는 사람들, 이런 고달픈 일을 하는 목자들에게 천사의 메시지가 전해졌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목자들이야 말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고 또 메시야가 필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점령지로서 정치적으로 압제당하고 경제적으로 수탈을 당하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중들은 자기의 지도층으로부터도 억압을 당하는, 이중적인 억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메시야가 오셔서 평화의 새 날을 열어주시는 꿈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메시야가 나셨다는 소식이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다.

 

그럼 왜 목자들이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인가? 목자는 힘들게 살면서도 그 일을 통해서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한다. 목자는 이리에게서 양을 지키는 일을 한다. 양을 돌보면서 비록 자기의 직업이기는 하지만 목자는 그 양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목자들의 헌신을 통해서 양들이 생명과 평화를 보장받는다. 목자들은 험한 이리떼 속에서 양의 생명을 지키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메시지가 울려 퍼진다. 이런 사람들을 천사들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이라고 칭송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평화가 올 것이라고 선언한다. 목자들의 수고를 통해서 양들은 생명과 평화를 보장받듯이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이란 세상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아도 하찮은 존재로 볼지라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힘없는 이들의 생명과 평화를 지켜내는 사람들! 일상적인 삶속에서 생명을 돌보고 키워내고 평화를 일구어 내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께서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네 번째 이야기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면서 때의 징조를 살피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하늘을 보며 시대의 징조를 살피다가 한 큰 별을 보게 된다. 그 별을 보고서 그들은 새로운 왕이 나심을 알게 되고 그별을 따라 와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동방박사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예수의 나심을 기뻐하는 이들과 싫어하는 이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기 예수는 어떤 이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불길한 소식이 된다. 헤롯왕처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새로운 메시야의 나심이 자기에게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꺼려하고 막으려 한다. 입으로는 자기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그 메시야에게 경배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헤롯은 자기 왕권이 뺏길까봐 두 살 아래의 어린 아기들을 다 죽여 버리는 대학살을 감행하고 만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말하고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현실 땅만 쳐다보고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다. 사학법이 개혁되는 것을 원치 않고 국보법이 폐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말로는 새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현실에 박고 있는 발을 한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잃게 될까봐!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아기 예수의 나심을 기뻐한다고 하면서 때의 징조를 외면하고 땅만 내려다 보면서 현실적 이익만 탐한다. 이렇게 새로움을 싫어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없다. 동방박사들처럼 하늘의 징조, 시대의 징조를 살피고 새 시대를 향한 희망을 안고 길을 떠나는 사람들만이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있다.

  

누가 예수를 만날 수 있을까? 길을 떠난 사람들이다. 목자들이 탄생소식을 듣고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박사들이 하늘의 징표를 보고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없었다. 오늘 2005년에도 마찬가지다. 새 시대, 평화에 대한 꿈을 안고 길을 떠나는 사람만이 2005년에 오신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있다. 길 떠날 차비를 하자.


20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