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서 기쁜 선물
받아서 기쁜 선물
한가위에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받는다. 선물을 받으면 다 기쁘다고 하지만, 사실은 선물을 받을 때 기쁜 선물이 있고 별로인 선물이 있다. 때로는 받고 싶지 않거나 부담이 되는 선물도 있다. 형식적인 선물도 있고 마음이 담긴 선물도 있다. 이렇게 받지 않지만 할 수 없이 받은 선물 때문에 요즘은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은 아름다운 재단에 기증해서 그것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아름다운 풍속도 새로 생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정말 주어서 기쁘고 받아서 즐거운 선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정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주는 선물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는 선물을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받고 기뻐하신 선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본문의 내용은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고 다른 복음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것이다. 마태복음26: 6-13에는 거의 내용이 똑같게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12:1-8에는 주인공과 장소가 다를 뿐 중요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즉 어느 여자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깨트려 예수께 부었다. 이것을 보고 몇 사람이 분개하여 “ 왜 그렇게 비싼 향유를 낭비하느냐? 그것을 팔면 삼백 데나리온을 받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우어 줄 수 있을 터인데.” 이러한 말을 듣고 예수가 오히려 그 여자를 칭찬하였고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의 이야기가 전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이다.
예수께서 받으셔서 기뻐하셨고,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그 여자의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칭찬을 받은 이 여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선물할 때 알아야 하는 점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첫째, 선물 받는 이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분문의 전후를 살펴보면 예수는 이 때 매우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다. 예수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결단하고 제자들에게 곧 자신이 붙잡혀 죽을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무교절 이틀 전에 대제사상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를 잡아 죽일 궁리를 하고 무교절 축제기간만을 피하기로 한 상태이다. 이 여인이 향유를 바른 후 얼마 되지 않아 예수가 겟세마네에서 공포와 번민에 싸여 밤을 새며 기도한 것을 보아도 예수가 얼마나 마음으로 힘든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이러한 예수를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누가 높아질 것인가 하는 자리다툼만 하고 있는 처지에서 이 여인은 예수의 장례를 위해 미리 향유를 부었으니 예수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그의 고통에 함께 한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비싼 것을 낭비하였다고 하더라도 칭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선물은 자신의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여인에 대해서 마가복음에는 자세한 기록은 없다. 요한복음에는 마리아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가와 마태에 모두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명확하게 마리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여자의 생활수준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예수를 따라다닌 분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분개한 것을 보아도 이 여자가 3백 데니리온 나가는 향유를 준비하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이니 3백 데나리온은 당시 건강한 노동자가 300일을 일해서 받는 삯으로 특히 여성으로서 그것을 준비한 것은 보통 정성이 아니라고 본다. 이 여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죽음을 앞두고 마음에 고통을 많이 받던 예수께서도 이렇게 최선을 다해 준비한 선물을 받고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셋째, 마음에 아까움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비싸고 고귀한 선물을 남에게 할 때는 괜히 생색을 내려하고 또 아까운 마음도 들게 된다. 상대편에게 분명히 그 비싼 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이 여인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그 비싼 나르드 향유를 든 옥합을 깨트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이 여인은 예수가 곧 죽을 것이고 마음에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자신이 가진 고귀한 옥합을 아낌없이 깨트린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예수를 진정 사랑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위였다. 그래서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를 가장 깊이 사랑한 마리아를 그 주인공으로 변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여인에 반해 다른 사람들은 향유의 가치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러한 여인의 행동을 낭비라고 보고 그것을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일생 동안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눈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 먹을 양식이 없는 이들의 입장에서 삼백 데나리온은 너무나 큰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의 행위는 알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물에 대한 본질을 모르는 천박한 마음에서 비롯된 분개이다.
받아서 기쁜 선물의 모범은 자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이다. 예수는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 하면서 주신 사랑의 선물은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보관해 두라고 주시는 게 아니라 서로 나누라고 주시는 것이다. 쌓아두면 쌓아둘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어진다.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나누는 방법을 제대로 알게 된다. 하나님은 행위의 양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가지고 우리의 일을 수행하였는가로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나누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누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소망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선물로 준 테레사는 받아서 기쁜 선물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러분이 여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필요 없습니다. 쓰고 남은 것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겸손한 체하는 태도나 동정심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사랑과 인정입니다. 싫증내지 말고 주십시오. 그런데 남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상처를 받을 때까지, 고통을 느낄 때까지 주십시오.”
20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