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감사의 눈으로 보자.
믿음과 감사의 눈으로 보자.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을 구분하는 두 가지 예가 있다. 음료수를 마시다가 반잔이 남았을 때, 부정적인 사람은 ‘겨우 반밖에 안남았다.“고 푸념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한다. 작은 것 같은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삶의 질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성서는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사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믿음 장‘으로 불리우는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모두 불가능 속에서 가능성을 꿈꾸며 희망을 가지고 삶을 개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들이 바로 믿음이 있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도 잘 웃어서 ‘웃는 목사’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 레이크 우드 교회의 담임목사인 ‘죠엘 오스틴’목사는 “믿는 대로 된다”(한국어 번역은 긍정의 힘)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의 앞 부분에 늘 최악의 상황만 그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너무나 잘 아고 있기에 축 처진 어깨로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눈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고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미래가 암울해 보여도, 낙심하고 절망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 희망의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인 태도로 살 것을 제안하면서 그는 ‘믿음의 눈으로 보라’는 제목 하에 감사하는 삶의 기적을 소개하고 있다. 감사하는 삶이 매일을 기적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용 써봐야 뭔 소용이 있겠어?” 이렇게 절망스러운 생각이 들 때, 잠깐! 용 써서 소용이 있을지 누가 아는가? 희망을 품어서 최소한 손해 볼 건 없지 않은가? 하고 사고의 전환을 할 것을 권유하면서 긍정적 사고를 통해서 삶을 변화시킨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다.
40후반인 브라이언은 세상이 무너지고 무거운 짐이 어깨를 짓누르는 상황에 빠졌다. 사업은 부도났고 가정은 박살났으며 몸도 갈수록 나빠졌다. 이전에는 엄청 잘 나갔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쁨도 평안도 열정도 없었다. 죽지 못해 산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어느 날 브라이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가 말했다. “사랑하는 친구, 부정적인 면에서 눈을 거두게. 잃어버린 것을 보지 말고 남은 것을 보게.” 그는 브라이언이 한 걸음 더 나아가가길 원했다. “상황이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믿게. 자네는 그런 복을 받을 만하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당신을 깊이 사랑하니깐.”
친구의 말에 브라이언의 정신이 깨어났다. 그는 친구의 조언을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브라이언은 삶의 패턴을 새롭게 했다. 매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감사한 이유를 열 개씩 쓰고 틈만 나면 그것을 명상했다. 그의 이런 습관은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고 몇 달 동안 지속되었다.
브라이언은 마음의 프로그램을 다시 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낡고 부정적인 습관을 깨버리고 믿음의 태도를 기르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먼저 기쁨이 돌아왔다. 건강과 활력이 그 뒤를 따랐다. 곧 일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끊어졌던 관계도 회복되었다. 무엇보다도 브라인은 삶을 되찾았다. 브라이언의 마음은 희망과 승리로 가득 찼고,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비전이 그를 움직였다. 그러자 인생의 방향이 180도 바뀌었다.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 순간부터 기뻐하는 삶이 시작되었고, 잃어버리거나 과거의 실수, 실패가 눈에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긍정적인 삶은 감사하는 삶이다. 주신 것에 대한 감사는 기본이다. 고난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게 신앙의 극치다. 하박국은 나라가 전쟁으로 황폐하고 위기에 처해있을 때,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군의 내습을 망대에서 지켜보면서 전란에 조국이 짓밟혀 곡식을 돌보지 못해서 열매 맺지 못하고 가축들이 굶어죽는 참상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회의에 빠졌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한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하는 것이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한 그는 소리 높여 외쳤다. “모든 것이 없을 지라도 나는 주 안에서 기뻐하련다!” 시편 23편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원수 앞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무서울 것이 없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일반 사람과 삶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남들이 다 불가능하다고 하는 속에서도 가능성을 창조해낸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고하고 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말하거니와 다시 기뻐하십시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마음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주실 것입니다(빌립보 4,4-6).
감사할 여건이 안 되는데 어떻게 감사할 조건을 찾느냐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고난을 당할 때, 고난이 주는 고통과 어려움 때문에 탄식도 하고 불평을 한다. 또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회의도 하고 반발을 하게 된다. 자포자기하고 절망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나에게 부닥치는 고난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고 희망의 하나님임을 믿는, 신앙의 눈으로 볼 때만이 삶에서 감사의 동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나님께 소망을 거는 자는 역경 속에서도 감사할 것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감사하는 마음은 삶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한다. 삶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날마다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감사하는 삶을 회복하는 것이다.
20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