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들의 사색터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한국소금 2019. 3. 26. 01:10

내 잔이 넘치나이다

 

사람만이 매듭을 지을 줄 안다고 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1년을 단위로 매듭짓는 것도 인간뿐이고, 그것은 인간의 지혜의 소산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매듭을 지을 때마다 사람은 지나간 길을 돌이켜 봅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애틋한 향수, 마음을 저리게 하는 미련, 때로는 가슴에 사무치는 후회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이 펼쳐지는 또 다른 한 해에 대한 기대와 불안에 마음 설레기도 합니다.

여름은 가을로 이어지고, 가을은 겨울을 부르고, 그리고 겨울은 또다시 봄을 잉태합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변해 가는 한 해와 함께 우리도 변해갑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격동의 풍랑이 숨 돌릴 사이 없이 우리네 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한해였습니다. 한미FTA, 평택 미군기지사태, 핵문제로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와 세계정세, 조류독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정치권의 행태, 삼보일배를 해가며 살리려 했던 새만금은 뚝이 막아지고, 돌이켜보면 편안한 날보다는 불편한 날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도 끝은 있다고 말했지만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은 해결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일보다는 실망을 주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실망이, 우리의 욕심 때문일까요?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크리스마스에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5월의 꽃 잔치 때 눈이 내리기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한해를 마감하면서 왜 이렇게 허전할까요? 도대체 무엇을 기대했기에 우리 마음이 이다지 헛헛합니까? 무척 바쁘게는 살았는데 막상 이루어낸 것은 없기 때문일까요? 한 해를 마감하면서 어느 분이 보낸 연하장에서 본 구절이 생각납니다.

 

준 것은 기억치 않게 하시고 받은 것은 잊지 않게 하소서.

손으로 들어 온 것은 크게 자랑할지라도 손에서 나간 것은 금방 망각하게 하소서./ 선행 후 칭찬 받고픈 유혹에서 나를 건지시고/ 사람들의 평가와 수군거림에 내가 너무 민감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 이젠 더 이상 날 위한 네가 아닌 널 위한 내가 되게 네 속의 내가, 내 속의 네가 되어 우리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이 구절을 보면서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받은 것보다는 준 것을 더 기억하고 들어온 것보다는 손에서 나간 것을 더 잘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을 칭찬하기 보다는 칭찬받는 것에 민감한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로서 우리는 2006년을 마감합니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 잘한 일, 좋은 일 보다는 못한 일, 나빴던 일들이 더 부각됩니다.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았던 한해로 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의 계산표는 어떻습니까?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반성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뉘우침과 후회로만 보낸다면 우리는 새롭게 뜨는 내일의 해를 감격으로 맞지는 못할 것입니다. 한해를 마감하는 가장 좋은 길은 지난해에 나에게 일어났던 감사한 일들을 돌아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는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시편 23편을 제시했습니다. 이 시편에 여러분의 일 년을 담아보십시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을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고 새해의 희망을 실어보십시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쉬움 없어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목자로 인정하고 따르는 한 우리에게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목자가 양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물가에서 쉬도록 인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지난 일 년 동안 여러분은 어디로 인도하셨습니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지칠 때, 무엇이 나를 다시 일어나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내가 옳은 일을 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일년동안 죽음의 골짜기를 걷는 것과 같은 위기에 처한 적은 없습니까? 그 위기를, 어려움 속에서 여러분을 지탱해주고 여러분을 격려해준 하나님의 손길은 누구였고 무엇이었습니까? 그런 도움의 손길을 통해서 세상살이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난 적은 없습니까?

 

주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며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 여러분은 지난 일 년 동안 여러분을 적대시하거나 시기하는 이들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무시당해 속상할 때, 여러분을 존재감을 느끼게 한 하나님의 손길, 그로인해서 자존감과 충일감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지난 일 년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한 자취를 더듬노라면 여러분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십시오. 목자가 양을 돌보듯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 그분의 선하신 손길, 약한 나를 돌아보시는 그분의 인자하심이 여러분을 따라다닌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이제 그분의 집을 떠나지 말고, 그분의 곁에서 항상 거하십시오


2006.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