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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게 되면 죽겠습니다.

한국소금 2019. 3. 25. 21:10

죽게 되면 죽으렵니다.

 

1938년에서 1945년까지 나치 감옥에 수감되었던 마틴 니믈러 목사는 이렇게 회고 했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을 때 나는 침묵을 지켰다. 물론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나치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감금했을 때도 나는 침묵을 지켰다. 물론 나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나치가 가톨릭 신자들을 잡아갔을 때도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나치가 나를 잡아갔을 때 항의하는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우리에게 행동하는 신앙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던져줍니다. 나치 수용소에 끌려가는 반 나치 레지스탕스들 속에서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안했습니다. 나는 레지스탕스가 아닙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끌려가야 합니까?‘ 그때 옆에 있는 한 레지스탕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안 한 것이 바로 당신의 큰 죄요.“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한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에만 집착해서 아무것도 안한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한 개체는 사회와 나라라는 큰 틀에서 분리될 수 없고 이웃과 민족을 보살피지 않는 자기 사랑이란 병든 집착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위해 사는 것은 결과적으로 반사회적 행위로 이어지게 되고 나아가서 국가와 민족에 불행을 끼치게 됩니다.

 

에스더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나라를 구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한 역사서입니다. 에스더는 유다가 망해 바벨론에 끌려 온 유다 포로민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먼저 망하고 주전 539년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게 유다가 점령당해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하여 수산성에 억류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하스에로 왕 때 이 유다민 중에서 대궐의 문지기로 있는 모르드게라는 사람이 사촌 누이이면서 양녀인 에스더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양딸 에스더가 왕비에 간택이 됩니다. 왕비가 될 때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지시를 받고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 자신의 민족과 혈통관계를 숨겼습니다. 어느날 문지기 모르드개는 왕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게 되어 에스더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음모가 밝혀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르드개가 총리인 하만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고관인 하만이 대궐 문을 드나들 때마다 절을 하라고 시켰는데 모르드개 만은 절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하만은 모르드게가 유대인인 줄 알고 모르드개 만이 아니라 그 민족 전체를 죽여 버릴 음모를 꾸밉니다. 하만은 왕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임금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으니 없애야 한다고 모략해서 이스라엘을 몰살할 계획을 허락을 얻습니다. 죽이는 날은 하만이 친구들과 부르 곧 주사위를 던져 뽑은 첫째 달 13, 그 날이 오면 유다인 모두를 도륙하도록 전국에 방이 붙습니다.

 

이 일을 안 모르드개는 베옷을 걸치고 재앙을 만났을 때 하는 풍습대로 재를 뒤집어쓰고 대궐문 앞에서 통곡을 합니다. 이 일을 들은 에스더가 시녀를 보내 모르드개에게 묻자 모르드개는 유다 민족의 풍전등화 같은 운명을 이야기 하면서 왕에게 부탁해서 최선을 다해서 자기 겨레를 살려달라고 탄원하도록 부탁합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임금이 부르시지 않는데 임금에게 가면 사형을 당하도록 되어 있는 법 때문에 임금님께 나가기가 어렵다고 대답합니다. 그때 모르드개가 말합니다. “ 왕후께서 궁궐에 계신다고 하여, 모든 유다 사람이 겪는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런 대에 왕후께서 입을 다물고 게시면, 유다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라도 도움을 얻어서 살아날 것이지만, 왕후와 왕후의 집안은 멸망할 것이다. 왕후께서 이처럼 왕후의 자리에 오르신 것이 바로 이런 일 때문인지 누가 압니까?‘

 

에스더는 두 가지 갈림 길에 서게 됩니다. 침묵하고 홀로 살아남느냐, 아니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왕 앞에 나아가 동족의 목숨을 구명하는 길에 나서야 하느냐? 에스더는 마침내 동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일을 선택합니다. 그서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지시합니다. “수산에 있는 유다 사람들을 다 모으시오 나를 위하여 사흘 동안 금식하게 하시오. 나와 내 시녀들도 그렇게 하겠오. 그렇게 하고난 다음에는 법을 어기고라도 임금님께 나가겠습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렵니다.” 사흘 금식기도를 마친 다음 에스터는 목숨을 걸고 왕에게로 나갔습니다. 에스더는 왕을 잔치에 초대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 민족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왕이 내린 명령마저도 취소하여 민족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다 민족을 몰살하려 했던 하만은 오히려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매달아 놓은 높은 장대에 자기가 매달려 죽게 되고, 모르드개는 지난 날 왕의 목숨을 구한 일이 밝혀져 영광을 입게 되었고 유다민족은 스선성에서 목숨은 물론 재산권까지 보장받게 됩니다. 이 일어난 것이 아달월 13월이었고 그 다음날인 14일과 15일 날 잔치를 벌였는데 지금도 이 날을 이스라엘의 명절, 부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날을 부림절로 확정하는데 있어서 에스더의 명령으로 확정되었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구원하는 신앙은 모르드개가 에스더에세 네가 만일 잠잠하면이라는 충고했을 때,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맞섰던 것처럼 자기를 버리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일어난 사건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삼일운동입니다. 만일 교회가 없었다면 삼일운동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역사가가 기록했을 정도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일제와 싸웠습니다. 교회는 삼일운동의 통로였습니다. 31일 시작된 만세운동은 4월가지 전국에서 1214회가 일어나 110만 명이 참여했고 시위가 340회 일어났습니다. 이 중 기독교 주동이 78지역 이었고 천도교가 66지역이고 기독교와 천도교가 공동으로 주최한 곳이 42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교회의 피해가 가장 많아 교회당이 47곳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투옥된 교역자 수만 151명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이토록 집중 파괴된 것은 일제가 교회를 일제저항의 온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당시에 기독교는 민족독립운동의 진원지 역할을 감당해 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에스더처럼 민족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고 나아갔던 신앙의 결과입니다.

 

일제시대에 가장 많이 읽혀진 성서가 출애굽기와 에스더서였다고 하는데, 출애굽기를 통해서는 해방의 염원을 갈구했고, 에스더서를 통해서는 나라사랑의 길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라를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고 목숨을 건 구국운동이 삼일운동이 일어나 그 다음해부터 일제의 악랄한 수탈과 동화정책으로 인해 많은 변절자들이 일어나게 되고 기독교인들도 일제의 탄압에서 교회를 보존하려는 선교사들의 입장, 즉 정교분리정책에 의해 항일운동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이 선교사들의 가르침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많은 기독교인들이 나라사랑과 신앙생활을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 신앙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나라사랑과 신앙은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도 로마서 9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내게는 내 동족을 향한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는, 육시능로 내 동족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 끊어질 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인도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을 안 듣자 하나님이 이들을 멸하려 할 때, 차라리 자기를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고 자기 민족을 대신 구해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올해로 삼일운동 87주년을 맞습니다. 삼일절을 하나의 공휴일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민족을 구해 낸 에스더를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200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