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정치 참여의 가능성과 딜레마
국제결혼을 통한 결혼이주여성들이 증가함에 따라 유권자로서의 여성결혼이민자들의 입지나 여성 정치력의 한 장으로서의 여성결혼이민자의 위상 강화가 요구된다. 2006년 5월 31일 지방 선거에서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외국인이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지난 2005년 8월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영주권 취득 후 3년 이상이 지난 외국인은 지방선거에 한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현재 한국에 영주권 소유자인 6천 589명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정주권자에게 지방선거권을 준 것은 비록 피선거권의 제한은 있지만 외국인에게도 거주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결혼이민자들이 선거권을 갖는다는 것은 권리행사의 단초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여성결혼이민자를 유권자로 고려한다면 당연히 모든 선거에서 여성결혼이민자를 위한 정치적 공약이나 정책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주여성들이 유권자로서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아 그를 통해 자기 권익을 대변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행동이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이주여성이 정치지도자가 되는 것은 이주여성 당사자 이익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서 영주권이 있는 이주민에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지만 이주여성이 정치 지도자로 나서는 정치 진입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였고 그 가능성도 바늘구멍만큼이나 좁다. 법적으로는 귀화 이주여성에게도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이 되는 길이 열려 있다. 그러나 투표를 통해 의원이 되는 길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힘들고, 비례대표제를 통해서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결혼이주여성이 의원이 된 역사는 2008년부터다. 2008년 총선에서 창조한국당이 헤르난데스 쥬디스 알레그레라는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을 비례대표 당선권에 전략 공천하겠다고 발표를 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결혼이주여성이 국회의원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발표와 다르게 당선권 밖의 후보로 이주여성을 배치함으로써 결혼이주여성을 정당 홍보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 여성결혼이민자 비례대표 추천은 문제도 노출시켰지만, 이주여성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2010년부터 다문화 사회를 주창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여성 지도력이 눈에 띠게 가시화되었다. 가장 큰 화두는 결혼이주여성이 도의회 의원으로 진출한 것이다.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 이라가 한나라당의 공천으로 귀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6월 2일 실시된 지방의회에서 경기도 비례대표 도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귀화 외국인 1호 정치인이 탄생된 것이다. 이라말고도 지방선거에서 이주여성 5명이 도의회 의원으로 공천되었으나 당선권 밖으로 공천되거나 또는 앞 번호로 공천되었으나 추천해준 당 득점 투표율이 저조해서 당선되지 못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이주여성 6명이 정치권에 후보로 진출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주여성 정치 진출에 큰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라가 경기도 도의원이 되자 세칭 ‘다문화 정치인 1호’라고 하여 한국 사회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라 의원은 당선 후 소감 발표에서 “결혼이주자들이 모두 제 행동과 말을 지켜본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다”며 “앞으로 다문화가족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경기도 도의회 가족여성위원회에 소속되어 ‘다문화가족지원조례안’ 개정에 앞장섰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적인 새누리당이 다문화 상징으로 필리핀 출신 귀화 여성 이자스민을 비례대표 15위로 공천을 해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비록 정치적 쇼라는 평이 있긴 했지만, 영화 ‘완득이 엄마’에서 잠시 나온, 인지도가 전무하여 지명도도 없던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이 되자 한국 사회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다. 결혼이민자가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것은 다문화 사회 지표로서 받아들여졌으며, 결혼이주여성에게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본인이 이주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이주민 애로점을 잘 알고 있어 이주민을 위한 입법 활동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자스민은 국회의원이 된 이후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였고 북한이탈주민이나 이주민 제도개선을 위한 의정활동을 활기차게 벌였다. 2012년 12월 18일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법률상담비용지원법안’을 발의해 제1회 대한민국 입법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입법과 의정활동이 우수한 의원에게 주는 제6회 공동선 의정 활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문화와 이주민 관련해 이주아동권리기본법안, 난민법 일부 개정안, 다문화가족지원법 일부개정안 등 입법 활동을 활발히 했다. 이주단체와 협력하여 다문화정책과 관련한 10회 토론회와 간담회를 실시하였고, 정부 11개 부처에서 각각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관련정책을 일원화하여 이민정책이라는 큰 틀 안에서 수립되게 하는 컨트롤 타워 설치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주민 권익신장을 위해서는 당사자만한 대표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것에는 가능성도 있지만 딜레마도 있다. 과연 한국 사회가 정치 지도자로서 이주여성을 용납하고 있는가? 2011년 8월 19일-21일에 대만 타이페이에서 아시아 결혼이주 관련 국제 워크숍이 있었다. 이 워크숍이 끝나고 대만 민간단체가 주최한 오픈 포럼에서 이주민 정치적 권리를 주제로 대만, 홍콩, 한국 사례 발표가 있었다. 포럼을 시작하기 전에 이 포럼을 주관한 대만국제가족협회(Taiwan International Family Association)에서 ‘대만에 결혼 이주한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 직접선거 참가기’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인도네시아 출신 주인공 이주여성은 대만 남부 농촌 남성과 결혼하여 대만에 온지 18년 되었다. 그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여성은 대만에 온 후 시골 마을에서 궂은일을 도맡아하며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여 지역사회에서 인정받았다. 말벗이 되어 주었고, 동네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언어도 대만사람처럼 완벽하게 구사했다. 이런 이주여성이 마을 대표를 뽑는 선거에 출마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하자 지역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평소 그 이주여성의 보살핌을 받았던 독거노인 할아버지는 인터뷰에서 “만일 그 여자가 마을 대표가 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이주여성이 마을의 대표가 되는 것을 반대한 이유는 “어떻게 이주민이 대만 사람을 통치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평소 선거참여율이 낮았던 마을에서 투표율이 매우 높아졌다. 이주민이 마을 대표가 될까봐 마을 사람들이 뭉친 것이다. 투표 결과 상대 후보는 5백표를 얻었는데 그는 2백 40표를 얻어 낙선했다. 결과적으로 이주민이 단순 봉사자일 때는 지역사회의 인정과 칭찬을 받지만 정치 지도자가 되려고 할 때는 거부를 한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 실상과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 이자스민에 대한 거부감도 바로 이런 국민의식의 표출이며, 결혼이주여성이 국회의원은 고사하고 지방의원으로 직접 출마하면 모두 낙선할 것이다. 그러기에 비례대표 제도가 소수자에게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주민들이 변두리가 아닌 중앙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이주민 정치 지도자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직접 투표로 당선되도록 국민인식 개선작업과 더불어 이주민의 역량강화가 필요하다.
2015. 4. 16
'이주와 다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주여성에 관한 베이징 여성 행동강령 이행 평가 (0) | 2018.03.05 |
---|---|
새로운 문해교육현장으로서 이주여성 문해교육의 가능성 (0) | 2018.03.04 |
결혼이민 비자강화제도의 두 얼굴 (0) | 2018.03.04 |
어느 미등록 결혼이주여성의 어이없는 죽음과 이주여성사회안전망 (0) | 2018.03.04 |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권고 사항을 이행하라. (0) | 2018.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