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들의 사색터

하나님의 법과 권력의 법

한국소금 2019. 3. 25. 23:02

하나님의 법과 권력의 법

  다음 주일은 우리나라 헌법을 만든 기념일인 제헌절이 있는 주간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법들이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를 거쳐 옳고 그름이 판가름 납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여러 가지 국제법이 있지만, 극 국제법이 국내법에 우선한다고 하지만, 실상 이 국제법은 힘 있는 나라의 입장에 따라 운용됩니다. 지금 우리는 한미 FTA 문제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누구의 이익에 따라 이 법이 협상되는가? 우리 국민인가, 아니면 강대국 미국의 이익인가?

 

주전 5세기에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라는 비극을 썼습니다. 테베스의 왕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오빠를 죽이고 그 시체를 독수리와 개가 뜯어 먹도록 들판에 버려두라고 명령했습니다. 안티고네는 모든 사람에게는 시체를 매장할 권리가 있다고 맞섰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여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고 왕 앞에 불려나가 심문을 받았습니다. 왕은 시신을 묻지 못하도록 명령한 왕의 명령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알고 있다고 대답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법을 어긴 까닭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왕의 법이며 권력의 법일 뿐, 양심에 의해서 시인되지 않은 법이며 정의의 법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 때 그녀가 말한 불문율에 대한 주장은 권력의 법을 능가하는 정의의 법을 위한 기념비로 남아 있습니다. 안티고네는 죽어야 할 인간이 하늘의 불변의 불문율을 단숨에 폐기하거나 유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항변합니다. 언제 생겼는지 아는 사람도 없는 그 불문율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안테고네 이래 권력의 법은 많은 사건을 거쳐 정의의 법을 향해 전진해 온 것입니다.

 

동양에서 법()이란 물(, )이 흐르는 길()입니다. 권력이란 물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에게 물이 필요하면서도 홍수가 나면 범람하여 많은 피해를 주듯 권력이란 삽시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마력으로서 백성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이 마력의 홍수를 막아 물이 흘려야 할 곳으로 흐르게 하는 둑과 같은 것이 곧 법입니다. 그러기에 법이란 강자에게서 약자를, 권력에서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즉 인간됨을 지키기 위한 규약입니다.

 

최초의 하나님의 법은 안티고네가 기술되기 전보다 약 8백여 년 전에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십계명입니다(20:2-17, 5:6-21). 이 법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동체적 관계 유지를 위한 사랑이 표출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현상 속에서 도시화와 군주화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적 소외계층들이 고통 받는 가나안 정착문화의 위협 아래서 발표된 것으로서 보이는 계약법전(20:22-23)이 있습니다. 동족을 절대 노예로 삼지 말라는 노예법(2:2-11)을 비롯하여 사형수에게도 도피성을 주어 재판받을 권한을 부여토록 하여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했으며(21:12-17), 나그네와 과부, 고아나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와 재판의 존엄성과 공정성이 강조될 뿐 아니라, 땅의 휴식에 관한 명령까지 내려 약자의 하나님이 주시는 평등사회 이념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주전 8-7세기 초에 기술된 신명기 법전(12-26)이나 바빌론 포로기에 기술된 성경법전(레위기 17-26)이나 모두가 노예에서 해방시켜 준 하나님의 자유민으로서 평화를 지키고 신장시켜나갈 책임을 법으로 규정짓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강조된 하나님의 법 정신은 정의와 공평이고 신약에서 예수님을 통한 법정신은 사랑입니다(마태 22:34-40). 사랑이 없는 정의는 엄한 채찍이 되며 정의가 없는 사랑은 힘없는 지팡이가 될 것이기에 사랑과 정의 속에서 하나님의 법은 살아 움직이며 해방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아사야 선지자는 안티고네가 기술되기보다 200년 전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이사야는 당시 유대 정부 관리들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백성의 고혈을 짜는 악법을 제정하고 백성을 거미줄에 옭아매는 규칙들을 발표한다고 규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계약의 파기이며 하나님에 대한 배신으로서 반드시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약자를 보호하고 사람다움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민족공동체를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최선의 규범이었습니다. 그러나 점령지역인 가나안 정착문화에 오염되어 군주체제가 강하되고 상업의 발전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빈부격차의 사회적 갈등이 심화됩니다. 권력자들은 바로 이 불의로 빚은 갈등을 합리화하기 위한 법령을 제정 발포하고 수많은 규칙들을 기록하여 지배와수탈, 탄압과 맹종을 강화했습니다. 이런 구조적인 악에서 백성들은 불공평한 재판을 받고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권한을 박달당합니다. 자기의 것을 지킬 제동장치가 상실된 데서 강자의 무절제한 약탈의 대상이 된 과부와 고아의 통한을 들으시는 하나님은 이제 예언자를 보내 부르짖게 합니다.

 

너희에게 벌 하시는 날에,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였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10:3)

 

법제정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서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법은 소외된 자와 약자를 위한 법이며, 권력자들이 제정하여 발표한 인간의 법은 권력 유지와 수탈을 위한 법령이라는데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의 법을 보면 필요한 부분을 보강만 해 올 뿐 한 번도 개헌을 하지 않은데 비해서 우리나라의 법은 60년 동안 여섯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 집권자의 편의를 위한 법이었기에 역사적인 인정 즉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법이란 백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유일한 끈입니다. 그러기에 법이란 존중되고 지켜져야 하는데, 그것이 사람의 법이요. 권력의 법이며, 악법일 때에 그리스도인은 이 법이 하나님의 법이 되도록 하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악법 제정을 규탄하고 하나님의 심판 선언을 퍼 붓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법이 하나님의 법이 되고 약한 민중의 법이 되기 위해 예언자의 사명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양심의 법, 하나님의 법 정신의 잣대를 대어야 하는 법은 무엇일까요? 당장 우리 발등에 떨어진 한미 FTA 문제를 하나님의 법 정신에 의해 슬기롭게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2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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