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희년의 선포”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주제다. 마가복음 1: 15에 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첫 복음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마가복음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첫 설교가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그 하나님 나라를 위한 회개로의 요청이었다면 누가복음 4장 18절에 나타난 에수님의 첫 설교는 희년의 선포다. 예수님은 회당을 찾으셔서 이사야서 61:1-2절의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당신의 첫 설교를 하셨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다. 주꼐서 내개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꼐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개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여기서 은혜의 해란 레위기 25장 6-13절의 희년에서 나온 것이다. 은해의 해 즉 희년은 7년에 한번 씩 오는 안식년을 7번지나 그 다음해 즉 50년이 되는 해를 뜻한다. 하나님은 출애급을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때에 50년이 되는 이 날을 거룩한 해로 정하고 전국의 모든 거류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도록 하였다. 이 희년의 해에는 모든 사람이 가족에게 돌아가는 해이다. 희년이 되면 모든 종들을 해방시켜 자기 가족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가난 때문에 자기 땅을 저당잡혔다 하더라도 희년이 되면 그 땅을 되찾을 수 있다. 구약의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땅을 사고팔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집의 경우 성 안에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집을 팔았을 때는 희년이 와도 산 사람이 자기 소유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곽 밖에 사는 사람이 가난에 못이겨 집을 팔 경우에는 희년이 되면 본래의 임자에게 되돌려받을 수 있다. 이렇게 희년은 모든 것이 자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해다. 종으로 팔려갔던 사람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기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고, 가난으로 땅을 판 사람은 자기 땅을 되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기쁨의 해, 은혜의 해가 바로 희년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와 희년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나님 나라와 희년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면서 첫 설교를 이사야서를 읽으신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와 희년이 같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사야 61장 1-2절을 읽으시고 나서 이 말씀이 너희에게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의 오심과 삶 자체로 희년이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희년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고 그 희년의 성취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희년의 성취자로 믿는다면 희년을 우리의 삶 속에서 일구어 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지는 세상이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이란 희년에서처럼 자기가 살 터전과 생계를 보장받는 것이다. 재개발 브로커들에게 몇십억씩 커미션을 주며서도 세입자들은 무참히 짓밟은 모습을 보여준 용산참사사건, 소위 일자리 나누기라는 이름하에 초임을 삭감하고 청년들의 일자리를 80만 원 대로 묶어놓으면서 기업의 임원들에게는 몇십억 씩 이익배당금을 분배하는 대기업의 행태, 대기업과 언론재벌에게 지상파방송을 내주기 위한 미디어법 개정 획책 등 하나님 나라와 멀어도 한참 멀다. 희년의 기쁜 소식이 들려져야 할 가난한 이들 중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들, 난민등을 뻬놓을 수 없다. 나그네는 하나님이 특별히 보살피도록 한 사람들이다. 우리 경제가 악화되고 국가가 우경화되면서 이주민들의 인권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져야 한다.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희년의 기쁜 소식이 들려져야 할 곳은 여성들이다. 지난주에 일본군 위안부 명예와 인권을 위한 전쟁과 여성박물관 착공식이 있었다. 그러나 순국선열유족회 등에 의해 기공식을 하지 못하고 착공식만 했다. 독립유공자들이 감히 성스러운 자리에 더러운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박물관을 지을 수 없다며 훼방을 놓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약소민족의 수난사이며 전시 하 여성에 대한 성폭력문제로서 여성억압의 전형으로 오늘도 세계도처에서 여성에 대한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 지난 3월 8일 우리는 여성노동자들이 자유와 해방을 위해 일어난 날을 기념하며 101번 째 38여성의 날을 보냈는데,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성차별로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 희년이란 이렇게 차별받고 눌림받는 여성들이 자유함을 얻는 것, 해방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다.
희년의 기쁜 소식이 들려져야 할 또 다른 곳은 자연이다. 하나님은 희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쉬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땅도 쉬어야 생명력을 강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세계는 땅을 쉬게 하기는 커녕 인간의 탐욕으로 개발하여 자연을 파괴하였고 그 난개발이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앙가픔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물부족국가 5위에 있고 이미 강원도나 경상도에서는 가뭄으로 식수가 모자라는 판이다. 한강의 발원지가 말랐다고 한다. 희년법을 주시면서 하나님은 땅을 쉬게 하지 않으면 그 땅이 더 이상 소출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대운하 프로젝트는 하나님 나라와는 동떨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희년이 안식년을 일곱 번씩 지난 그 다음에 온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섯 해 동안 열심히 곡식을 뿌리고 추수하고 7년 째 되는 안식년에는 땅을 쉬게 하고 온 가족이 쉬어야 한다. 안식년 법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만이 쉬는 것이 아니라 그 집안에 거하는 남종과 여종, 가축까지 일 년 동안 쉬도록 되어 있다. 이 안식년은 안식일의 연장이다.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 되는 날에는 땅과 종과 가축들을 쉬게 해야 한다. 이렇게 안식일에 하루를 쉬게 하고, 안식년을 통하여 일 년을 쉬게 하는 훈련을 하다가 희년에는 완전히 내어놓는, 묶인 이들을 해방시키는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서 안식과 해방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매주 하루 쉬면서 그냥 피곤한 몸을 쉬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내어놓는, 소유를, 집착을 내려놓은 훈련을 하는 것이 오늘의 안식의 의미다. 우리가 매주 교회에 와서 예배하는 것이 또 하나의 피곤한 행사가 아니라 희년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기도의 행진이어야 한다.
우리는 희년이 50년 마다 한번 씩 온다는 그 숫자에 매여서는 안 된다. 50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희년정신으로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희년정신이 실현되는 곳이다. 억눌린 사람이 해방되고 권리를 빼앗긴 자가 자기 권리를 찾으며 사람과 더불어 자연이 쉼을 얻어 회복된다. 희년정신은 한마디로 욕심을 포기하고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희년의 성취다. 구체적으로 가난한 이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이들, 장애자, 외국인노동자들, 여성들이 기를 펴고 사는 모습, 인간과 자년이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게 된다면 거기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동트고 있는 것이다.
희년 정신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에게 희년을 선포하신 하나님,
희년을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보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는 모두가 함께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서 삼아주셨지만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억눌린 사람들을 형제자매로서
관심을 갖자 못하고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지도 못하였고
용산 참사에 마음을 실어 함께 슬퍼하지도 못했습니다.
차별당하는 여성과 노인, 어린이들의 권리를 찾아주지도 못했고
장애인들과 외국인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들, 난민들이
사람답게 살수 있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못했습니다.
당신이 창조하시고 좋다고 감탄 하신 그 세계를
우리의 탐욕으로 개발만 하다가. 그 탐욕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기후이변 속에서 가뭄으로 마실 물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살라는 당신의 뜻을 저버린 때문입니다.
이제 늦었지만 우리가 희년정신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나그네 이주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희년의 행진에 참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지치지 않게 이끌어주소서.
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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