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의 의미”
1.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하는 길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이름의 의미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은 통상적으로 야훼, 또는 여호와로 불린다. 야훼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난주에 남전도사님은 야훼의 의미를 어원을 따라 산봉우리-젖가슴-긍휼을 통찰해보았다. 오늘은 그냥 하나님이 자기를 모세에게 자기를 드러내신 야훼라는 의미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과 그 의미를 통찰해보고자 한다. 하나님은 야훼다. 야훼란 “스스로 있는 자 라는 뜻이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스스로 계신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출애굽기 3:14) 이후 우리는 하나님을 야훼 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이름 야훼라는 말에는 “스스로 있는 자와 스스로 있게 하는 자” 또는 무엇이 되게 하는 자라는 의미가 동시에 들어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밝히신 것은 하나님 자신은 스스로 있는 분이면서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서게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우리 인간도 스스로 서길 원하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해방자가 되시고 우리의 해방자가 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스스로 있는 분으로서의 필연적인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자유한 인간으로 만드셨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자유한 인간으로 살면서 종의 멍에를 지지말라”고 권면하셨다. 종의 멍에를 지지않는다는 것은 주체성을 갖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내가 참 자유한 인간으로 살지못하면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지어주신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한 인간으로, 스스로 서는 존재로 살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처럼 우리도 억압받고 차별받아 기죽어 사는 우리 이웃들을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줄 때 우리는 스스로 있는 그분을 닮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존엄한 대접을 받으며 자기 삶의 주신이 될 때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된다.
2. 이렇게 “나는 나‘라고 자신을 밝히신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다가오셔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신다. 성서에 보면 하나님을 지칭하는 많은 이름들이 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치려할 때 하나님이 이삭 대신 번제로 바칠 양을 준비해두셨다는 데서 유래한 “여호와께서 예비하셨다” 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 이레(창 22:14)가 있다. 모세가 아말렉과 싸워 이기고 제단을 쌓고서 그 제단에 붙인 이름 “여호와 닛시(출 17:15)가 있다. 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마라에 이르렀는데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나뭇가지로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키는 사건이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으로 알려주신 여호와 라파(출15:26)가 있다. 그런가하면 기드온은 천사를 만나고 나서 두려움에 떨 때 하나님이 안심시켜주었다고 해서 단을 쌓고 여호와 샬롬(사사기 6:24)이라고 했다. 시편 23편 1절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은 인도자, 나의 목자라고 노래한데서 ”여호와 로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또 하나님께서 거기 계신다는 뜻의 여호와 사마(에스겔 48:35), 우리를 공의로 다스리는 주라는 뚯의 여호와 치두케누(렘23:6),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이름들은 성서의 인물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고백한 신앙고백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여기 에 붙은 호창은 이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여호와 라파 하면 여호와는 치료자시다..하는 속성을 뜻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만난 하나님을 고백하는 신앙행위를 통해서다. 우리의 삶에 오셔서 나는 너에게 평화다, 나는 너에게 구원이다. 나는 너에게 평화다, 나는 너에게 위로다. 나는 너에게 치료자다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은총이다. 일반적으로 성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속성을 고백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절실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지은 한 여성이 있다. 바로 사라의 종이면서 아브라함의 첩이 되어 아들을 임신하고서 사라에게 쫒겨나 사막을 방황하다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난다. 천사는 하갈에게 다시 주인에게 돌아갈 것을 권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고통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께서 들으셨다.“ 그러자 하갈이 ‘내가 여기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뵙고도 이렇게 살아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다니! 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보시는 하나님, “브엘라 해로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고통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갖고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우리의 행동이 허투루 될 수 없고 어려운 일을 만났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갈처럼 스스로의 삶에서 만난 하나님을 고백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표현을 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다.
3.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가를 나타낸다. 성서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다가오실 때 친히 그 이름을 부르면서 그가 어떤 분인가를 확인하셨다. 하나님은 막연하게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름을 부르면서 나를 찾으신다. 하나님이 내 이름을 부르실 때 거기에는 그 이름을 가진 너는 누구냐, 네 자신을 한번 돌아보라는 의미와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받아들이신다는 수용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때로는 새로운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이름을 바꾸어주기도 하셨다. 아브람과 사래는 각각 세계의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뜻을 가진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꾸어주셨다.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다는 뜻의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주셨다. 예수님도 제자들 일부의 이름을 바꾸어주셨다. 덤벙대는 시몬은 바위라는 뜻의 베드로로. 성서에서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사람이 달라짐을 의미하며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거나 새사람으로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다. 그런가하면 오늘 우리가 예배 시간에 부른 야베스처럼 “고통”이라는 좋지 않은 뜻을 가진 사람이 있다. 야베스의 어머니가 야베스를 낳으면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름을 고통을 겪으면서 낳은 자식이라고 야베스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야베스는 자신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손으로 불행을 막아달라고 간구한 결과 하나님이 그를 축복해주셨다는 기사가 있다(역대기4:9-10).
우리 모두가 이름을 갖고 있다. 우리의 이름에는 우리 이름을 지은 분들의 염원과 기대가 들어있다. 우리는 우리 이름의 의미대로 사는지, 이름값을 하며 사는지 자신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우리 이름의 의미대로 산다면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가 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옵시며” 기도할 때마다 스스로 있는 그분처럼 내 자신이 스스로 서서 사람답게 살기를 기도하자. 또 내 이웃 역시 그렇게 되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노력하자. 그리고 이름값을 하며 사는지 자신이 되도록 기도하자.
2009.2
'일꾼들의 사색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가르치신 기도 7- “하나님 나라와 희년의 선포” (0) | 2019.03.26 |
---|---|
주님 가르치신 기도6- 나라가 임하시며 (0) | 2019.03.26 |
주님 가르치신 기도 4- 거룩하신 그분을 따라 (0) | 2019.03.26 |
주기도문 3- 하나님의 가족 (0) | 2019.03.26 |
주기도문 2-하나님의 자녀 (0) | 2019.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