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부부공동목회를 하다.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는 교회법상으로 나의 남편이었다. 당회가 없는 교회는 미조직교회라 해서 한 명밖에 안수를 받을 수 없었다. 나는 10년 전에 이미 목사고시에 합격하여 준목이 되어 있었는데 남편이 먼저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교회가 목회자로 초청한 사람은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공동목회를 한다는 정신으로 목회를 시작하였다. 사실 남편과 나의 공동목회는 부부가 하나는 목회자로, 하나는 사모로서가 아니라 어떻게 목회선상에서 파트너쉽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하나의 실험대이기도 하였다. 나는 다른 목회자 부인들처럼 남편의 보조자나 후원자가 아니라 명실공히 목회자로서 내 위치와 역할을 부각하기 위해 애썼다. 우리 교회의 책임목회자는 남편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동역자로서 목회 전반에 걸쳐 공동으로 해 나갔다. 교회의 운영은 물론 설교와 목회상담 등의 일을 나누어 하였다. 그 결과 우리 교인들 역시 나와 남편의 역할을 구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작년부터 시작한 외국인노동자선교센터의 일이 본격화되어 남편이 소장 일을 맡고 내가 우리 교회의 담임목회자가 되었다. 준목이 된지 16년만에 목사 안수를 받게 된 것이다. 내가 남자였다면 벌써 오래 전에 목사가 되었을 텐데, 결혼을 하고 민중교회에서 일하다 보니 목사가 될 수 없었고 겨우 남편이 일할 목회지를 찾은 후에야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목회선상에서 동등한 동역자로 일함과 동시에 우리는 삶에서 진실한 동반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교인들이 목회자의 삶을 보고 감동을 받아야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하는 인권운동가나 민중교회 목회자들의 경우 남녀평등의식은 갖고 있으면서도 실생활에서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인식은 남녀평등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실제 생활에서는 목회와 운동을 무기로 부인의 희생을 간과한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서 가사와 육아 등 모든 면에서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평등한 부부로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평등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 부부의 이런 모습은 새로 결혼한 부부들에게는 한 이정표가 되고 교인들에게는 자극제가 되는 듯하다.
우리 교회의 예배
성차별적 언어를 배제하다.
우리는 교회에서 성차별적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노력했다. 설교 시에는 가부장적 본문을 사용하지 않음은 물론 예배문에서 성차별이든 인종차별이든 간에 모든 차별적인 용어를 평등적인 용어로 수정하여 사용한다. 남편도 성차별적 언어를 안쓰려고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 그러나 몸에 배인 가부장적 언어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설교 시간에 “하나님 아버지!” 하고 불러 놓고는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만 부르면 한 목사한테 혼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도 되시고 어머니도 되시는 분이지요” 하고 해명하는 일도 있다. 우리 교회 설교시에 자주 인용되는 용어는 “하나님의 형상” 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두가지 면에서 강조하는데 하나는 ‘민중인 우리 교인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강조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엄성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교인들은 보수적인 신앙의 뿌리가 없이 우리 교회에서 하는 야학을 통해 교인이 된 사람들이라 기성교회의 모습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목회 방침에 별로 이의가 없다. 우리 교인은 우리 교회를 통해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 특히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고 믿는다.
모두가 참여하는 예배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교인들에게 예배 순서를 분담시켰다. 일반 교회에서는 예배순서를 대부분 교역자와 장로들이 독점을 한다. 대부분의 민중교회가 그렇듯이 우리 교회 역시 목회자가 예배를 독식하지 않고 평신도가 골고루 참여한다. 비록 세련되지 못하고 가끔 실수도 많지만 예배의 사회, 기도, 성경봉독 등을 평신도가 함으로 평신도들의 예배참여도를 높이고 지도력을 키우려 하였다. 한 예로 우리 교회의 한 노동자 교인은 투표를 통해 집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 집사는 공중 앞에서 말하거나 기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기도 순서가 되는 날이면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설득을 하고 목회자가 같이 기도문을 써 주어 그 기도문을 읽도록 했다. 이제는 기도도 자원해서 할 정도로 발전했다. 민중교회의 교우들은 다른 교회의 교인들과 달리 공중 앞에 나설 기회가 거의 없다. 어쩌면 예배의 순서를 맡는 것이 우리 교인들이 누구 앞에 나설 수 있는 유일의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이런 그들에게 예배순서를 분담시키는 것은 그들의 지도력을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나 여성교회처럼 설교 후에 교인들과 그 설교에 대한 응답을 나누는 일까지는 못하고 있다. 이걸 몇 번 시도하였는데 교인들이 너무 부담을 느껴서 설교시간에 질문을 하고 의견을 듣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앞으로 다시 시도해 보려고 한다. 목회자가 일방적으로 설교를 하고 교인들은 듣기만 하는, 설교를 교인들과 나누지 못하는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밖에 우리 교회의 예배가 기성교회의 예배와 다를 것은 예배순서가 획일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찬송가 외에도 일반교회에서 애창되는 복음성가보다는 의식을 깨우고 공동체성을 키우는 노래들이 불려진다.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 희년의 노래, 민중복음성가 등이나 의도적으로 여성교회에서 가부장적 가사를 평등가사로 바꾸어 만든 ‘우리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
전통문화의 접목
민중교회의 예배 특색의 하나는 전통문화와의 접맥이다. 예배를 전통문화와 접맥시킨다는 것은 예배문화를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예배문화를 일군다는 소리와 같다.1) 우리 교회의 예배는 일반교회처럼 피아노 주악에 맞추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징을 울림으로 시작된다. 징의 여운을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우리 가락에 맞춘 찬송들이 불려지는데 예배 시에 피아노 뿐 아니라 기타나 장구, 북 등이 사용된다. 이는 우리 전통음악을 예배에 사용할 경우 이단시하는 한국 교회의 일반적 풍토에 비하여 획기적인 일이다.
또한 성서는 가톨릭과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을 읽다가 근래에 번역된 새번역성서를 읽는다. 이는 새번역성서가 비교적 성포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역이나 공동번역에서 ‘형제들아’ 하고 번역된 부분을 표준새번역은 ‘형제 자매 여러분’하는 식으로 번역하였다. 보수교회에서는 개역성서를 주로 사용하고 표준새변역 성서를 이단시하는 교회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성례전을 자주 한다. 일반 교회는 흔히 절기에만 성례전을 하나 우리 교회는 월 1회씩 성례전을 하려고 노력한다. 성례전을 할 때 교회법에는 세례교인만 성례전에 참여토록 되어 있어 우리는 모든 교인을 소외시키지 않게 위해 애찬식을 진행, 아기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전 교인이 참여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우리 교회 특유의 예배 분위기는 일반 기성 교인들의 유입을 막는다. 간혹 동네에 새롭게 이사온 기독교 교인들이 우리 예배에 참석했다가 일반 기성교회 예배 분위기와 다른 모습에 지레 겁을 먹고 다시는 오지 않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
나는 레티 럿셀의 말처럼 예배는 공동체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2) 그런데 우리 예배는 신이 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교회처럼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그런 예배를 드리고 싶다. 어떻게 신나는 예배를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의 과제다.
남자와 여자, 교역자와 평신도가 함께 마련하는 공동식사
우리 교회의 예배는 예배 후 공동식사를 함께 하는 것까지를 예배로 포괄하고 있다. 이 애찬 준비는 남자와 여자가 한 팀이 되어 준비를 한다. 목사네 가정도 예외가 아니어서 순서에 따라 당번을 해야 하는데 내가 음식준비를 하면 남편이 설거지를 한다. 한 보수교회에 다니던 교인이 우리 교회에 와 보고는 목사가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하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한 일이 있다. 남자가 그것도 감히 목사에게 설거지를 시킨다는데 충격을 받은 것이다. 목사가 설거지를 하니까 아무리 가부장적인 남자라도 설거지를 안할 수 없다. 우리 교회의 남집사 한사람은 매우 가부장적인데 처음에는 이 공동식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자기 당번이 되면 딸이나 부인에게 일을 맡기곤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의례 그려려니 한다. 이렇게 교회에서 공동식사 준비를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다보니 밥짖는 일은 여성만의 일이라는 편견이 없어지고 이일을 통해서 교인들은 가정생활에서도 가사가 여성의 일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서로 가사일을 나누어서 하는데로 발전했다. 그리고 목회자인 우리 자신도 교인과 함께 설거지를 하면서 자칫 빠지기 쉬운 목사로서의 권위의식을 털어버리는 연습을 한다.
한편 우리는 교회의 문제는 가급적 전교인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일반교회는 제직회나 세례 교인들로만 구성된 공동 의회를 통해 교회 일을 결정하지만 우리는 전교인회의를 연다. 모두에게 발언권을 주고 다수결보다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까지 회의를 한다. 이 전교인회의를 통해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이를 통해 회의하는 연습도 하게 됨으로 직장이나 다른 모임에 가서도 자기 의견을 제시할 줄 알게 된다. 결국 전교인회의는 교회의 민주화와 아울러 교인의 지도력을 키우는 중요한 장이 되고 있다.
자연에 대한 관심과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교인들
나와 남편은 교인들에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가치관을 강조한다. 가난하게 사는 교인들에게 ‘청빈한 삶’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가난한 교인들과 함께 “아-나-다-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나다바란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다시 재생해 쓰고 바꿔 쓴다는 생명운동, 소박하게 살기 운동의 첫 자를 따 만든 운동캠패인 구호다. 말로만 구호를 외치지 않고 실제로 행동한다. 멀쩡한 교회를 허는 데만 2억을 들여서 다시 짓는 한국교회의 풍토와는 반대로 앞의 교인이 쓴 글처럼 우리 교회의 강단을 꾸미는 휘장조차도 우리는 남의 교회에서 버린 것을 갖다가 썼다. 지금은 우리 교회에 종탑이 있는데 이 종탑도 어떤 사람이 헌금한다는 걸 거절하고 다른 교회에서 버리는 걸 우리 교인들이 손수 떼어다가 설치했다. 우리 교회의 웬만한 기물들은 거의 누가 쓰던 것을 얻어온 것들이다. 목회자가 헌 것을 잘 거두어 오니까 이제는 교인들도 길가다가 쓸만한 물건이 버려져 있으면 집어와 교회에 둔다. 그러면 우리는 그 물건들을 필요한 다른 곳에 또 나누어준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고물상처럼 되어 버렸는데 교인들은 자기가 주워 온 물건이 또 필요한 곳이 있다는데 대해 자랑스러워한다.
우리는 교인들에게 가급적 인스턴트식품을 먹지 않도록 한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 교인들이 공동식사로 라면을 먹고 있었다. 간편하다는 이유로 화학조미료와 라면을 싼 비닐봉투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라면을 밥과 국으로 대치하고 밥이 안될 때는 국수나 수제비를 끓여 먹도록 바꾸었다. 덕분에 비닐 쓰레기가 줄었고 보통 아침식사를 거르고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다.
한편 불과 20명 남짓한 교인들이 수질오염을 줄이기 위해 비누를 만들어 나눠 쓰고 탁아방 자모들에게 파는 일도 벌렸다. 공부방 선생들과 함께 마을의 환경실태를 조사하였다. 이 조사한 결과를 이웃 탁아방과 연대하여 공동으로 마을장터를 벌이고 재생화장지와 문구, 중고 옷 등을 파는 마을 장터를 열어 전시를 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도 하였다.
때때로 등산예배를 통해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도 갖는다. 이때는 성서말씀 뿐 아니라 자연과 공명할 수 있는 모든 종교의 가르침과 이야기들이 교재로 사용된다. 자연을 찾을 때는 미리 쓰레기 봉투를 준비해 가서 산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주워 온다.
우리 교회는 "ET할아버지와 두밀리 자연학교"라는 책에 의하면 똥푸는 목사와 똥푸는 교회로 소개되고 있다. 해마다 우리 교회는 여름수련회를 서울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두밀리 자연학교로 간다. 그 학교는 채규철이라는 장애인이 운영하는 작은 민간학교다. 몇 개의 텐트를 쳐 놓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캔이나 패트병, 음료수와 합성세제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생태문제를 고려해 화장실도 재래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 화장실을 푸는 것이 자연학교의 큰 문제다. 이 학교는 채규철씨가 장애인이다 보니 그 부인이 모든 관리를 도맡아 한다. 애로점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똥푸는 것’이라고 해서 우리 교회는 이곳에서 수련회를 한 첫 해부터 똥푸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인들이 불평을 했지만 목사가 똥바가지를 들고 푸기 시작하니까 모두 참여하게 되었다. 공부방 아이들에게도 한 번씩 똥푸기를 시키면서 똥과 관련하여 생태계 보전과 환경문제를 교육한다.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 교인들은 환경친화적인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활동
뿐만 아니라 교인들도 자신의 힘으로 소외된 이웃을 돕는 훈련을 시킨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 교회 교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다른 민중교회 교인들보다도 우리 교회 노동자들은 학력이 낮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수입도 적다. 교인이 적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보니 우리 교회를 지탱하기도 힘들다. 이런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교회는 다른 고난받는 사람들을 위해 나름대로 힘을 쓴다. 그 한 예로 국가보안법에 걸려 오랜 감옥생활을 하는 장기수 할아버지를 돕는 모금운동을 해마다 벌이고 있다. 작년부터는 외국인노동자선교센타를 열어 그들을 돕는 일도 하고 있다. 비록 가난하지만 북한동포를 위해 금식하고 헌금을 모으고 쌀을 모으는 일을 독려 하고 이들은 이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해마다 성탄 무렵 3일 동안 일이 끝난 7시 30분부터 10시까지 동대문 지하철 역에서 장기수 겨울맞이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여왔는데 경찰에게 박해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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