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윗돌을 얼만큼 옮겼나?
한 국 염
들어가는 말
세계교회협의회는 1987년 1월에 기독교 여성 10년( Ecumenical Decade of Church in Solidarity with Women)을 시작하기로 결의하고 1988-1998년을 ’기독교 여성 10년‘으로 제정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가 ’기독여성 10년‘을 제정한 것은 교회가 여성들의 인권신장을 위해 여성들과 연대하는 행동을 하도록 촉진하기 위해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 1차 총회 때부터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관해 58개국의 보고서를 받을 정도로 교회 내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참여에 관심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1983년 뱅쿠버에서 열린 제6차 총회는 총대의 3분의 1이 여성이었으며 총회의 의장과 사회자의 절반을 여성으로 할당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여성분과위원회는 1988년 부활절을 기해 전세계교회에 ‘기독교 여성 10년’을 선포할 것을 제안하면서 “누가 바윗돌을 옮길 것인가?” 하는 부활절 멧시지를 선포하였다. ‘누가 바윗돌을 옮길 것인가?’ 이 물음은 세계교회협의회 여성분과가 여성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여 살아있는 새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던진 화두다. ‘여성들과 연대하는 교회의 에큐메니칼 10년’ 동안에 여성들이 교회와 사회전역에 걸쳐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들을 규명하고 그 장애물을 제거하자는 뜻에서 던져진 이 물음은 곧 “우리가 바윗돌을 옮기겠다”는 다짐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이 세계교회협의회 여성분과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주최로 1988년 4월 4일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누가 바윗돌을 옮길 것인가?” 라는 주제로 ’기독교여성 10년‘ 선언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는 여성들이 앞으로 10년동안 죽음의 바윗돌을 옮겨 놓겠다고 다짐하며 네가지의 다짐을 했다. 이러한 다짐이 어떻게 시행되어 왔으며 그 결과는 어떠한가? ‘기독교여성 10년’을 선포한지 7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얼만큼이나 바윗돌을 옮겼는가?
1. 기독교여성 10년 선언에 대한 일반적 반응
우리는 ‘기독교여성 10년’의 제정 목적을 얼만큼 달성하였는가? 이런 질문을 가지고 오늘의 ‘기독교여성 10년 보고와 평가’ 발표를 위해 평소 여성문제와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여성 몇사람을 만나 보았다.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 하였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여성 10년 그런게 있었나?”하고 되물었고 어떤 이들은 “여성 10년에 한 일이 없다”고 단적으로 짤라 말했다. 사실 그동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의 활동에 참여해온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여성 10년이 무엇인지, 왜 선포되었는지도 모르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글쎄 언젠가 이대에서 바윗돌을 옮기자며 한 번 모인적은 있는데 그후 어떻게 되었나 모르겠네.” 이런 대답을 들었을 때 참으로 답답했다. 너무 부정적인 결론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 ‘기독교여성 10년’은 실종된 느낌이고 오늘 이 모임은 마치 ‘미아찾기’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기독여성 10년은 세계교회협의회에 의해 제안에 따라 별 준비없이 몇몇 교회여성지도자들에 의해 선포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구체적으로 개교회까지 그 결정이 전달되어 그에 따라 제반 토의를 하고 그것이 다시 노회와 총회까지 전달되어 전국적으로 그 결정에 대한 실천이 이루어진다. 필자가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 함부르크대학 신학부에는 ‘기독교여성 10년을 위한 연구실’이 설치되어 신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논의하고 실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경우 세계교회협의회에 제안에 따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일방적으로 선포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일반 교회는 물론이고 ‘기독여성 10년을 선포한 교회협의회 가맹교단의 목회자와 교회 자체가 ‘기독여성 10년’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여성과 연대해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는 기독교여성 10년의 의의나 필요성 그리고 실천적 과제 등에 대해 밑바닥부터 논의나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았을뿐더러 각 교단 전국여신도회 차원에서조차도 충분히 논의가 없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실천방안과 단계 등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아 기독교여성 10년을 3년 남겨 놓은 이 시점까지 여성 10년을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를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청사진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2.한국기독여성 10년의 분석틀
세계교회협의회가 기독교 여성 10년을 제정한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들에게 세계공동체, 그들의 국가와 교회에서 억압적인 구조에 도전하도록 권한을 주기 위함이다. 둘째, 지도권과 결정권 그리고 신학과 영성을 나눔으로 교회와 공동체에 대한 여성의 결정적인 공헌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셋째, 정의,평화, 창조의 보전을 위한 일과 투쟁에 있어서 여성들의 결단과 행동을 가시화하기 위함이다. 넷째,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계급주의로부터 교회가 해방되며 여성을 차별하는 교역과 관습으로부터 해방되게 하기 위함이다. 다섯째, 교회가 여성들과 연대하는 행동을 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다.
가부장적인 문화, 교권주의, 비민주적인 정치,경제,사회 구조와 제도 그리고 관습으로부터 해방되어 평등과 참여, 영성의 나눔을 현실화하기 위해 세계교회협의회가 제안하고 있는 선결해야 할 우선의 문제는 첫째, 교회와 사회공동체 전역에 걸친 여성들의 참여, 둘째, 정의와 평화와 창조의 보전을 위한 여성들의 결단과 헌신, 셋째, 여성들이 스스로 신학하며 영성을 나누는 일 등이다.
이러한 세계교회협의회의 제정목적과 우선과제를 근거로 한국기독교여성 10년선언대회에서는 한국 교회여성들이 극복해야 될 과제들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다. 첫째는 우리 앞에 가로놓인 한국 가부장제의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문화적 장애물을 제거, 민주적 가정생활을 실천하기 위해서 교육과 문화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이요, 둘째는 교회 안의 여성 차별적 구조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여성들의 신학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 여성해방을 향한 여성들에 의한 여성신학을 발전, 성숙시킬 것, 셋째는 죽음과 아픔의 공동체를 넘어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룩하기 위해 빈민여성과 여성 노동자, 매매춘 여성, 성폭력 앞에서 희생당하는 여성들 앞에 가로 놓인 장애물을 제거하고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할 것,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를 가로막고 있는 분단과 증오와 전쟁과 공포의 바윗돌을 하나씩 제거하고 극복해 나간다는 내용의 선언을 하였다.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10년 동안 실천방안이 제시되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실천방안이 제시되지 못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여성활동보고’자료집은 ‘기독교여성운동정립협의외’가 한국교회여성운동을 점검하고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모은 자료를 기독교여성 10년의 우선 순위에 맟춰 분류한 것이다. 이 활동보고는 기독여성 10년과 관계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맟춰 여성운동 내지 한국교회운동에 뒤따르는 활동이 대부분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사업보고에 못박았듯이 기독교여성 10년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단체들이 해오던 과거의 사업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그래서 이 활동보고서만을 근거로 해서 기독교여성 10년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오늘의 평가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활동보고서를 중심으로 하고자 한다. 또한 이 자료까지도 한국기독교여성 10년선언대회의 틀로 분류되지 못하고 오히려 세계교회협의회의 우선순위항목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다시 한국선언대회의 틀로 분류하여 그 평가를 해야 되겠지만 이것이 바로 한국여성10년의 현주소라고 보고 그에 따라 분석을 하고자 한다.
3.교회와 사회공동체 전역에 걸친 여성들의 참여
‘여성과 연대하는 에큐메니칼 여성 10년’은 여성의 공헌을 확인하고 교회와 국가에 있어서 여성들의 역사,예를 들어 봉사, 정의, 사회사업에 대한 공약을 알리도록 우리에게 도전한다. 또한 권력을 행사하고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위치를 주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도록 권장한다. 기독교여성10년이 여성의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여성들의 완전한 참여가 권력을 분배하는데 공헌하기 때문이다. 이 항목을 위해 한국기독교여성 10년선언대회에서는 여성들의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해 가부장적 문화의 억압구조를 변화시키는 노력들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한국교회여성의 활동은 1975년 여성의 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교회여성들이 가정과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와 교회의 성차별 구조에 눈을 뜨게 되었다. 여기에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온 여성신학을 통하여 여성들이 교회의 성차별 극복을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렇게 그동안의 활발한 활동을 계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여성10년선언대회에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세우지 않았었지만 각 교회단체나 여성들은 나름대로 활발히 활동을 했다.
1)교회내 가부장적 문화와 억압구조를 해결하려는 노력들
교회기구에 여성참여의 비율을 높이는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미 1984년부터 교단의 모든 회의에 여성대표 3할 참석 법제화를 촉구해 온 감리교여선교회의 경우 1993년에는 교단정책협의회와 교단 내의 주요기구에 여성대표가 참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미 감리교교회협의회에 여성대표가 20-30% 참여하고 있다. 기장의 경우 교단총회 모든 회의에 여성대표참여가 법제화되지 않고 전문인 배려 몫으로 여성대표가 참여하고 있을 뿐인데 교회협의회등 연합기관에는 20% 여성비례대표를 참여시키고 있다. 또한 교단본부의 실무자로 국장 4명중 2명이 여성국장이서 매우 고무적이었다( 기구 개혁으로 부장이 되어버렸다). 기장을 비롯한 장로교단에서 아직까지 여성의 참여가 적은 것은 장로교는 장로에 의해 치리된다는 ‘장로교단’이라는 정체성 때문이다. 장로교단에서 여성이 교단결의기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목사나 장로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제도적 맹점이 있다. 외국의 개혁교회나 연합교회에서의 남녀평등적인 여성의 위치를 예로 들면 “그 교회는 장로교가 아니니까...”하고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갖고 대응해서 대책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외국장로교의 여성참여사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차별적인 안수제도가 이 기간에 폭넓게 개선되었다. 감리교 여선교회에서는 여교역자회와 함께 총회 장정의 성차별 조항의 개정운동을 벌여 기혼여성의 교회담임을 제한하는 독소조항을 1989년 삭제케 하였다. 현재까지 감리교의 경우 여장로 5백명과 여목사 130명, 기장에 여장로 100명과 70명의 여목사가 있고 여목사 노회장이 탄생하였다. 한편 복음교회에서는 교단총회에 여성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1호 여장로가 탄생되었다. 구세군의 경우 남녀 관계없이 배우자의 계급에 따라 진급할 수 있게 되었으나 남자의 정년에 따라 여자도 은퇴해야 하는 문제는 연구과제다.
특별히 여성 10년에서 획기적인 일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단인 예장 통합에서 여성안수제도가 통과되었으며 현재 175명의 여교역자가 목사고시에 응시중이다. 예장 통합의 여성 안수통과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예장의 여성안수문제를 위해 모든 교회여성단체들이 연대하여 여성안수공동대책협의회를 결성, 여성안수에 대한 자료집을 내고 여성안수주간을 실시하고 걷기 대회 등을 통해 캠패인 등을 벌이면서 집중적인 관심사를 보이고 같이 투쟁했다는데 의의가 있고 그 여파가 다른 교단에까지 미치리라는 점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안수제가 시행되지 않는 교단이 많고 설사 안수제도가 통과된 교단이라 할지라도 사실상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여교역자의 경우 안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남교역자에 비해 대우가 떨어지고 담임목사 청빙이 어렵다. 기장여신도회에서는 이런 여교역자의 현실을 감안, 여신도들을 대상으로 이미 제도화된 여성안수의 활성화를 위해 여교역자 청빙과 여장로 피택을 위한 활동을 벌이면서 여성 목회자의 진로를 위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여성 목회자의 활로를 모색하는 일은 여성목회 정립차원에서도 계속 연구되어야 할 문제다. 이 보고서에는 들어와 있지 않지만 목회지원센타가 같은 맥락에서 활동을 벌여왔다. 여성안수제도가 없는 교단에서는 예배시 여성이 순서에 참여하는 운동과 교단이나 교회의 회의에 참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예배가 권위의 상징임을 미루어 볼 때 매우 중요한 운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교단여성단체의 가부장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들은 한결같이 여성안수와 결의기구 참여에 집중되어 있고 교회 내 남녀평등공동체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제안한 여성들의 참여를 위한 물음 가운데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고 인정되어지는 것 가운데 남성들은 무엇을 동등하게 분담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있다. 여성 10년선언대회에서도 이연옥회장은 한국교회여성의 현주소로서 남녀평신도들의 봉사균형과 민주화가 시급하다고 제기했으며 서광선교수는 “교회 여성들이 교회의 부엌에서 뛰어나오든지 교회의 남성들을 부엌에서 일하도록 협력체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 이유를 “교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 분담이 안될 경우 협력관계가 아니라 예속과 지배의 관계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고 섬기는 일에 여성을 몰고 있는 교회현실에서 고정화되어 있는 성역할을 어떻게 불식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난다. 교회의 정서를 너무 고려하기 때문인 듯 하다. 실제로 여신도교육시에 성역할분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목회자가 그런 교육을 기피하기 때문에 다음 교육시에 여성을 보내지 않는 어려움이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지만 여성 10년이 선포된지 7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성들은 여전히 교회 부엌에 매어 있다. 다만 민중교회에서나 남녀가 함께 주방봉사와 예배를 담당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교회는 여성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교회의 민주화와 여남공동체 형성은 교단여성단체보다는 여성신학관련단체들이 더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태동부터 교회의 민주화를 내건 여신학자협의회, 기독교여성평화연구원, 아시아여성신학교육원, 여성교회, 기독여민회 등의 단체와 각 교단 여교역자회에서는 여성신학 입장에서 교회의 예배와 제도등를 비롯한 가부장적 교회문화를 평등문화로 바꾸기 위한 활동을 벌여왔다. 기독교여성 10년의 핵심과제인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는 평등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대화모임이나 세미나를 실시했다. 교회협 여성위원회의 교단 총무와의 간담회회, 아시아여성신학교육원과 여신학자협의회,아시아여성자료센타가 공동으로 마련한 여남공동체를 위한 세미나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성신학과 관련된 단체들이 대부분 회원단체들이 아니어서 회원을 통한 운동의 확산을 할 수가 없고 교단여성단체들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교단여성과의 연계가 없어 연구가 연구로 끝나고 말았다. 1995년 통일희년교회여성협의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연구,기획 등의 일은 대개 여성신학단체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교단에서 이걸 받아들이지 못해 확산되지 못했다. 이 협의회에서 여성희년의 중요과제로 여남평등교회공동체위원회를 구성, 여성들의 평등의식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응답 결과를 보면 86년에 여신협에서 실시한 여교역자 실태조사에서 나온 의식조사보다 10년사이에 여성의식이 매우 진보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지난 7년동안 가부장문화를 깨뜨리려는 여성의식은 진보를 했고 여성안수도 발전했다는 점에서 교회의 가부장제 문화의 억압구조를 변화시키는데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성신학단체들과 교단여성단체들과의 긴밀한 공조체제가 형성된다면 여남공동체형성이 더욱 앞당겨질 수 있지 않을까?
2)사회공동체의 변화를 위해 참여에 노력한 일들
교회여성들이 사회에서의 여성참여를 위한 일로는 범교단적과 범여성적으로 벌인 가족법 개정을 위한 운동과 일부 여성단체가 참여한 여성정치 참여 20%를 위한 운동, 각정당 여성정책 토론회 실시,여성의 의회진출 평가회,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운동, 사회에 여성참여를 뒷받침하기 위한 탁아방등 제도장치를 위한 노력, 언론모니터활동, 혼자된 여성의 사회복지제도 촉구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을 보면 교회여성들이 활발한 대사회적 활동을 한 것같이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였다. 성폭력방지법이나 남녀고용평등촉진법, 여성의 정치참여운동은 일반여성이 주도되어 변화를 가져왔으며 가족법개정을 제외하고는 이 부분에서 교회여성의 활동이 너무 미흡하였다. 여성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여성단체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지 못한채 너무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과거에는 교회여성이 사회여성운동의 지도자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특히 교단차원일수록 사회에서의 여성참여를 위한 활동이 저조하며 불평등한 사회문화의 희생자들에 대한 구제부분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소외된 자를 돌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제도의 개혁이 없다면 가부장적 사회제도에 의한 희생자는 끊임없이 산출되기 때문에 제도개혁운동에 적극적인 참여가 아쉽다.
4. 정의,평화, 창조의 보전을 위한 활동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을 위한 교회여성 활동보고는 활동 내용이 많다는게 특징이다. 이걸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면 그만큼 교회여성들이 우리나라의 정의, 평화,창조의 보전을 위해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일부 교단여성단체에서 JPIC라는 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소극적으로 대처한 면도 없지 않다.
정의,평화,창조의 보전을 위한 활동은 주로 매매춘여성을 위한 인권운동, 정신대문제해결을 위한 활동, 반핵평화운동, 최루탄반대운동, 군축운동, 방위비삭감해서 여성복지에 쓰기운동, 한반도통일을 위한 댕기 잇기를 비롯한 보안법철폐운동, 장기수돕기, 양심수석방운동, 재일 동포 인권지원 운동, 한반도통일을 위한 여성협의회등 각종 통일세미나와 교육, 통일자료발간, 통일마라톤과 백일장 등의 통일운동, 주한미군범죄대책활동과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인권운동과 공해추방운동과 환경운동, 생명문화창조운동, 민중여성의 생존권 보장운동, 희년운동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활동 역시 기독교여성 10년과는 관계없이 여성단체들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벌인 일이었다.
기독여성 10년이 우선순위로 정의와 평화와 창조의 보전을 위한 여성들의 결단과 헌신을 촉구한 것은 단순히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차별받고 억압으며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여성들의 삶은 여성 자신의 발전에 역효과를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과 사회에도 역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활동과제로 인종차별, 군국주의,빈곤, 실업과 같은 특수한 억압을 규명하고 다국적기업, 전쟁,추방,폭력,매춘으로 생긴 경제적 억압을 제거할 것을 제시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여성들이 벌인 활동들은 기독여성 10년의 정신에 부합하며 적절한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운동이 남성단체나 교단의 요구에 의한 종속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이 제안해서 여성이 추진한 일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통일댕기 잇기 역시 여성들이 시작해서 교회협 희년대회에까지 이어졌고 카나다와 독일등 국제적 연대까지 끌어내었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희년이 선포된 이후 88년 교회협희년선언에서 여성문제가 빠지자 한국여신학자 선언을 따로 내어 교회협 희년선언이 간과하고 있는 가부장문제,남녀평등적 교회의 비젼 등에 관한 시각 결여를 비판하였으며 여성신학적 맥락으로 희년정신을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92년 희년통일과제 실천과제를 논의할 때 여성들의 입장이 거의 반영되었다는 것도 여성운동의 성과다. 이런 성과물이 작년에 실시된 희년국제협의회에의 희년선언에 빠진 것을 발견하고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그 선언문을 거부하는 바람에 대회선언문 자체가 선포되지 못했다. 이렇게 여성들이 아우성친 효과가 있어 희년평가 모임에 여성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는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여성들이 시작한 일이 운동성과 추진력이 약해 일반여성단체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경우도 생겼다. 교회여성연합회가 시작한 정신대문제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실제 교회여성의 밑바닥까지 여성의식화가 되지 못해 일부 교단에서는 여전히 치유 일변도의 사업을 벌이고 있고 통일운동도 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협의회 참석이나 기도회등 행사위주로 사업을 벌인 곳이 많다. 보안법 폐지나 방위비삭감운동에 교단 여성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했는데 아마 반공주의 교육의 후유증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여성의 집결체였던 통일희년교회여성협의회의 경우도 교단 정서를 너무 고려하여 경제정의실현이라든지 JPIC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했는데도 결국 교단정치에 말려 여성들의 연합된 힘을 쏟지 못했다. 실제로 운동이라는 말을 쓰면 마치 비기독교적인 것 같고 선교나 사회봉사라는 말을 써야 기독교적인 것같이 생각해서 움직이는 교회여성 정서는 이 땅에 정의, 평화,창조의 보전을 위해 교회여성의 힘을 모으는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또하나의 비판은 국내문제가 산적하다보니 외국인노동자의 문제라든지 열대림의 문제, 보스니아에서 희생되는 여성의 문제 등에 관심하지 못했다. 너무 우리의 시선이 우리 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점은 반성되어야 한다. 세계교회협 여성국장인 아루나도 이점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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