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회개혁과 선교
한국교회 여성들의 선교모습과 과제
한 국 염
들어가면서
교회여성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일선교회를 방문하면, 교회 표어 중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선교하는 교회”이다. 전철 안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예수, 천당”을 외치는 전도단이 있는가 하면, 거리에서 "예수 믿고 구원받고 복 받으시오“라고 쪽지를 돌리며 전도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런 외침이 한국교회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몰라도, 이들은 선교를 열심히 한다는 자부심에 차 있다. 이런 모습이 아니더라도 한국교회가 선교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는 말이 예수의 최후부탁이고 보면 열심히 선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선교를 통해서 한국교인들이 얼마만큼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고, 한국교회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삶의 질이 얼마나 좋아졌느냐 하는 것이다. 오히려 물량주의적 행태와 목회자 세습문제 등으로 인해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실정이다. 이런 현실로 인해 한국교회의 선교양태는 교회개혁의 주요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선교가 교회개혁의 중요 관심사가 되는 것은 선교양태가 교회의 삶의 양식, 교회의 존재양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선교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교회의 존재양식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어떤 관점에서 선교를 보아야 하는가?
전통적으로 선교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하신 말씀(마태복음 28장 16-20절)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행전 1장 8절)라고 하신 예수의 지상 최후의 위탁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예수의 증인이 되는 길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겠으나, 복음 전파의 방법을 이방지역에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선교사를 보내거나 개교회에서 전도활동을 하여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으로만 파악하는데 문제점이 있다. 이런 고전적인 선교개념, 즉 교회를 세우고 불신자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복음전도를 하는 것으로서의 교회 중심적인 선교이해는 제국주의적 기독교의 팽창과 무비판적으로 서구문화를 이식시키는 위험이 있다고 비판받기도 하였다.
20세기에 와서 에큐메니칼 교회운동에서 선교에 대한 파라다임의 전이가 일어난다. 그것은 이제까지 선교의 주체는 ‘교회’라는 데서 선교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고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동참자로 파악하는 것이다.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활동이다. 삼위일체라는 말에 담긴 가부장성이 논란이 되긴 하지만, 어쨋던 하나님의 구원활동에 참여하는 것, 즉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그 나라의 약속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다. 증언자로서의 교회가 직접 몸으로 증인이 되는 구체적인 활동이 곧 선교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파라다임의 전환에 따라 여성신학 관점에서의 선교이해도 “죽음을 넘어서 삶을 긍정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으로 새롭게 전환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지구화 시대의 시장경제 하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로 대변되어지는, 가난한 사람들,힘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이다. 선교는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 협력과 연대의 다리를 놓는 것, 생존투쟁을 하는 민초의 운동에 힘을 북돋아주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행하는 것" 등, 다양한 입장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물량적 성장위주의 대교회주의, 세습문제 등은 한국교회의 기독교 제국주의적이고 교회 중심적인 선교관이 그 원인이라고 본다. 한국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선교관이 여성신학적 관점을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여성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여성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하는 일,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행동, 하나님이 보시고 좋았다고 하신 그 모습으로 짓밟힌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 즉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을 위한 활동 그 자체가 선교활동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교회 여성들의 선교횔동을 살펴보고 21세기에 바람직한 선교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보려고 한다.
1. 초창기 한국교회의 선교와 교회여성들의 선교활동
초창기 한국교회는 여성신학이나 하나님의 선교신학에서 주창하는 선교사명을 잘 수행하였다. 유교의 가부장제도하에서 억눌려 있던 여성에게 전파된 기독교는 복음의 빛이었다. 기독교는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게 지음받은 존재임을 일깨워 주었고 기독교가 주창하는 일부일처의 가정윤리와 남녀평등 사상은 여성들에게 복음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여성에 대한 기독교의 적극적인 공헌을 문일평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기독교로 말미암아 첫째는 그네들이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소유자임을 발견하여 신(神) 앞에는 남녀가 평등한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는 여성이 오늘날까지 구금동양(拘禁同樣)의 옥내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일요(日曜)에는 반드시 교당에 가서 남성과 한가지로 청강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 셋째는 일반여성이 ‘바이블’을 읽기 위하여 조선 글을 숭상한 때문에 여성사이에 문자가 크게 보급되었다. 이것은 양서(兩西)와 같이 기독교가 성행하는 지방에는 물론이요, 아직 기독교가 보급되지 못한 삼남지방에도 여성의 생활상태에 다소 변동을 주지 않은 데가 없으니 기독교의 감화가 어찌 크지 않다 하랴.”
실제로 여성들이 기독교에 입교하게 된 동기가 예수 믿고 천당 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전한 해방의 복음 때문이었다. 김서켜스라는 여성은 노블 선교사 부인이 펴낸 “은혜 많은 나의 생활”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세례 받던 날은 내 인생의 가장 기쁜 날이었다. 우리 조선여자들은 몇 천년 동안을 남자에 압박 아래서 성명이 없이 살았다. 만일 우리 조선에 예수의 빛이 비치지 아니하였던들, 조선의 여자계가 오늘 이만치도 발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로 말하면 조선여자의 자유운동은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반도에 비치던 날로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
이렇듯 기독교의 해방복음에 감화를 받아 신자가 된 여성들은 복음전도자로, 여성해방가로, 구국운동가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인다.
1) 전도부인의 선교활동
처음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할 때 한국의 내외법과 언어 때문에 직접 한국인에게 전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 부인들을 훈련시켜 전도부인을 만들었다. 이 전도부인들은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여신자들이 생겼다. 1894년의 한 보고서는 한 부인이 6개월간 140회의 집회를 가졌으며 50가구를 방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른 부인은 3천명을 전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황금쥐(golden rat)라고 불리는 한 전도부인은 1년에 6,730명의 여성을 방문해서 성서를 4,491권이나 팔았다. 이 전도부인들은 여선교사의 지도 아래 집안에 갇혀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부인들을 교회로 나오게 했다. 이러한 전도부인은 단순히 가정방문만 한 것이 아니라 뒤에는 기도회, 성경공부, 사경회 등 각종모임을 인도함으로 명실공히 한국교회의 여성지도자가 되었다.
2). 전도회 조직을 통한 국내선교와 해외선교활동
전도부인들에게 감화 받은 여신도들은 토지와 가옥 등을 헌물하고 품팔이한 돈을 헌금하면서 교회를 짓고 종도 헌납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헌신했다. 여신도들의 이러한 헌신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들의 헌신에 의해 한국교회의 성장이 이루어졌고 또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교회를 자립케 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여신도수가 날로 증가하자 이 신도들을 중심으로 전도회를 조직하여 전도에 힘썼다. 최초의 전도회는 1989년 평양 굴다리골에서 여신도 이신행 등 4인이 조직했다. 이 전도회는 1900년에 조직된 남신도전도회보다 2년이 앞선 것으로 여성의 적극성을 잘 보여준다. 이 여성들의 조직은 1908년 평양지역 여전도회 연합회를 조직하고 1920년대에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전도회를 조직한 여신도들은 성미로 교역자 생활비를 책임졌고 헌금으로 교회를 유지하면서 전도팀을 조직하여 전도에 나섰다. 국내 뿐 아니라, 일본, 만주, 산동성 등에 국외선교를 위해 선교사를 파송했다. 감리교 여선교회는 인도에 선교비를 보조하였는데 이는 “인도인에게는 인도인이 선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여신도들의 국내선교와 국외선교 전통은 이미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것이다.
3) 반일, 항일운동
한국교회는 ‘민비시해사건’ 뒤 반일민족교회로서의 생리를 굳혀갔다. 이에 교회여성들의 반일, 항일운동은 치열했다. 국채보상운동, 삼일만세운동, 교육과 계몽운동, 여성권익운동, 신사참배운동 등 항일운동을 벌였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제에 진 국가의 빚을 갚음으로 일제로부터 자립하려는 목적으로 전개된 것이었다. 이 운동에는 교회여성들이 자력으로 참여했다. 국채보상을 위한 여성단체 30개 중 4개가 기독교 여성단체였으며 31%가 교회여성들이었다. 그중 인천의 ‘국미적성회’는 매일매일 먹는 양식 중 식구수대로 한 술씩 떠 모아 의연금을 모았는데 이들이 모은 성미가 무려 19섬이나 되었다. 이 국채보상운동에 여자들이 참가하면서 낸 성명서를 보면 “국채를 갚아 국권을 회복함은 물론 여자의 힘을 세상에 보임으로 남녀동등권을 찾자”는 이중목적이 나타나 있다.
1919년 삼일만세운동에는 삼일운동의 상징인 유관순을 비롯하여 교회여성들이 대거 참여했다. 삼일운동으로 검거된 여성의 반수는 장로교인이었다. 여성들의 삼일만세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기독교계학교 출신이었다.
삼일운동 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독립운동이 지하로 숨은 후 교회여성 활동은 대부분 계몽위주의 교육으로 전환되었다. 부인강습을 주도한 ‘조선여자교육회’, 전도, 교육, 자선을 목적으로 한 ‘YWCA’, 금주금연의 ‘기독교절제회’,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제휴한 ‘근우회’ 등의 단체가 탄생하여 여성들의 계몽과 교육에 나섰다. 특히 ‘근우회’의 강령에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법률적 차별 철폐와 봉건적 미신타파, 결혼의 자유, 인신매매와 공장 폐지, 농촌부인의 경제적 이익옹호, 부인노동의 임금차별 및 산전 산후의 임금지불, 부인과 소녀공의 위험노동 및 야업 폐지를 행동강령으로 내세웠다. 이 근우회의 행동강령은 오늘날의 여성운동에서도 같은 맥락을 잇고 있어 매우 선각자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교회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운동으로는 1933년 장로교 함남 연합회가 여장로제를 청원하였다. 이 청원서에는 104명의 여성들이 서명하였는데 총회에서는 창세기에서 아담이 이브보다 먼저 창조되었고 이브가 타락을 가져왔다는 사도 바울의 말을 근거로 기각하였다. 이미 이때부터 여성안수문제는 험난한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많은 교계 지도자들이 변절의 길을 가는 동안 대부분의 여성들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지켰다. 감리교와는 달리 장로교 여전도회는 1938년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총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신사참배 반대의 길을 택했다. 이들은 여전도회 총회를 열지 않고 폐쇄, 지하로 숨었다. 특별히 경남 마산의 최덕지 전도사와 안이숙 등은 철저한 신사참배 반대로 수난을 당하였다.
일제하에서의 교회여성의 활동을 이렇게 장황히 소개하는 것은 70년대부터 시작된 교회여성의 선교활동이 바로 한국 초대교회의 선교활동과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 해방 이후 한국상황과 교회여성의 선교
1)해방에서 60년대까지
-민족분단과 교회분열을 싸안고
해방 전까지 교회여성들은 복음전도, 여성해방 내지 여성인간화운동, 민족운동 등 선교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면서 지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었다. 오늘날 교회여성들의 활동은 대부분 이 때의 맥을 잇는 것이다.
해방 후 1960년까지는 민족분단과 교회분열, 4.19학생의거와 5.16군사 쿠데타 등의 국가적, 교회적 변수가 많은 시기였다. 특히 6.25 동족상잔이라는 민족의 수난 앞에서 교회 여성의 역할은 일제 때 망가진 교회를 재건하고 전쟁의 상처를 싸안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 피난민과 상이군인, 전쟁고아와 모자원 등을 설립하고 그들을 돌보았다. 이 시기 여성들의 활동은 자연히 구제와 봉사, 그리고 이전에 해오던 전도가 주 역할이었다. 이런 중에도 특별히 예장 여전도회의 영등포 근로여성선교는 오늘날의 ‘도시 농어촌 산업선교’의 시발점이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신사참배 반대교단인 재건파와 최덕지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1955년에 감리교 전밀라, 명화섭 두 여목사가 탄생하였다. 또한 기독교 장로회에서 여장로제가 통과되었다. 그리고 연합사업으로 기독교가정문서선교의 일환인 「새가정」이 발간되었으며 '적은 돈' 운동이 1959년에 시작되었다. '적은 돈' 운동이란 세계기독여성들이 모일 때마다 그 나라 화폐단위 중 가장 작은 돈을 모아 세계교회여성연합회로 보내면 세계 각국의 여성들을 위해 쓰여지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은 6.25 때 이 적은 돈의 도움을 받았고 원폭 피해자를 돕는 데도 도움을 받았다. 이 ‘적은 돈 운동’을 계기로 1967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발족되었다.
2) 70년대에서 80년대
- 여성의 인간화를 향한 선교활동
6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근대화는 군사독재 아래에서 ‘선건설, 후분배’라는 슬로건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인권의 억압, 노동자의 착취가 가중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태일의 분신사건을 필두로 한국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삼선개헌반대, 남산 부활절예배사건, 민청학련사건, 삼일사건, 산업선교자 구속사건, Y.H. 사건,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 등 기독교인들이 관여한 민주화 투쟁과 광주항쟁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진보적 교회여성들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여 인권옹호와 민주화를 위한 대열에 동참하였다. 이 운동은 주로 양심수 가족 돕기와 여성노동자운동 후원, 독재에 항거하는 성명서와 시위, 기도회 등으로 이어졌다. 진보적 교회여성들은 1975년 여성의 해를 기점으로 여성인간화를 위한 운동에 나섰다. 특히 1978년 여공들의 노동운동을 박해한 동일방직사건 등 일련의 여성노동운동 사건과 Y.H. 사건은 진보적 교회여성으로 하여금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주로 교회여성연합회와 기장여신도회, 감리교 조화순 목사를 비롯한 일부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 가족법 개정, 기생관광반대, 원폭피해자돕기, 공해반대운동, 매매춘 근절운동을 비롯한 성폭력추방운동 등이 일어났다.
80년대에 이르러 교회여성들은 획기적인 운동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것은 생명문화 창조운동이다. 이 운동은 산업화 이후 물질문명의 파괴적인 모습, 즉 물질만능,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죽음의 문화로 떨어지는 오늘의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생명의 문화를 창조하자는 것이다. 특히 이 운동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더 알기에 여성들이 먼저 시작한 것이다. 이 운동은 모두가 사는 사회건설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자는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생명운동은 생명의 담지자로 선택받은 여성들이 사랑의 원리와 모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이러한 운동과 함께 여대생추행대책협의회, 해고근로자를 돕는 불매운동, 25세 여성 조기 정년제 철폐운동, KBS-TV 시청료 거부운동,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의 여성문제를 일반 여성단체와 연대하여 전개하였다. 90년에는 일제 강점 하에서 일본군의 성노예였던 정신대여성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그 결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3) 90년대의 교회여성들의 선교활동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위하여
1988년에 한국교회는 ‘95 통일희년의 해’를 선포한다. 이미 1986년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의 분단세미나를 시작으로 민족의 과제인 통일문제를 교회여성들의 과제로 받아 통일운동이 선교활동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잡는다. 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 간과하고 있는 가부장문제와 남녀 평등적 교회 비전 등에 대한 시각결여를 비판하면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여신학자선언”을 선포하였다. 군축운동, 핵 반대 등의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이 한 선상에서 전개된다. 특히 이때 평화운동의 일환으로 최루탄 반대운동을 일으켰으며 최루탄을 던지는 전투경찰 대원들의 가슴에 꽃을 달아 주는 운동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매매춘여성을 위한 인권운동, 정신대문제해결을 위한 활동, 방위비를 삭감해서 여성복지에 쓰기 운동, 한반도통일을 위한 댕기 잇기를 비롯한 기도운동, 보안법철폐운동, 장기수 돕기, 양심수석방운동, 재일 동포 인권지원 운동, 주한미군범죄대책활동과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인권운동과 공해추방운동과 환경운동, 생명문화창조운동, 민중여성의 생존권 보장운동, 희년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또한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에 유입되면서 외국인여성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한 일과 북한주민을 위한 나누기 운동도 시작하였다.
한국교회사 속에서 여성들은 명실공히 교회의 어머니로서, 산파로서, 민족의 어머니로서 교회를 키우고 민족을 돕는 선교적 사명을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이런 한국교회여성의 선교운동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 에큐메니칼 기구 단위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전국연합회를 비롯한 특정한 교단의 전국연합회 단위에서 시행되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교단 여성 전국조직이나 또는 일선 지회 여성 밑바닥에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일부 교단에서는 여전히 치유일변도의 사업을 벌여왔고 통일운동도 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기도회로 만족한 경우가 많다. 운동을 선교활동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운동이라는 말을 쓰면 비기독교적이거나 비성서적인 것 같고, 선교나 사회봉사라는 말을 써야 기독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교회여성들의 정서였다.
3. 교단 여성조직의 선교활동
한국교회 여성들의 선교활동을 보면 교단여성들이 모인 연합체인 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나 교회여성연합회 단위에서는 여성신학이나 하나님의 선교신학 입장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 뚜렷하다. 그러나 개 교단 전국연합회 차원으로 가면 이러한 입장과 근본주의 입장이 함께 혼재해 나타나고 지역 연합회나 지회 단위로 가면 교회 중심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입장에 서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P교단 여성의 선교활동을 지회와 연합회, 전국연합회 차원에서 조사하고 8개 교단의 연합체인 교회여성연합회의 선교활동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지회에서부터 단위가 올라갈수록 넓은 의미에서의 선교활동으로 발전하고 있음이 드러나며 특히 연합체로 갈수록 폭넓은 개념의 선교활동을 함이 보인다. (이 자료는 1997년-1998년의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선교부, 사회부, 봉사부 등의 사업에서 선교부분이라고 생각된 것을 발췌한 것이다. M교단과 K교단의 것도 살펴보았으나 별 차이가 없어 여기에 P교단 자료만 밝힌다).
1) 지교회 여전도회의 선교활동
주요 선교활동은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 지원, 장학금지원, 새가정 군부대보내기, 맹아원과 교도소 지원, 구제비를 모아 기관 보조하기, 해외에 성경 보내기, 군선교 후원하기, 바자회 열어 선교비 마련하기, 출소자 돕기, 소년원 방문하고 돕기, 요양원 방문과 지원, 병원교회 지원하고 자원봉사하기, 불우여성시설 방문하여 예배드리고 지원하기, 장애인 돕기, 교회의 각종 행사에 봉사하기 등으로 지회의 선교사업은 주로 구호와 자선, 교회후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근본주의적이고 좁은 의미의 선교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2) 연합회 선교활동
연합회 차원의 선교활동을 보면 미자립교회 보조, 장애인선교, 군부대 위문과 군목을 지원하고 군교회를 보조하는 일, 새가정 보내기 등의 문서선교,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제3세계 신학생에게 장학금 주기, 한민족 평화의 날을 위해 일일 부흥회, 선교대회 열기, 이단종파 특강, 교도소 지원하기, 병원선교, 실직자 지원, 여성수인을 위한 사랑의 조끼 뜨기, 베트남 고엽제 폐해자 소송비 지원하기, 해외선교사 지원하기, 북한 돕기, 환경보존을 위한 교육과 실천장려, 봉사기관 후원하기 등으로 지회 활동인 구호와 자선, 교회 돕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베트남 문제라든지 간간이 사회문제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통적인 교회중심적 선교관에 머물러 있음이 엿보인다.
3) 전국연합회 선교활동
전국연합회 단위의 선교활동을 보면 재일 동포 교회여성 모국방문 프로그램, 북한 위한 사랑의 쌀 나누기, 해외선교사 파송 및 후원과 선교지 방문, 농어촌교회 지원, 군선교 지원, 상담소 설치, 환경보전 캠페인과 재활용, 나누어 쓰기 등 환경운동, 우리 농산물 먹기와 우리 농산물 상설 매장 설치 운영, 여성안수 운동, 여성목회자 지원, 민족통일연구소 발족, 평화통일문제 세미나, 평화의 쌀 나눔 운동 전개, 한민족평화의 날 선포와 예배, 인신매매 반대 캠페인,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폭력의 실태 교육과 고발운동, 국내 결손가정 돕기와 무의탁노인과 장애자를 위한 시설 운영, 해와 제삼세계 어린이 위한 급식비와 장학금 지원 등으로 단순한 지원에서부터 점차적으로 여성운동, 사회운동, 통일운동으로 그 지평을 넓혀 감이 보인다.
4) 교회여성연합회
난민 돕기, 원폭피해자 돕기와 핵반대운동, 교회여성통일교실, 방위비 삭감운동,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 정신대문제해결을 위한 운동, 남북 인간띠 잇기 운동, 통일을 여는 교회여성 한마당, 무의탁 장기수 위한 사랑의 조끼 뜨기, 매매춘반대운동, 환경운동,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진입반대서명운동, 혼혈어린이 후원운동, 한미행정협정개정을 위한 서명운동과 공청회, 외국인노동자보호법 청원을 위한 공청회, 외국인여성노동자 실태조사와 국적법 공청회, 상담소 개소 등.
이상에서 우리는 교회여성 조직의 단위가 작아질수록, 선교를 실천하는 가장 기본 단위인 개교회로 갈수록 선교에 대한 그 시야가 좁아짐을 보았다. 문제는 지교회 여성들의 구호와 보조중심의 선교활동은 그 자체가 교회에서 보조자로 머물러있는 교회여성들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는 것이다. 선교의 주체여야 할 교회여성들이 교회에서 보조자로 머물러 있는 한 그 여성들이 하는 선교활동은 보조적인 역할만 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선교 내지 디아코니아 선교 등 여성신학 관점에서의 폭넓은 선교란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선교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1988년 세계교회협의회가 선포한 바 있는 “교회가 여성과 함께 하는 에큐메니칼 10년”에서 강조한 실천사항들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즉 교회를 여성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고, 여성의 눈으로 신학하고 영성을 나누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여성의 온전함을 회복하도록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21세기 교회여성의 선교적 과제
21세기에 교회여성들의 선교적 과제는 무엇인가? 1998년 “교회가 여성과 함께 하는 기독여성 10년”을 마감하고 제2의 기독여성 10년을 선언한 그 선언문의 일부를 인용함으로 이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선언문이 21세기 교회여성의 선교적 과제를 잘 드러내 주고 있으며 여성신학적 선교이해와 일치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전세계적으로 무한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질서는 여성과 민중의 빈곤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 역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하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불의와 불평등이, 전쟁의 위협과 공포 앞에 신음하고 있다. 또한 민족공동체적으로 보면 냉전이 끝난 지가 오래되지만 우리는 분단의 높은 벽을 안고 서로 분단의 벽 앞에서 적개심의 담을 쌓고 동족간에 과도한 국방경쟁을 하면서 민족의 복지로 써야 할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은 여전히 성폭력의 희생자로 그리고 교육과 취업과 기회의 불평등으로 여전히 고통에 신음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생태계는 인간중심의 개발정책에 의해 파괴되고 신음하면서 하나님의 딸, 아들이 나타나 생명을 살려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이 선언문에서 기독여성들은 21세기의 일차적 선교과제는 소위 지구화라는 미명하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정책으로 고통 당하는 피조물에 대한 관심’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이 선교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한국교회에게 “가부장제도 하에서 내 교회, 내 교단, 대교회 중심의 이기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져 섬김과 나눔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일을 부추기는 데”서 돌이켜 ‘평등과 나눔의 생명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평등과 나눔의 생명공동체”로서의 교회 상, 이것은 여성들이 꿈꾸는 교회의 모습이며 이 교회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선교를 꿈꾼다.
“하나님은 우리 여성들에게 “평등과 나눔의 생명공동체를 일구도록 오늘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는 우리 여성들이 이 평등과 나눔의 생명공동체를 꿈꾸고 키워나갈 때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음을 바라본다. 우리는 생명공동체 정신을 통해서 교회와 사회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 생명이 살아있는 공동체, 생명을 꿈꿀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여성과 남성이 함께 부르심을 받았음을 믿는다.”
남성과 여성이 명실공히 파트너가 되어 이지러진 한국교회를 생명공동체로 변화시키고 교인들은 한국사회를 생명이 넘치는 공동체로 만드는 그런 선교의 전위대가 될 수 있도록, 성령이여, 오소서! 우리를 도우소서!
* 이 글은 2007년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정책협의회 발제문이며, 교회협의회 월간지에 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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