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와 다문화

여성의 이주와 젠더관점으로 본 공정무역

한국소금 2019. 3. 22. 21:04

여성의 이주와 젠더관점으로 본 공정무역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설립자, 전 대표

사회적 기업 트립티 연구소 연구위원

 

1. 왜 이주여성문제에 공정무역을 말하는가?

 

1) 공정무역과 나

 

여성학에서는 내 이야기나 여성의 삶의 자리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오늘의 공정무역 이야기도 나의 이야기에서부터 접근하고자 한다. 내 정체성을 물으면 종교인으로 여성운동가라고 대답한다.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 갔더니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해서 그 때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성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후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지만, 주로 종교여성해방운동과 여성권익운동에 몰입하게 되었다. 독일교회에서 가족장학금을 받게 되어 3년 동안 독일에서 지내면서 독일에 광부와 간호원으로 가 이주노동자로 지냈던 교민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주민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주민 역량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독일 사회가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떤 시스템적으로 돌보는지에 관심하였다. 이게 귀국해서 내 이주여성운동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독일에서 한 또 하나의 경험은 공정무역운동이다. 독일교회 대부분이 제삼세계 마켓을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정당한 가격을 주고 물건을 구입해 마켓을 열고 교인들과 지역사회에 팔고 있었다. “, 독일교회가 굶주리는 아프리카를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구나!”하고 적지 않은 감명은 받았다. 교회에서 파는 바나나가 유기농제품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사먹으려고 해도, 유학생 경제사정으로는 비싸서 사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공정무역이라는 단어도 잘 몰랐고, 그저 제삼세계 도와주는 일을 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바나나 한 개에 천 원 할 때니까 비싸다는 생각밖에 못했다. 교회에서 예배 끝나면 문 앞에서 헌금바구니에 제삼세계를 위해 ‘Bread for the World’(BFW, 세계를 위한 빵) 모금을 하고 있었다. BFW는 지원이고, 제삼세계 마켓은 공정무역이라는 것을 구별하지도 못했고, 둘 다 제삼세계를 지원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나중에 보니 BFW가 개발도상국 빈곤민중을 위한 지원은 물론, 여성들과 함께 하는 공정무역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었다.

내가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을 한 것은 10년 후였다. 독일에 가보니 교회들이 제삼세계 마켓이라는 말 대신 공정무역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2년마다 전체 독일교회가 모여서 하는 독일교회의 날행사에는 일반 마켓은 아예 못 들어왔다. 공정무역 마켓과 유기농 지역 농산물(로칼 후드) 마켓만 설치되어 광장 장터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 부스를 통해 그렇게 많은 공정무역 제품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 행사 부스에서 파트너쉽이 있는 개발도상국 농민들이나 제품생산자들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정무역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고 있었다. 2년 전에 독일교회의 날에 일본군위안부 문제 때문에 초청을 받아 갔었는데, 일본군위안부부스를 하면서 틈 날 때마다 공정무역 부스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공정무역 장터에서 독일교회 공정무역 파트너 생산자 몇 명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공정무역을 통해 자기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생산자조합을 통해 자기 지역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기 자녀들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정무역을 여성이주의 한 대안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2) 나는 왜 공정무역과 여성의 이주를 연결하게 되었는가?

나는 왜 여성의 이주문제를 공정무역과 연결 짓게 되었는가? 이주여성의 삶의 자리 때문이다. 1991년에 한국에 돌아오니,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어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산업연수생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몸에 쇠사슬을 묶고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을 한 사건을 계기로 1996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외국인여성상담소에서 여는 기념 심포지엄에서 외국인여성노동자의 선교적 과제라는 발제를 부탁받았다. 발제를 준비하면서 교회여성연합회가 실시한 외국인여성노동자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상황들을 살피면서 차별받고 있는 이주여성노동자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주 여성노동자 대부분이 산업기술연수생자격으로 한국에 왔다가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었다. 조사에 참여한 이들이 산업연수생이나 미등록여성노동자들도 있었지만 중국동포 여성들이 많았다. 중국동포들은 친지방문이라는 명분의 관광비자로 입국해서 취업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국 동포를 조선족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는데(2008년 동포방문취업제도가 열림)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었다.

그때 남편과 청암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성남의 한 양말 공장에서 도망쳐 나온 중국인 8명이 우리 교회로 오게 되었다. ‘청암교회사업으로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를 열었다. 여성들을 위한 쉼터는 없었고 대부분의 이주운동에 젠더 관점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젠더 관점에서 이주여성을 위한 활동을 할 필요성이 보였다. 2001년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부설로 한국 최초로 이주여성쉼터 여성이주노동자의 집을 설립했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이주여성들을 만났다. 2002년 말 이주여성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센터 이름을 이주여성인권센터로 바꾸고 본격적인 이주여성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이 센터에서 여성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관광협회 비자로 와서 유흥업에서 일하다 성매매업소로 유입되는 이주여성들의 삶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남의 나라에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본국의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이주를 한 경우였다. 대부분 자발적으로 이주를 하기 보다는 자기 집의 가난 때문에 이주로 내몰린 경우가 많았다.

 

3) 빈곤의 세계화, 빈곤의 여성화, 그리고 이주의 여성화 현상

 

빈곤의 세계화와 이주

지구화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자기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하는 경우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국제이주기구(IOM)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일 년에 23천만 명 이상이 자기 나라를 떠나 이동을 하는데, 이중 6570%가 생계유지나 새로운 일자리 추구 등 경제적 이유에서 이주를 한다. 이주를 하는 개인들은 새로운 기회, 미래를 위한 개척, 현실탈출 등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노동력을 담보로 이주를 한다. 그러나 이주는 소위 출발국과 도착국 이해관계가 맞물려 진행되고 있으며, 이주의 근본원인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의한 빈곤의 세계화에 있다.

한국 경우 저출산 · 고령화 및 생산 직종 기피로 인한 노동력 부족, 국제결혼 증가, 동포에 대한 입국문호 확대 등으로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외국적 동포 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 경제발전상에 접한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오면서 이주노동력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 정부가 일본을 따라 1991년부터 해외투자법인(해투법인) 연수생제도와 1993년 산업연수생제도가 도입하면서부터다. 이들이 당하는 인권문제가 드러나면서 이주노동자 인권에 관심하는 이주인권단체들이 생겨났다.

빈곤의 여성화와 이주의 여성화

세계 이주 증가 현상에서 눈에 띠는 것은 여성의 이주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주는 계급, 종족성, 젠더 사이에도 연계가 있다. 세계적으로 이주인구 성별분포를 보면 여성 54%, 남성 46%로 조사되고 있다. 2004년 유엔개발회의(유니펨)의 보고에 의하면 아시아 경우 이주노동인구 70% 이상을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이주에서 여성 분포가 높은 현상을 가리켜 이주의 여성화라고 한다.

유니펨은 전 세계에서 절대빈곤 속에 살아가는 세계 인구 15억 명 중에 여성이 70%나 되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빈곤이 여성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라고 명명하고 있다. 여성은 세계노동의 3분의 2를 담당하지만 세계소득의 5-10%만을 벌어들이고, 실질 자산은 5%도 되지 않는다. 여성의 일자리는 저임금 일자리에 한정되어 있다. 소위 제삼세계라고 일컬어지는 개발도상국에서 여자와 아이들은 빈곤의 대명사가 되어있다. 한 가정에 먹을 것이 생기면 제일 먼저 일하러 나가는 가장인 남자가 먹고, 다음에 아이를 먹이고 남은 것을 엄마가 먹는다. 이렇게 여성들은 영양실조와 기아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겨났다. 전에는 빈곤하면 빈곤한 대로 그 지역에서 해결해야 했지만, 지구화,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자기 지역을 떠나 일자리가 있는 대도시로,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해서 빈곤을 해결하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빈곤의 여성화 상황에서 이주의 여성화가 발생한다.

 

이주의 여성화가능성과 딜레마

이주의 여성화는 이주를 통해 여성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순기능적인 면도 있지만, 여성의 이주와 인신매매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점과 본국과 고용국 양측에서 겪는 인권 침해 문제가 있다.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워크숍에 의하면 본국에서는 성폭력, 가정폭력 위협 때문에, 또는 가족 생계를 위해 성산업이나 이주노동 현장으로 내몰리는 인권 침해적인 면이 발생한다고 한다. 고용국에서는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계급차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의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받고 있다. 나라에 따라 문화적·종교적 차별이 곁들여지기도 하지만, 아시아 이주여성들이 겪는 공통적인 인권 침해는 저임금, 성폭력, 모성보호부재 등을 위시한 건강과 사회복지혜택 부재 등을 들 수 있다. 이 모든 인권 침해의 근간에는 불안정한 체류자격(미등록상태)이 제일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아시아 이주의 특징이기도 한 이주의 여성화는 송출국과 유입국 양쪽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외에도 이주여성에게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가족 소득 주체로서 가족에서 지위는 향상되고 있지만, 장기간 가족과 결별 때문에 가족과 유대관계가 파괴되고, 심지어 가족해체가 발생하는 등 가족 문제가 생긴다. 그뿐만 아니라 귀환할 경우 본국에 돌아가서도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그 사회에 재통합하기 어려워 결국 또다시 이주를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본국 경제가 발전되지 않는 한 여성의 이주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 고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4)여성들의 이주와 귀환문제를 생각하게 된 구체적인 사례

 

네팔여성 건천 사례

네팔 여성 건천은 19971215일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비자형태: D3). 건천은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배치된 연수업체에서 9개월간 일을 했다. 회사가 운영이 어렵게 되자 급여가 제때 나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건천은 연수업체에서 탈출해서 서울로 왔다. 서울로 올라와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봉제공장에서 시다로 일을 했다. 건천은 낮에 번 돈은 고향에 보내고, 고향에 돌아가서 작은 가게 하나 내겠다고 열심히 야근도 했다. 그러나 고향에서 시시 때때로 돈이 필요하다고 전화가 와 기껏 모아놓은 돈을 부쳐야 했다. 결국 야근을 해도 남는 것이 없었고, 돈을 모으지 못했으니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년 동안을 미등록노동자로 살았다. 건천은 아들을 보러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건천이 벌어 보낸 돈은 시집에서 다 쓰고 모아놓은 것이 없어 돌아가더라도 살 길이 막막했다. 몸이 아파 남편에게 집에 돌아가도 되겠냐고 물으면 네가 알아서 해라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건천이 돌아오는 것보다 돈을 벌어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건천은 한국 사회에서 언어문제로, 인종편견 문제로 당한 고통보다 돌아갈 수도 머무를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

건천의 경우처럼 이주여성문제는 도착한 나라에서 직면하는 인권문제와 더불어 귀환의 악순환이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외국에서 이주노동자로서 삶을 정리하고 귀국한 이주여성노동자들이 직면하는 또 하나 문제는 이주 악순환이다. 귀환해서 처음 몇 개월 반가운 잔치가 끝나면 가족들이 다시금 귀환한 여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기 바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로 이주하게 된다고 한다. 처음 나갔던 나라에서 미등록노동자로 있었을 경우 입국이 거부되기 때문에 새로운 다른 나라에 가서 이주노동자로서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귀환한 이주여성노동자 경우 이주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기도 한다.

베트남 여성 난의 경우

베트남 여성 난은 18살 더 먹은 한국남자와 결혼을 해서 한국에 왔다. 난의 꿈은 유치원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장래를 약속한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엄마의 강요로 한국남자와 국제결혼을 하게 되었다. 난의 어머니는 중개인이 한국이 잘 사는 나라라 딸이 고생 안 하고 편히 살 수 있다고 하니까 우선 마음이 동하고, 더욱이 집에 돈도 보내줄 수 있다 하니 딸 덕을 볼 수 있겠다 싶어 허락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 와 보니 부부만 사는 줄 알았는데 결혼 안 한 시동생과 시누이에 부모 등 대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처지에 외출도 할 수 없었다. 시집 식구들과 말은 안 통하고 한 달 동안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했다.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난이 베트남에 보내달라고 하자 남편이 내가 너 데리고 오는데 돈이 얼마나 든 줄 아느냐며 거절하자 절망 끝에 칼로 자해를 했다. 시집 식구들이 겁이 나서 이혼해 주었다.

난은 우리 쉼터에서 두 달 있다가 호찌민으로 갔다. 당시 법은 이혼을 하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만 했던 때다. 비행기 삯을 모금하여 베트남에 가는 편에 동행하게 하였다. 이혼한 것을 동네가 알면 수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오빠가 일하고 있는 호찌민으로 돌아갔다. 돌아갈 때 한 달 생활비가 15만 원 정도 든다고 해서 두 달 치 생활비 30만 원과 갑상선 약 6개월 치를 사서 들려 보냈다. 난을 강제로 결혼시키려 한 난의 부모나 떠밀려 시집 온 난의 시부모나 다 가난이라는 덧에 걸려 한 행동이었다.

센터에서 이주여성들을 상담하면서 다양한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게 시급했다. 한국으로 이주해온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을 열심히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의 빈곤화 현상으로 파생되는 이주의 여성화 현상, 귀환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이주여성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집이 가난해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자 한국에 왔다. 이주여성들은 한국에서의 삶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가보았자 일자리도 없고, 살기가 어려워 돌아갈 수도 없다. 이주여성들이 이주를 안 하고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것, 또 설사 이주를 했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가서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4)개발도상국 기관방문에서의 경험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개발도상국 몇 군데를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 방문한 곳은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귀환하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지원하는 운라드카바얀이라는 단체였다. 그곳에서는 이주노동자이 외국에서 번 돈을 일정부분 귀환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저축을 하고, 일부분을 투자하여 가족들이 코코넛 껍질이나 바나나 나무를 이용해 그릇이나 화분걸이, 모자 등 수공예제품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판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여성쉼터였다. 이 쉼터는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아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나 성매매업소에서 도망쳐 온 여성들을 지원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쉼터에 있는 여성들에게 직업교육 일환으로 문해교육과 가방과 옷 등을 만드는 봉제기술교육을 하고 있었다. 쉼터에 나갈 때를 대비해서 훈련을 받으면서 만든 제품 값의 일부를 저축하는 시스템이었다. 제품 대부분을 프놈펜시장에 납품한다고 하는데, 인건비를 지원받기 때문에 싼 값에 납품해도 유지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곳 역시 국제기구 지원이 없으면 이런 기술교육은 유지하기 어렵고, 인건비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에 판매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미래를 위해 개발국과 협력을 맺어 해외에 판매망을 구축하는 것이 과제였다.

세 번째 방문지는 필리핀에 있는 성매매피해여성을 위한 쉼터였다. 이곳은 한국 두레방에서 설립한 곳으로 입소 여성들에게 봉제기술교육을 하고 제품을 만들었다. 여기서 만든 제품을 한국에 가져 와 여신도들에게 판매를 했다. 제품이 거칠고 한국 패션으로는 수용이 안 되는 제품이었다. 구매자들이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주는 형식으로 구매가 이루어져 계속적인 구매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하였다. 그 결과 한국에서 판매가 힘들게 되어 쉼터와 한국을 잇는 판매활동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 세 단체에서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것은 원조의 한계였다. 쉼터에 있는 동안은 원조로 지탱할 수 있지만 나가면 삶을 지탱하기가 어려워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자립대책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자립을 위해서는 쉼터 이용자들에게 기술교육이 필요하고 만든 제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한데, 이 시장 확보가 어렵다고 토로하였다. 이상 세 곳의 경험을 통해 중요한 것은 개발도상국 시설에서 제품을 만들어 개발국에 팔려고 할 경우, 원조가 아닌 판매를 통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제품과 판로개척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에 대한 한 대안으로 공정무역의 가능성과 딜레마를 생각하게 되었다.

 

2. 국제개발의 한 장으로서 공정무역과 젠더

 

1)젠더와 개발

공정무역은 빈곤의 여성화와 이주의 여성화에 대한 무역 대안이 될 뿐만 아니라 국제개발협력의 한 장으로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여성친화적인 공정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젠더와 개발의 관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젠더와 개발(gender and development, GAD)경쟁의 장이 공평치 못해서 초래되는 남녀 사이의 불평등을 집중적으로 다룬 접근법이다. 불평등이 제도적 구조 때문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분석도구로서의 젠더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젠더와 개발이란 개발에 젠더관점을 적용하는 것으로서 개발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녀 모두의 역할과 필요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개 남성에 비해 여성이 불이익을 받는 위치에 처해 있음을 고려할 때. 성평등 증진은 명시적으로 여성의 필요와 이익, 관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성평등이라는 궁극적 목표와 더불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향상을 목표로 한다. 개발과 공정무역에서도 이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젠더 측면에서 공정무역을 통한 개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뜻하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이론들과 중요한 개념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 젠더분과과 제시한 중요한 페미니즘의 사회적 정치적 이론들과 개념들은 가부장제(patriarchy), 공평(equality), 남성중심주의(androcentrism), 성차별주의(sexism), 섹슈얼리티(sexuality),여성혐오(misogyny), 여아살해(femicide), 정치적(political), 젠더(gender), 젠더폭력(gender-based violence, GBV), 페미니즘(feminism) 등이다.

2) 여성 입장에서 본 공정무역 10대 원칙

인권적 관점에서 볼 때 공정무역은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한 거래방법이다. 유엔 밀레니엄 선언은 지속가능한 성장에 관심을 갖고 여성의 빈곤퇴치에 역점을 두고 있다. 공정무역이 여성의 이주에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공정무역이 젠더적 시각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하는 돌봄 노동이 여성의 일로 자리매김하다보니 전일제 유급 일자리에 가기 힘들고, 또 임금노동을 한다 해도 여성들은 남성보다 소득도 적고,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여성들이 저개발식량의 60-80%를 생산하고, 그것으로 가족을 먹이고 있음에도 여성에게 경제권이 없다. 세계 무역량 2위인 커피 경우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 70%

 

이상이 여성들임에도 커피재배지의 20%, 커피 회사의 10%만을 여성들이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도 여아들은 남아에게 밀려 2차적으로 받게 되며, 가정과 지역사회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녀평등 추구라는 공정무역원칙은 저개발국 내지 개발도상국 여성들에게 큰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공정무역은 1)경제적으로 소외된 생산자들을 위한 기회제공, 2)경영의 투명성과 신뢰성 유지, 3)파트너 생산자의 역량강화를 위해 노력, 4)공정한 무역관행, 5)공정한 가격 지불, 6)남녀평등 추구, 7)생산자의 양호한 노동조건 보장, 8)아동노동반대, 9)환경보호, 10)지속적인 생산자 지원 등 10대 원칙이 있다. 특히 공정무역에서는 여성의 힘과 역량강화가 핵심 이슈라고 한다. 실제로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공정무역발전기금의 투자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라틴아메리카에서 2%, 아시아에서 3%, 아프리카에서 4%라고 한다. 특별히 젠더 관점에서 공정무역의 원칙들을 살펴보자.

 

경제적으로 소외된 생산자들을 위한 기회 제공 원칙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은 여성들이다. 실질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는데도, 가족부양자로 인정되는 것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일자리에서 배제된다. 이렇게 배제되고 소외되는 여성들에게 생산자로 일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여성의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여성들이 생산자로서의 기회를 얻어 소득이 생기고 직접 수입을 관장하게 되면 이를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사용함으로 가족에서 여성의 입지가 커진다. 실제로 공정무역 생산자의 70%가 여성으로서 공정무역이 여성에게 제공하는 기회가 많다.

경영의 투명성과 신뢰성 원칙

경영의 투명성은 민주적이고 투명한 조직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공정무역 제품은 협동조합과 같은 생산자 조직을 통해 생산된다. 협동조합은 많은 영세 소농들이 힘을 합쳐 판매량을 크게 늘리는 것을 가능케 한다. 공정무역 인증을 받으려면 생산자 조합은 조합의 의사결정과 수입 분배, 사용에 대해 여성을 포함한 모든 조합원들이 직접 발언권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개발도상국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은 발언권이 없다. 조합이 여성참여의 원칙을 적용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공정 영역에 참여하는 첫 걸음이 되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목소리를 냄으로 힘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에게 매우 긍정적인 조직이 될 수 있다.

파트너 생산자의 역량강화를 위한 노력 원칙.

개발도상국에서 여성들은 생산자로 활동하지만 실제로는 생산자가 아니라 가사와 돌보는 일을 하는 자로 자리매김 되어 노동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한고, 교육의 기회도 남성보다 후차로 밀려난다. 일자리에서 주로 비숙련자로 치부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자로서 인정받고 생산자로서 역량강화가 이루어진다면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며, 지도자로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여성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일은 가족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고 식량 생산과 분배를 증진하며, 지역의 취약한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핵심이다.

공정한 가격 지불,

여성들은 같은 시간을 일하고도 남성과 차별적인 임금을 받아왔다. 남성과 여성간의 임금격차는 남성과 여성간의 지위격차를 불러 온다.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자에게 공정한 가격이 지불되고, 여성에게도 일한 만큼의 공정한 가격이 지불된다면 그 소득으로 인해 여성과 아동을 위한 복지가 향상될 것이다. 공정한 가격 지불은 여성뿐 아니라 아이들을 착취노동에 내몰리지 않게 하는 중요한 기재가 된다.

생산자의 양호한 노동조건 보장원칙

양호한 노동조건 보장 원칙이란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조건을 말한다. 개발도상국가의 수출주도형 산업정책에서 생산자들의 작업환경은 매우 열악하며, 노동조건 역시 악조건이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노동조건은 일하는 사람들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건강을 악화시키는데, 주로 여성이 더 취약하다. 따라서 여성생산자에게 양호한 노동조건을 보장하는 일은 여성에게 생존보장은 물론 삶의 질 향상에도 매우 중요하다. 네팔의 한 공정무역 생산지의 경우, 생산자는 네팔의 일반기업과는 달리 최저임금 보장과 더불어 점심과 약간의 간식비, 교통비를 지급받고 건강보험과 퇴직금을 지급받는다. 일정기간 일감이 줄어도 생산자들을 자르지 않는다. 기혼여성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곳도 있고, 아이들과 점심을 함께 먹거나 휴식시간에 모유수유를 할 수도 있다.

아동노동반대원칙

개발도상국가에서 아동들이 학교 대신 저임금시장에 내몰리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아이들이 카카오, 커피, 바나나 따기, 축구공 만들기 등에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여아의 경우 성폭력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다. 공정무역이 생산자에게 공정한 가격 지불, 양호한 노동조건 보장을 통해서 아동을 노동시장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어머니와 자녀가 한 쌍으로 묶여있는 현실에서 아동노동반대원칙은 모성 행복, 여아 권익보호에 중요한 기재가 된다.

환경보호 원칙

공정무역은 원칙적으로 생산자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생산을 하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이 원칙은 여성과 아동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개발도상국가의 수출주도형 농업정책에 따라 자연이 파괴되고 있으며, 유전자조작(GMO) 식품생산으로 인한 곡물의 무기화와 위험, 농약과 비료, 화학 염료 사용 등으로 독물에 노출되어 있는 생산자와 제품종사자들 의 건강이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파괴를 하지 않는 환경 보호적 생산원칙은 특히 생명을 담보하는 여성들의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공정무역은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을 위한 방법이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지구의 수용력을 넘어설 만큼의 천연자원 사용을 증가하지 않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함을 말한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서는 전 세계 모든 지역 내에서 다양한 조치가 필요하며, 경제성장과 형평성, 천연자원과 환경보호, 사회개발이라는 세 가지 주요 영역에서의 퉁합적 조치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공정무역에서 환경보호 원칙이 중요한 것은 비단 생산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연보호를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고, 소비자에게 건강한 제품을 제공함으로 소비자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일석이조의 상호호완이다.

지속적인 생산자 지원 원칙

공정무역 원칙은 생산자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지 못하면 의미가 약해진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유엔의 슬로건이 있듯이 생산 활동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개발도상국가의 생산자가 지탱할 수 없다. 생산자들이 지속적으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생산자를 지원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생산자 지원이란 장기적인 거래관계를 의미한다. 공정무역 파트너들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생산방식을 개선하고 공동으로 시장전략을 수립하고,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세우고, 생산자들에게 지속가능한 생계를 보장하고 있다(첫걸음11). 반 시장에서 보듯이 지속적으로 생산자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은 여성들이다. 여성들의 생산 활동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이 중요하다.

 

3) 공정무역이 여성의 삶에 미친 사례.

독일교회의 날 공정무역 행사장에서도 경험했지만 공정무역을 통해 여성들의 삶의 자리가 좋아지고, 역량강화를 통해 여성들의 지도력이 향상되고, 가족에서의 지위도 가족 돌보미에서 목소리를 내는 위치로 자리매김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네팔의 한 공정무역 공동체에서도 같은 경험을 볼 수 있다. 네팔 공정무역회사 네팔리-바자르는 생산자 여성을 위한 통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서 급여를 매년 여성생산자 명의의 은행계좌에 입금했고, 목돈이 만들어지면 여성자신이 필요할 때 쓰도록 했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역량이 강화되고 자립하게 되니 아이교육이나 가계를 주도하게 되고 급기야는 지역사회에 목소리를 내어 지역사회에 필요한 예산을 따낼 정도로 당당한 시민으로 성장한 사례도 있다. 공정무역은 생산자 여성들의 경제적 생활을 향상시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주인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남자도 일하기 어려운 나라인데, 여자도 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 경우는 시어머니가 애를 봐주게 되면서 가족이 협력하게 되었고, 여성들도 자신감을 얻었고 발언권이 생겼습니다. 주 수입원일 남편인 경우는 남편이 술 마시고 도박하고 애들한테 돈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가 돈을 벌면 아이를 먼저 생각합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옷을 사 입히고 밥을 먹이게 돼요. 여성이 돈을 버는 건 전 가족이 바뀌는데 중요하고, 가족이 바뀌는 건 지역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앞의 책111쪽 인용).

 

4) 공정무역의 가능성과 딜레마

공정무역을 통해 여성들에게 일을 할 기회가 제공된다. 여성들은 일한 만큼 대가를 받으며, 분업이 아니라 통전적 일을 통해서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여성들은 공정한 가격지불로 인한 최저 수입 보장으로 경제권을 갖게 되어 집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여성들은 친환경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건강의 위협에서 해방되며, 양호한 노동조건 보장을 받게 된다. 여성들은 역량강화를 통해 지도력을 키우고 발전시킬 수 있어 지역사회에서 발언권도 부여된다. 공정무역을 통해 여성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공정무역 생산자의 70%가 여성이며, 공정무역을 통해 주변화 되어있던 여성들이 중심부로 나갈 수 있는 여성의 세력화에 기여하고 있다. 공정무역이 여성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게 되면 개발도상국가 여성들이 빈곤 문제 때문에 굳이 이주를 하지 않거나, 이주 후 귀환해 본국에서 자유로운 삶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무역이 이주하거나 귀환하는 여성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이런 공정무역이 활성화되려면 구매가 촉진되어야 하는데, 공정무역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딜레마가 있다.

 

왜 사람들은 공정무역이 좋은 것이고, 공정무역제품 소비를 통해 나눔을 할 수 있다는 이중효과가 있음에도 공정무역제품 구매를 하지 않는가? 홍보 문제도 있지만, 양심적 소비자가 곧 윤리적 소비자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가 발달되었고, 진보지식인들이 많고, 소비자운동이 활성화된 나라이니 당연히 공정무역 제품 소비가 촉진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양심적 소비와 윤리적 구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키스 브라운은 공정무역으로 구매하기라는 책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거나 월마트 등 착취 기업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양심적 소비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도덕적 이상과 일상적 구매 패턴 사이에 끊임없이 모순이 존재함을 서술했다. 양심적인 소비자의 일상적 구매 행동과 도덕적 가치가 엄격하게 일치하지 않으며,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와 일상적 구매 패턴 사이에 폭넓은 모순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음도 지적하였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적절한 가격, 좋은 품질, 실용적인 제품이다. 이건 공정무역 소비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양심적인 소비자들 대다수가 구매행동을 통해 변화를 추구할 마음은 있지만, 일상구매에서는 가치에 모순되는 구매를 하며, 구매행동을 둘러 싼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기피한다. 소비자운동가들이 소비자교육을 통해서 사회적 책임의식이 높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구매행동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려는 마음은 있어도, 일상생활에서는 편리성, 가격, 미적 특성을 먼저 고려하곤 한다. 가격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구매 행동을 정당화하는 행위는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보호막을 제공한다. 사회적 의식이 높은 소비자도 가격 측면에서 구매행동을 정당화한다.

구매가 촉진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양심적인 소비자들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틈새시장을 이용하는 사업자들 문제다. -위장공정, 그린 워싱, 또는 이익 축구 기업들에 의해 시장이 취약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점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구매 행동이 새로운 형태의 세계시민 의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능케 한다면 소비를 통해 시민들이 기업들에게 지속가능한 실천을 택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민주적 구매행동을 가능케 할 소지도 있다. 문제는 어떻게 윤리적 소비행동을 통해 세계시민의식을 갖도록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공정무역이 저개발국가 여성생산자들의 삶의 질을 높일 가능성이 큰 만큼, 빈곤의 여성화를 통한 이주의 여성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공정무역 제품 구매가 촉진되지 않으면 공정무역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지속가능한 공정무역이 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을지가 과제다.

 

공정무역이 여성의 이주를 줄이는 한 대안이 될 수 있고, 개발도상국 빈민여성들 삶에 질적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공정무역이 활성화될 수 있는가? 공정무역 소비자에게 부여되는 이익이 없다면, 그것 역시 차원이 다른 지원일 뿐이다. 공정무역을 통해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삶이 나아진다고 할 때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무엇인가? 이 점이 설득되어야 한다.

공정무역은 단순히 생산자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이익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이 보이지 않더라도, 공정한 무역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라는 점에서 지구 시민으로서의 일원인 나에게 돌아 올 이익이 크다. 무한 경쟁의 무역위기가 불러오는 빈곤의 세계화로 언젠가 나도 그 빈곤 그물에 갇힐게 될 줄 모르는 불안에 바늘구멍을 낼 수 있으며, 식량이 무기가 되는 현실에서 종자를 보호하고 식량위기를 줄일 수 있으며, 천연제품 생산을 통해 우리 건강을 보호하고, 나아가서 지구 환경을 보호해 온난화로 붕괴할 지구의 붕괴시간을 늦추거나 방지할 수 있다. 특히 공정무역이 여성 생산자를 보호하는 것은 여성이 처한 삶의 자리 때문이다. 여성은 인권적으로나 복지적으로나 지구상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개발국 여성들이 개발도상국 남성들 보다 삶의 여건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개발도상국 경우 여성들의 삶의 자리는 매우 열악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이 여성들이다. 여성은 아이들과 묶여 더 그 고통이 가중된다. 이러한 지구 현실에서 제일 피해 받는 여성을 보호하고, 당당히 서게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보호받고, 모든 사람들이 존중받음을 의미한다. 개발도상국 여성과의 연대는 지속가능한 지구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히틀러에 저항했던 독일 마틴 니믈러 목사는 침묵의 대가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엔 가톨릭교도룰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이 글은 2018년 11월 5일 사회적 기업 트립티에서 한 공정무역 강사교육에서 강의한 원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