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들의 사색터

마노아 부인의 신앙

한국소금 2019. 3. 25. 15:37

마노아 부인의 신앙 : 사사기 창세기 13 : 1- 25

 

성서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힘센 사람은 삼손이라는 사람이다. 사자를 맨 손으로 죽이고, 30명이 넘는 블레셋 사람들을 혼자 힘으로 싸워 이기고, 죽을 때는 신전 기둥을 뽑아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할 정도로 힘이 센 사람이었다. 이 삼손은 블레셋 사람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사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고, 머리카락을 자름으로 힘을 잃어 사사로서의 권위를 상실했다. 삼손과 데릴라라는 영화나 딜라일라 라는 노래도 있듯이 여자의꼬임에 넘어가 패가망신한 사라로 더 유명하다. 어쨌든 삼손의 이야기는 사사기 13장에서 16장에 이르도록 4장에 흥미 있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삼손이 활약하는 이야기 앞에 사사기 13장에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중요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삼손의 어머니로서 삼손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삼손의 어머니는 이름도 없이 그저 마노아의 부인으로 나올 분이다. 그러나 이 이름 없는 여인은 하나님에 대한 그지없는 신뢰를 보여준다. 13장에 나오는 두 사람, 즉 마노아와 마노아의 부인은 대조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마노아의 부인은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런데 천사가 그 부인에게 나타나 아이를 낳게 될 것이며, 그 아이는 하나님께 바쳐질 나실인으로서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할 사람이기 때문에 임신해서 술을 마셔서는 안되고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는 안된다, 아이를 낳으면 머리에 면도칼을 대면 안된다고 지시한다. 이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 두 사람은 매우 다른 신앙태도를 보인다.. . .

마노아의 태도는 교만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부인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듣자 하나님께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오게 하셔서, 태어날 아기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기도한다. 얼핏 보면 매 신앙적인 태도 같지만, 하나님이 자기가 아니라 자기 부인에게 계시를 내렸다는 사실에 대한 반감이 드러나 있다. 남편인 자기를 제쳐두고 자기 아내에게 그 중차대한 일을 맡기다니, 이런 중요한 일은 당연히 자기에게 지시를 해야 하는 것이지, 나는 그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심리가 그 기도에 깔려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자기에게 나타나 그 임무를 자기에게 부과해 달라는 기도를 한 것이다. 그의 기도대로 천사가 나타나자 마노아는 천사에게 묻는다. 당신이 내 처에게 나타났던 분이냐? 천사가 그렇다고 하자 태어날 그 아이가 지켜냐 할 규칙이나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 말에도 역시 그런 지시 사항은 나한테 해야 하는 것이지 내 아내에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는 힐난하는 태도가 들어있다. 이런 마누엘이니 그 부인에게 대하는 태도가 어떨지는 과히 짐작이 간다. 이런 마노아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천사는 마노아에게 새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마노아의 아내가 지시받은 것을 잘 지켜야 한다고 재확인해주신다. 하나님은 마노아 보다 마노아의 부인이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판단은 인간의 눈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노아는 자신의 잣대로 하나님을 재려고 한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주면에도 이런 마노아 같은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어떤 중요한 일을 나를 제쳐두고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이 맡겨졌었을 때,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격려하기보다는 내가 더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나를 제쳐두고 다른 사람에게 그 중요한 일을 시켜? 그건 용납할 수가 없다거나 아니면 중요한 모임에 나는 초청받지 못하고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초청받았을 때 엄청 기분이 나빠한다. 뿐만 아니라 책임감이 강한 것은 좋은데, 자기가 아니면 일이 인될까봐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지도 않는다.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으나 자기만이 잘할 수 있고, 상대방 보다 자기가 더 적격자라고 괴신하거나 자만하는 것은 문제다. 우리는 마노아 같은 사람이 아닌지 지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편 마노아는 교리적으로 이론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자기 앞에 마주 앉은 손님이 아내와 만났던 그 천사임을 확인했으면서도, 그가 하나님의 천사임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이름만이라고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천사는 왜 이름을 묻느냐? 비밀이라며 알려주기를 거부한다. 알기 위해 믿느냐, 믿기 위해 아느냐? 하는 물음은 신학계에 끝없는 물음이지만, 마노아와 그 부인의 경우에는 이 질문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한편 마노아는 자신이 만나 본 천사가 하나님의 천사인줄 알자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다. 그 번제의 불길을 타고 천사가 사라지자 마노아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보았으니 곧 죽을 것이요.‘라고 한다. 이스라엘 신앙전통에 의하면 거룩한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죽는다고 했으니 마노아의 신앙은 크게 잘못된 것은 없다. 그러나 마노아는 하나님은 거룩성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시라는 것을 몰랐다. 마노아는 하나님이 정의롭고 강한 분이고 완전을 추구하는 분이며 심판하시는 분이라고만 믿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만난 약한 인간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교리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흔들리고 무너지며 최악의 결과로 생각한다. 마누아의 이런 태도는 그가 남 위에 군림하는 삶을 산데서 비롯된 것이다. 남위에 군림하고, 자기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은 사랑의 하나님을 영적으로 사람을 통해 만날 수 없다. 연민을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마노아의 아내는 삶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고 하나님의 천사인줄 알았고, 두려워서 이름조차 묻지 못했으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두려움을 넘어서서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노아와의 삶을 통해서 억눌려 보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경험했기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려 했다면 우리 손에서 번제물과 곡식 예물을 받지 않으셨을 것이며, 또 우리에게 이 모든 일을 보이거나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라고 말함으로 불안해하는 남편을 일으켜 세운다. 교만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인 것을 알지 못한다.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이기에 하나님은 마노아가 아니라 그 부인에게 하나님의 예지를 일러주셨고 사명을 부과해주신 것이다.

성서는 간간히 이름 없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의 지표를 제시해준다.

 

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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