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들의 사색터

부당한 대우와 정당한 권리

한국소금 2019. 3. 25. 15:52

부당한 대우와 정당한 권리

 

오늘의 본문은 포도원의 품꾼들이란 제목으로 예화를 들어 비유로 하늘나라를 설명하고 있다. 마태기자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늘나라에서는 소외된 사람이 없다는데 주안점을 두고 모든 사람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기준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에 참여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또한 하늘나라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더 많은 공덕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하늘나라가 하나님께서 공으로 주시는 선물임을 명심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13절에 보면, 투덜거리는 노동자들에게 포도원 주인은 친구여, 나는 그대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요. 그대는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하고 되물었다. 포도원주인은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장터에 가서 일꾼을 만나 하루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하루에 받는 품삯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계약관계를 맺어 일한 노동자가 투덜거리는 것에 대해서 포도원 주인은 친구여하고 다정하게 부르면 계약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인은 그대의 품삯이나 받아가지고 돌아가시오. 그대에게 주는 것과 똑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하면서 더 이상 이의를 달지 못하게 한다.

  

포도원 주인이 이렇게 이야기해도 일찍 나갔던 노동자는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주인 말대로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대 눈이 거슬리오?”라는 점을 인정해도 그 노동자는 아침 일찍부터 나온 것을 후회할 것이다. 늦게 저녁 5시에 나와도 한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다면 누가 일찍부터 나와서 온종일 수고하겠는가?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를 하시는 군요하는 투덜거림은 결코 이들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보통 노동자가 일한 만큼의 대우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홉시와 열두시 그리고 오후 3시에 온 사람들도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포도원 주인은 먼저 온 사람부터 차례대로 일한 시간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었다면 그들의 불만이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포도원 주인은 나중 온 사람부터 먼저 임금을 지불하여 먼저 온 사람들에게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하였을까? 맨 나중에 와서 겨우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니 그보다 먼저 온 사람들은 당연히 더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오후 3시에 온 사람들은 한 데나리온에서 조금 더, 그리고 12시에 온 사람들은 1.5 데나리온, 그리고 9시에 온 사람들은 1.7데나리온, 그리고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은 적어도 2 데나리온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한 데나리온만 받았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이러한 실망은 결국 약속대로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 주인에게 불평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들었다. 처음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고 그 후에도 계속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였다면, 나중에 온 사람들은 더욱 감격했을 터인데.

  

오늘날 고용주가 이러한 지급방식으로 임금을 지불하였다면 대부분의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포도원 주인의 사고방식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란 항변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재량권은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찌는 더위 속에 일한 품삯과 겨우 한 시간 동안 일한 품삯을 똑같이 지급한다면 누가 그것을 주인의 선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럼에도 하늘나라의 비유로서 이러한 포도원의 품꾼들을 예화로 잡은 것은 그 이야기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중요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포도원 주인은 다섯 시쯤에 장터에 나가보니, 아직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들에게 주인이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하고 묻자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 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일이 없어서 하루 종일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포도원 주인은 잘 알고 있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이 없어서 당하는 고통은 일하면서 당하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 일을 하지 못하면 가족들에게 먹을 것을 사다줄 수 없다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일을 하면서 돈을 받아 가족에게 먹을 것을 사다줄 수 있다는 기쁨에 차서 일하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은 고통 받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고통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결단을 말하는 것이다. 오후 5시까지 일하지 못한 사람들이 겨우 한 시간 일하고도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과 동등하게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은 임금의 지불이란 관점에서 보면 결코 정당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일반관념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하는 것이다.


200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