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을 보여주는 스승
오늘은 스승의 날이자 광주민주화 항쟁 24주년 기념주일이다. 이 날을 맞아 모처럼 스승에 대한 생각과 민주화 항쟁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의 민주화 스승 광주항쟁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함석헌 선생은 이런 시를 남겼다. “그대는 이런 친구를 가졌는가?...” 이 물음을 바꾸어 어렇게 묻고 싶다. “그대는 어떤 스승을 가졌는가?, 그리고 누구에게 스승이 되었는가?”
내일 모레면 환갑을 내다보는 내 일생을 회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명의 스승이 있다. 한 명은 재작녕에 작고하신 이우정선생이요, 다른 한 명은 문동환박사다. 이우정선생에게는 여성으로서의 내 삶을 정립하는 길을 배웠고, 문동환박사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다.
나는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갔다. 그러나 신학교에 가보니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교단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는데, 그 원인이 성서였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하나님은 아버지인데, 아버지는 남자니까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 또 예수 제자들은 남자니까 여자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엘 갔는데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학교를 그만 둘가 하다가 눈에 들어 온 것이 이우정선생이었다. 그래, 목사가 못된다면 여자 교수라도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학교에 남아있었다. 이우정선생으로부터 기장여신도회가 여성안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이우정선생은 여신도회의 서기였다. 그 소식을 듣고 내 발로 여신도회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이것이 내가 여성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우정선생은 독신으로 자유롭게 살면서 남자들에게 지지 않았는데, 이런 자유로운 모습이 내 사람의 귀감이 되었다.
또 한분의 문동환박사님은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의 가치관에 푯대를 정립하도록 깨우쳐 주신 분이다. 나는 이 분으로부터 해방신학을 배웠고, 부부가 어떻게 사는 것이 평등하게 사는 것인지를 배웠다. 그분은 실천적으로 사시는 분이었다. 이런 분이었기에 민중과 더불어 사는 것이 무엇이며, 공동체적 삶이 어떤 것인지도 옆에서 그분의 삶을 지켜보며 깨우쳤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에게 실질적인 평등이 무엇이지를 깨우치게 했다. 나는 이분의 영향으로 불의에 대항하는 것, 정의와 평등의 소중함 등을 삶으로 배웠다. 민중신학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그분으로부터 해방신학에 대해 배웠다. 이우정선생님은 여성으로서의 내 삶의 모델이었고, 문동환박사님은 해방적 삶의 모델이었다 오늘날의 나는 이런 스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 두 분에게도 스승이 계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셨다. 이 두 분은 스승이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래서 새벽의 집이라는 공동체도 만들고,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감옥에도 들어가고 했다. 그 분들의 옆에서 자연히 나도 덩달아 여성인권운동과 해방운동, 민주화운동에 종이장을 맞들기 시작했고, 일반교회에서 가르치는 기복주의적이고 내세위주적인, 개인중심주의적인 교회에 대해 아니요! 하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이분들의 스승 예수는 내 스승이 되었고 그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예수를 여러분의 스승으로 삼으라고 권하면서 오늘 스승의 날을 맞아 예수께서 걸으신 스승의 길을 함께 거닐어보자.
오늘의 일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지내시면서 하신 일이다. 식사를 마치신 후 스승이신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다. 통념적으로는 제자들이 스승의 발을 씻어드리는 게 순리다. 그런데 예수는 이 상식을 깨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 말씀하신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는 인류를 섬기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십자가는 예수께서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섬김의 길이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의 가르침대로 낮은자의 발을 씻겨주는, 마침내는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그런 섬김의 길을 가자.
우리 역사에서 예수님처럼 섬김의 길을 걸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 광주민주화항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창검과 총칼에 죽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광주민주화항쟁은 우리 역사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어떻게 되는 지를 보여준 스승이다. 그런 스승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나마 민주화가 된 것이다. 도청을 향해 장렬하게 행진하던, 민중을 섬기기 위해 목숨을 바친 역사의 스승들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스승의 길은 섬김의 길이며 본을 보여주는 삶이다. 섬김의 길은 자기희생을 요구한다. 모두들 대접만 받으려고 하는 세태에서, 섬김의 길에 모범을 보이신 예수! 그리고 역사에서 이 섬김의 길을 이루어낸 광주민주화항쟁!. 그 스승들은 본을 보이면서 말한다. 제자들아, 산자들아 이 길을 따르라!
우리가 스승의 본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또 다른 사람의 본이 되고 스승이 된다. 그래서 내 삶의 모델을 누구로, 내 스승을 누구로 삼느냐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수를 우리의 스승으로 삼자.
2004.5
'일꾼들의 사색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은 특별한 존재 (0) | 2019.03.25 |
---|---|
마음으로 비는 꿈 (0) | 2019.03.25 |
노동절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다 (0) | 2019.03.25 |
종려주일에 생각하는 민중의 가능성과 딜레마 (0) | 2019.03.25 |
네가 낫고자 하느냐 (0) | 2019.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