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들의 사색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한국소금 2019. 3. 25. 17:55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피서를 떠난다. 10년 만에 찾아오는 무더위라는 매스컴의 호들갑 속에서 경기가 불황이지만, 더위 때문에 지갑을 연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난다. 휴가란 여가를 갖고 쉰다는 뜻이다. 어떤 것이 가장 잘 쉬는 것일까? 휴가 기간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면 어떨까?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첫 걸음은 난 왜 고통스러울까? 난 왜 화가 잘 날까? 난 왜 피곤하게 살까? 난 왜 행복하지 못할까? ” 이런 질문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나는 누구일까? 하고 자신을 살피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현재 당하는 문제나 어려운 상황들을 밖에서 그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그 원인을 밖이 아닌 나에게서 찾는데 의미가 있다. 내 안에서 나를 찾고 그 찾는 과정을 통해서 겪는 아픔과 갈등을 극복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창조해 나가는 여행과정이다.

 

몇 년 전 우리 청암교회 교인들은 수련회를 하면서 자기를 찾아보는 프로그램을 하였다. 그 첫 걸음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로 지었다. 그 때의 기록들을 보니까 최진영은 물로, 최의팔은 솜, 한국염은 소금으로 이름들을 바꾸었다. 김엘리는 원래 이름 그대로 엘리로 하겠다고 하였는데, 심경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이야기 하였다. 최의팔은 다른 심성훈련프로그램에 참석하여 이름을 다시 한번 행복한 들풀로 바꾸었다. 이름을 바꿀 때 스스로 이름을 바꾼 사람도 있고 본인이 짓지 않고 모두가 함께 지어 준 이름도 있다. 우리가 이름을 바꾼 것은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우리의 염원과 공동체의 애정이 들어 있다. 자기 이름을 그대로 쓰겠다는 사람들은 이제는 자기 이름의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그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소망을 담고 있다.

 

이 시간 우리는 다시 한번 이름 짓기를 한번 해보자.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가지고 살아왔다. 호적이 실린 이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자기 이름을 하나씩 지어 자기를 찾는 삶의 여행을 시작해보자. 성서에 보면 이름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삭, 요한 , 예수 등, 천사나 예언자를 통해 이름이 정해진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부모가 지어준 사람들도 있는데, 한 경우는 아이를 낳느라고 얼마나 진통이 심했는지 아이 이름을 고통의 아들이라고 지은 경우도 있다. 이 사람의 경우 이름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운명을 개척하였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이름을 바꾸어 준 사람들도 있다.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다 또는 속이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야곱이라는 사람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고, 흔들리기 잘하는 시본을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로로. 필요한 경우, 이름을 바꿈으로 그 사람을 바꾸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다. 어떤 경우 간에 성서는 이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름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 그 사람이 누구인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이름이 바뀌었을 때는 단순히 부르는 이름만이 바뀐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뀜을 뜻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내 이름을 통해 내 정체성을 찾는 것과 아울러 또 하나의 길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며 그 속에서 내 정체성을 찾는 길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것이다. 이름에는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이 누구인가를 드러낸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심으로 자신이 어떤 신인가를 밝히셨다.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밝히셨다. “나는 야웨다.” 즉 나는 나다.”

첫째로 하나님의 이름이 나다라는 뜻은 하나님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우리의 경험에 따라 하나님을 이런 분, 저런 분으로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규정되는 분이 아니다. 그래서 이슬람교에서는 하난미의 이름을 99가지로 써놓곤는 그 이상은 인간의 눈으로 규정할 수없는 분이라는 뜻에서 여백을 남겨놓는다. 함세웅신부는 여기서 착안하여 책을 번역하면서 하나님의 백 한번 째 이름이라고 하였다..

 

둘째 나는 나다란 스스로 있는 자 라는 뜻이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스스로 계신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출애굽기 3:14). 이후 우리는 하나님을 야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야훼라고 밝힘으로 스스로 있는 자로서의 자신을 드러내셨다. 하나님과 우리가 다른 것은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이 말은 우리에게도 스스로 설 능력이 있음을 드러낸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이름처럼 살아갈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 부모의 기대를 안고 살아왔다. 그 이름이 짐이 된다거나 삶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의 이름을 바꾸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삶은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대거나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고 우리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 나는 나다라는 뜻은 자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서게 하는 자임을 뜻한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서는 자만이 남을 서도록 도울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선 후에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붙들어 세우시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이 서도록 도와야 한다. 나 혼자 섰으니까 되는 게 아니다.

 

우리 삶에서 어려움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이름처럼 스스로 선다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스스로 있게 하는 자가 되는 의미다. 내 이름의 뜻, 하나님의 이름의 뜻을 생각하면서 내 자신이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되고 또한 스스로 서면서 남을 서도록 일으켜 세우는 자가 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나보자.

 

20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