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현장과 신학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 사회의 역할” 두 발제에 대한 토론문

한국소금 2020. 3. 7. 15:59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 사회의 역할

두 발제에 대한 토론문

 

 

한국염/정의기억연대운영위원장, 한국기독교장로회목사

 

 

한국 근대사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질 때마다 함께 하시고 분단된 한국이 통일되어 백두산에 오를 때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화이트 박사님께 감사인사를 먼저 드립니다. 3·1 운동을 단순히 1910년 일어난 사건으로 보지 않고 몇 차례 역사적 사건을 통해 그 영향을 분석하며 또한 현대사에서 197631일 발표된 민주구국선언3·1 운동 정신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것으로 해석한 것에도 공감합니다. 이 선언문으로 구속된 18명의 양심수에 대한 재판과 광주지역 선언문과 관련되어 구속된 4명 신부에 대한 두 재판을 방청하는 등 구체적으로 한국 민주화 운동에 함께 하신 것에 대해서도 존경을 표합니다. 발제에 대해 두 가지를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용서에 대한 것입니다. 화이트 박사님은 3·1운동을 어떻게 계승하느냐 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신약성서에 나오는 도덕적 고지를 받아들여 용서의 길을 택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잔인했던 과거를 용서합니다. , 조건이 있습니다.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하고 일본의 젊은 세대에 진실을 가르치고 일본이 다시는 과거의 죄를 반복해서 짓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예로 김대중 대통령이 전임자들(전두환, 노태우)에게 본인을 살해하려던 자들에 대해 의로운 분노를 표출할 수 있었으나 오히려 용서의 정치력을 발휘하여 전임 대통령을 본인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하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자유한국당에서 벌이고 있는 행태를 보십시오. 전두환 등 자유한국당 창당자들이 저지른 잔학한 만행에 대해서 반성은커녕 오히려 왜곡 해석하고 진실을 은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건의 주범인 전두환은 자서전을 통해 해괴한 주장을 펴고 있지 않습니까? 광주학살 사건을 일으켰던 자들이 진실로 회개했다면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 목적으로, 국민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값싼 용서를 하였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진정한 회개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용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8년 째 싸워오고 있는 정신대대책협의회 공동대표였고 현재 명칭이 바뀐 정의기억재단 운영위원장입니다. 저는 일본군 성노예제 하에서 고통받아온 할머니들을 대신해서 묻고 싶습니다. 저희가 30년 가까이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사죄하라고 부르짖지만, 일본 정부는 사죄할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전 세계에 일본군성노예제는 없었다고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해 분하다는 말씀을 유언처럼 남기도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할머니들의 말씀은 일본을 용서하겠으니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라는 것입니다. 할머니들은 일본의 사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이트 교수님은 진정성 있는 반성과 젊은 세데에게 진실을 가르친다는 전제하에 일본의 잔인했던 과거를 용서하라고 제안하셨습니다. 문제는 이 전제가 거부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진정성 있게 사죄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처럼 정치력을 발휘하여 용서의 길을 택해야 하는지요? 도덕적 고지를 말씀하셨는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정부에서 한결같이 일본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내세우며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처해왔습니다만, 역사의 정의는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3·1 운동 백주년을 맞아 그 운동에 얻은 교훈에 대해서 화이트박사님은 시민사회가 현재 갖고 있는 공동목표를 찾아 선제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화이트 박사님은 남한과 북한의 공동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요구와 약속이라고 보셨습니다. 비핵화가 공동의 시급한 목표이고 북한이 상호 행동 없이 일방적으로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하신 화이트 박사님 주장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북한이 핵 억지력을 보유할 수 있는 근거를 없앨 수 있는 5개 단계를 제시하고 정부에 강력히 촉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화이트 박사님 주장에 대해 저는 그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가 비핵화가 공동의 목표라고 주장하려면 남한의 핵우산 문제도 같이 제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진정성이 있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정부가 핵을 제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핵우산에 대한 철거를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한을 떠받들고 있는 핵우산 문제는 회피하면서 북의 핵에 대해서만 우려와 분노를 표했습니다. 어떻게 용기 있게 한반도를 공포에 떨게 하는 미국 핵우산을 걷어낼 수 있을까요? 그 대안이 궁금합니다.

 

다음으로 박기호 교수님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교수님께서 교회 사명에 대해 박 교수님은 기독교인의 사회적 관심은 복음 전도의 결과이며, 복음 전도의 수단이자, 복음전도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저는 존중은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이 복음이고 복음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복음전도의 동반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기서는 이 논의보다 마태복음 25장 최후 심판의 비유, 예수님을 모르면서도 예수님을 대접해 의인으로 인정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으로 박교수님 발제에 대한 토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3·1 운동 1백주년 기념 대회에서 주제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의 역할인데 박교수님의 발제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헤아릴 수가 없어서 토론하기 어렵다는 점도 밝히고 싶습니다. 박교수님 주장처럼 기독교인의 사회적 관심이 복음전도의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면 최소한 천만 기독교인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지금 대다수의 교인들이 반통일, 반평화 세력이 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 글은 2019년2월 25일 열린 <삼일운동 100주년 국제 컴퍼런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사회 역할> 발제문에 대한 토론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