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설교

다말,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한국소금 2018. 2. 16. 15:50

다말,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한국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말이라는 한 여성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말은 다윗의 딸로 공주였으나 이복 오라비 암논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일생을 비참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다말의 이야기는 왜 성폭력이라는 것이 일어나는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주변에서 어떻게 사건을 처리하는지, 성폭력으로 고통받은 여성들이 얼마만큼 참담한 삶을 사는지 잘 보여줍니다.

첫째 다말의 경우에서 보듯이 성폭력이란 욕정을 채우려는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다말은 다윗왕의 딸 공주였는데, 이복 오라비 암논이 아름다운 다말을 보고 욕정을 품게 되었다는 말로 사건을 시작합니다. 암논은 처녀를 욕보여서는 안된다는 율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말을 정복하고자 꾀병을 알았고, 다말이 병문안을 오자 다말을 강간하려 했습니다. 다말이 암논에게 사정합니다. “오라버니, 이스라엘에는 이런 법이 없습니다. 제발 나에게 욕을 보이지 마십시오. 오라버니가 내게 이런 일을 하면 내가 수치를 당하고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정을 하지만 함정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던 암논은 기어코 다말을 욕보이고 맙니다.

다말이 암논의 욕정을 채우기 위한 대상이었듯, 성폭력은 욕정을 채우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욕망을 채우면서 정복쾌감이 일어납니다. 암논의 경우에서 보듯이 성폭력가해자들은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합니다. 아동성폭력의 경우 대부분 사탕들을 주고 꾀거나 유인해서, 청소년들에게는 돈과 물질 공세로, 여성들에게 함정을 파서 힘으로 정복합니다. 욕보이지 말라는 다말의 애원에도 개의치 않았던 암논처럼 피해자들이 아무리 애원을 해도 그 소리는 욕정을 채우려는 욕망에 묵살당하고 맙니다. 암논에게서 보듯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폭력을 했다는 것도 핑계일 뿐 욕정을 채우려는 욕망이 컸고 그 욕망을 채우는데 권모술수와 힘이 뒷받침을 합니다. 다말 사건은 성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될 수 없음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말을 성폭력한 암논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로인해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율법에서는 본질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성폭력도 금하고 있으며, 특히 근친에 의한 성폭력을 금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율법(신명기 2225-27)소리를 질러도 구하여 줄 사람이 없었을 경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죄가 없고 가해자를 살인죄인으로 규정하고 반드시 책임을 묻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소리칠 수 없는 상황이란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저항할 힘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저항할 힘이 없어 성폭력을 당할 경우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강간을 당한 다말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고발하는 당시의 법에 따라 머리에 재를 뿌리고 입고 있던 색동옷 소매를 찢고 목을 놓아 울며 집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율법에 정한 바에 따라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것을 호소했으나 다말에게 돌아온 것은 침묵의 강요와 외면뿐이었습니다. 다말을 보고 사태를 짐작한 오라버니 압살놈은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율법에서도 금지된 악한 일을 당하고도 다말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딸 다말이 암논에게 강간당한 것을 듣고서 몹시 분개했지만 그러나 암논에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자신이 밧세바를 성폭행한 경험 때문이었을까요? 그런데 후에 압살롬이 동생 다말이 당한 성폭력 때문에 암논을 죽였을 때는 입고 있는 옷을 찢으며 누워버립니다. 만일 다윗이 율법이 정한 바에 따라 암논을 처벌했다면 형제살인이라는 참사는 밀어나지 않았을 텐데요. 권력으로 악을 덮으려 했기 때문에 더 큰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딸이 강간당했음에도 암논을 심판하지 않는 다윗의 태도, 그 때문에 암논이 보복으로 죽임을 당했을 때 애통해 하는 다윗의 모습은 피해자 여성 편이 아니라 가해자 남성의 편이라는, 가부장 사회의 단면을 여지없이 드러내줍니다.

율법에서 성폭력 범죄자를 살인죄와 같은 중벌로 처벌하도록 정해져 있음에도 다윗왕이 이 법을 무시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성폭력특별법이 엄연히 있지만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자 여성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말 사건은 성폭력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는 가부장사회의 잘못된 태도를 고발하고, 우리가 무엇을 경계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다말의 이야기는 여성이 당하는 고난의 역사가 기억되고 그 기억 속에서 부활되어야 함을 전해줍니다. 성서는 성폭행당한 여성들의 고난을 묻어두지 않고 고발합니다. 다말뿐만 아니라 성서 속에 억울하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몇 사례 나옵니다. 들판에 놀러나갔다가 세겜에게 강간당한 야곱의 딸 디나, 집단강간당하고 죽은 레위인의 첩, 다윗에게 강간당한 우리아의 처 밧세바 등, 이렇게 성폭력으로 고통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성서가 이런 여성학대와 여성고통의 이야기를 전승하도록 한 것은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은 성폭력을 악이라 규정하고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악의 뿌리를 뽑기 위함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보상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이스라엘 역사에 기록하여 그 여인의 한과 고난이 기억하고 전승하도록 합니다. 압살롬은 자기 딸의 이름을 희생당한 고모 다말의 이름을 따서 다말이라고 지음으로써 억울한 다말의 고통을 기억하고 위로합니다.

 

오늘 우리가 다말의 이야기를 다시 상기하는 것은 다말, 디나, 레위인의 첩, 밧세바 등 남성들에 의해 성폭행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장에서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동성폭력, 집단강간, 근친강간, 납치강간, 전쟁 중에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 권력에 의한 성폭력 등, 성서에서 고발한 여성들에 가해지는 성폭력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찰조사에 의하면 살인, 강도 등의 범죄는 줄어드는데 유독 성폭력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과 청소년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동성폭력의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일명 나영이 사건과 나주 아동성폭력사건이 있습니다. 나영이 사건이란 안산에서 조두순이라는 사람에 의해 교회 화장실로 납치되어 일어난 8세 나영이 사건고, 나주사건이란 나주에서 7세 아동이 잠자다 동네 아저씨에게 납치되어 도로변에서 성폭력 당한 사건입니다. 때려서 기절한 아이를 강간해 음부와 항문이 심하게 훼손되었고, 장기가 몸 밖으로 유출되어 그 기능을 상실케 했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의 부당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어린 아이를 성폭행했고, 그 결과 어린아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은 평생토록 지울 수 없는 참담하고도 심각한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입혔습니다. 범행의 잔혹성과 범인의 파렴치함으로 범인 조두순(당시 56)은 징역 12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조두순 사건이 있자 2010년에 국회는 유기징역의 상한을 기존 15(가중 25)의 두 배인 30(가중 50)으로 늘렸으며,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였습니다. 또한 전자발찌 착용 최대 기한을 30년까지 연장하는 등의 대책이 마련되어 시행되었습니다. 2020년이 되면 조두순이 출소를 하는데 출소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가서 보자.” 하고 잘못은 뉘우치지 않으면서 감옥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다고 하는데 그가 읽는 성경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편 딸의 친구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이영학사건을 비롯해서 청소년들에 대한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에서도 성폭력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어 6년 사이에 3배가 폭증했고, 카메라 등을 이용한 몰카나 온라인상에서 사진을 합성하는 등 비접촉형 성폭력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데이트폭력 역시 20166674명에서 지난해 7888명으로 급증해 주요 치안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성인 여성에 가해지는 성폭력도 심각한 수준에 있습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율이 현재 전쟁과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폭력)범죄율이 높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성폭력범죄에 취약한 나라인 것이지요.

성폭력은 교회라고 해서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20169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더불어 민주당 박남춘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5(2011- 2015)간 전문직 성폭력 범죄 검거자 1,258명 중 종교인이 450(35.7%)으로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교인 성범죄 검거자는 201189명에서 201483명으로 감소추세를 보였지만 2015년에는 전년대비 27%가 늘어난 10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박 의원은 "전문직군에 의한 성범죄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피해 여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은폐의 여지도 많다""종교인에 의한 성범죄는 전문 직군 중 성범죄 건수가 가장 많고 계속 증가추세를 보임에 따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서지현이라는 여검사가 8년 전 동기 부친 상가집에서 고위상사에게 당한 성폭력을 고발했습니다. 성추행을 당하는 현장에 법무부 관계자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폭력 피해 고통 속에서 아이 유산, 발작, 극단적인 생각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갔고 내 잘못이라고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검사는 인터뷰에서 제가 범죄 피해를 입었고 또 성폭력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거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니가, 굉장히 내가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구나 하는 자책감에 굉장히 괴로움이 컸다며,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와서 피해자분들께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야기해주고 싶어서 나왔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데 8년 걸렸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비단 서검사만이 아니라 성폭력피해를 입은 많은 여성들이 겪는 일입니다. 검찰 뿐만 아니라 상명하복이 중시되고 위계질서가 강한 폐쇄적인 조직문화에서는 문제가 일어나면 꽃뱀으로 몰리거나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까지 함께 찍혀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이 때문에 피해를 당하고도 용기를 내어 고발하지 못하고 혼자 끙긍 앓는 경우가 많고 급기야는 자기 잘못으로 돌려버립니다. 교회 내 성폭력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반 성폭력피해 여성들이 겪는 고통에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 신고해서 주의 종을 해롭게 하면 벌 받을 텐데..내가 죄가 많아서.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 건가?.”등등 신앙의 위기까지 겪게 됩니다. 더욱 성폭력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네 탓이라며 피해자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는 주위 시선입니다. 서검사는 자신이 고발하게 된 세가지 이유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그런데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고 증언했습니다.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서검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그 가해자는 서울 강남 모교회에서 회개하고 구원을 얻었다는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이 간증 때문에 서검사가 증언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서검사의 말처럼 회개는 일차적으로 피해당사자에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에 귀의만 하면 모든 잘못이 다 용서받는 게 아닙니다. 잘못된 교회의 가르침이 그런 파렴치한을 만들어냈습니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벌을 받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값싼 회개는 십자가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성폭력을 수사해야 할 검찰에서 동료를 상대로 성폭력이 발생했다는 서검사의 증언은 검사와 같은 전문직 신분에서도 이렇게 성폭력이 발생하는데 일반에서는 얼마나 심하겠느냐? 하고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은 피해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앞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여아들과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끊이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사회가 성차별사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차별 사회는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계층에 대해 무시하고 함부로 합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성폭력입니다. 힘 중심인 사회에서 남성들이 자기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힘을 무기로 힘없는 여성과 아동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성폭력은 여성을, 아동을 차별해서 생기는 잘못된 범죄이며 악임을 깨닫는 사회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성폭력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유엔인권선언 1조은 모든 사람의 평등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이 주창은 창세기 126절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천부인권론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현상으로서 존엄한 존재임을,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엄한 존재임을 선언합니다. 어느 한 성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차별하는 매우 큰 죄를 범하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기반으로 한 교회에서 성폭력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성서는 성폭력이 욕정을 해소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어떤 경우도 합리화될 수 없으며, 성폭력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잘못이 있으며 성폭력은 악으로서 가해자를 처벌해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남자의 욕망을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고 성폭력피해자를 이상하게 보거나 또 하나의 가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편에 서서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성폭력 범죄자가 제대로 댓가를 치루지 않고 오히려 폭행당한 여성이 죄인취급을 받으며 자책감과 죄책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인간성을 상실해갑니다. 오늘도 많은 다말들이 숨어지내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다말의 편에 서서 오늘날의 다말들에게 격려의 소리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힘내세요!” 이런 격려와 함께 성희롱과 성폭력이 만연한 문화풍토를 바꾸고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교회를 성평등교회로 만들고, 교회 안에 있는 성폭력을 추방하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교회가 자정될 때 그 힘으로 사회를 자정시킬 수 있고, 이 땅에서 다말의 울음소리가 그치게 될 것입니다.

 

 

 

 

 

 

 

다말,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한국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말이라는 한 여성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말은 다윗의 딸로 공주였으나 이복 오라비 암논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일생을 비참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다말의 이야기는 왜 성폭력이라는 것이 일어나는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주변에서 어떻게 사건을 처리하는지, 성폭력으로 고통받은 여성들이 얼마만큼 참담한 삶을 사는지 잘 보여줍니다.

첫째 다말의 경우에서 보듯이 성폭력이란 욕정을 채우려는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다말은 다윗왕의 딸 공주였는데, 이복 오라비 암논이 아름다운 다말을 보고 욕정을 품게 되었다는 말로 사건을 시작합니다. 암논은 처녀를 욕보여서는 안된다는 율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말을 정복하고자 꾀병을 알았고, 다말이 병문안을 오자 다말을 강간하려 했습니다. 다말이 암논에게 사정합니다. “오라버니, 이스라엘에는 이런 법이 없습니다. 제발 나에게 욕을 보이지 마십시오. 오라버니가 내게 이런 일을 하면 내가 수치를 당하고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정을 하지만 함정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던 암논은 기어코 다말을 욕보이고 맙니다.

다말이 암논의 욕정을 채우기 위한 대상이었듯, 성폭력은 욕정을 채우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욕망을 채우면서 정복쾌감이 일어납니다. 암논의 경우에서 보듯이 성폭력가해자들은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합니다. 아동성폭력의 경우 대부분 사탕들을 주고 꾀거나 유인해서, 청소년들에게는 돈과 물질 공세로, 여성들에게 함정을 파서 힘으로 정복합니다. 욕보이지 말라는 다말의 애원에도 개의치 않았던 암논처럼 피해자들이 아무리 애원을 해도 그 소리는 욕정을 채우려는 욕망에 묵살당하고 맙니다. 암논에게서 보듯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폭력을 했다는 것도 핑계일 뿐 욕정을 채우려는 욕망이 컸고 그 욕망을 채우는데 권모술수와 힘이 뒷받침을 합니다. 다말 사건은 성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될 수 없음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말을 성폭력한 암논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로인해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율법에서는 본질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성폭력도 금하고 있으며, 특히 근친에 의한 성폭력을 금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율법(신명기 2225-27)소리를 질러도 구하여 줄 사람이 없었을 경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죄가 없고 가해자를 살인죄인으로 규정하고 반드시 책임을 묻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소리칠 수 없는 상황이란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저항할 힘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저항할 힘이 없어 성폭력을 당할 경우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강간을 당한 다말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고발하는 당시의 법에 따라 머리에 재를 뿌리고 입고 있던 색동옷 소매를 찢고 목을 놓아 울며 집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율법에 정한 바에 따라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것을 호소했으나 다말에게 돌아온 것은 침묵의 강요와 외면뿐이었습니다. 다말을 보고 사태를 짐작한 오라버니 압살놈은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율법에서도 금지된 악한 일을 당하고도 다말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딸 다말이 암논에게 강간당한 것을 듣고서 몹시 분개했지만 그러나 암논에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자신이 밧세바를 성폭행한 경험 때문이었을까요? 그런데 후에 압살롬이 동생 다말이 당한 성폭력 때문에 암논을 죽였을 때는 입고 있는 옷을 찢으며 누워버립니다. 만일 다윗이 율법이 정한 바에 따라 암논을 처벌했다면 형제살인이라는 참사는 밀어나지 않았을 텐데요. 권력으로 악을 덮으려 했기 때문에 더 큰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딸이 강간당했음에도 암논을 심판하지 않는 다윗의 태도, 그 때문에 암논이 보복으로 죽임을 당했을 때 애통해 하는 다윗의 모습은 피해자 여성 편이 아니라 가해자 남성의 편이라는, 가부장 사회의 단면을 여지없이 드러내줍니다.

율법에서 성폭력 범죄자를 살인죄와 같은 중벌로 처벌하도록 정해져 있음에도 다윗왕이 이 법을 무시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성폭력특별법이 엄연히 있지만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자 여성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말 사건은 성폭력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는 가부장사회의 잘못된 태도를 고발하고, 우리가 무엇을 경계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다말의 이야기는 여성이 당하는 고난의 역사가 기억되고 그 기억 속에서 부활되어야 함을 전해줍니다. 성서는 성폭행당한 여성들의 고난을 묻어두지 않고 고발합니다. 다말뿐만 아니라 성서 속에 억울하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몇 사례 나옵니다. 들판에 놀러나갔다가 세겜에게 강간당한 야곱의 딸 디나, 집단강간당하고 죽은 레위인의 첩, 다윗에게 강간당한 우리아의 처 밧세바 등, 이렇게 성폭력으로 고통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성서가 이런 여성학대와 여성고통의 이야기를 전승하도록 한 것은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은 성폭력을 악이라 규정하고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악의 뿌리를 뽑기 위함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보상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이스라엘 역사에 기록하여 그 여인의 한과 고난이 기억하고 전승하도록 합니다. 압살롬은 자기 딸의 이름을 희생당한 고모 다말의 이름을 따서 다말이라고 지음으로써 억울한 다말의 고통을 기억하고 위로합니다.

 

오늘 우리가 다말의 이야기를 다시 상기하는 것은 다말, 디나, 레위인의 첩, 밧세바 등 남성들에 의해 성폭행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장에서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동성폭력, 집단강간, 근친강간, 납치강간, 전쟁 중에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 권력에 의한 성폭력 등, 성서에서 고발한 여성들에 가해지는 성폭력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찰조사에 의하면 살인, 강도 등의 범죄는 줄어드는데 유독 성폭력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과 청소년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동성폭력의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일명 나영이 사건과 나주 아동성폭력사건이 있습니다. 나영이 사건이란 안산에서 조두순이라는 사람에 의해 교회 화장실로 납치되어 일어난 8세 나영이 사건고, 나주사건이란 나주에서 7세 아동이 잠자다 동네 아저씨에게 납치되어 도로변에서 성폭력 당한 사건입니다. 때려서 기절한 아이를 강간해 음부와 항문이 심하게 훼손되었고, 장기가 몸 밖으로 유출되어 그 기능을 상실케 했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의 부당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어린 아이를 성폭행했고, 그 결과 어린아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은 평생토록 지울 수 없는 참담하고도 심각한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입혔습니다. 범행의 잔혹성과 범인의 파렴치함으로 범인 조두순(당시 56)은 징역 12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조두순 사건이 있자 2010년에 국회는 유기징역의 상한을 기존 15(가중 25)의 두 배인 30(가중 50)으로 늘렸으며,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였습니다. 또한 전자발찌 착용 최대 기한을 30년까지 연장하는 등의 대책이 마련되어 시행되었습니다. 2020년이 되면 조두순이 출소를 하는데 출소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가서 보자.” 하고 잘못은 뉘우치지 않으면서 감옥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다고 하는데 그가 읽는 성경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편 딸의 친구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이영학사건을 비롯해서 청소년들에 대한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에서도 성폭력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어 6년 사이에 3배가 폭증했고, 카메라 등을 이용한 몰카나 온라인상에서 사진을 합성하는 등 비접촉형 성폭력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데이트폭력 역시 20166674명에서 지난해 7888명으로 급증해 주요 치안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성인 여성에 가해지는 성폭력도 심각한 수준에 있습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율이 현재 전쟁과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폭력)범죄율이 높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성폭력범죄에 취약한 나라인 것이지요.

성폭력은 교회라고 해서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20169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더불어 민주당 박남춘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5(2011- 2015)간 전문직 성폭력 범죄 검거자 1,258명 중 종교인이 450(35.7%)으로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교인 성범죄 검거자는 201189명에서 201483명으로 감소추세를 보였지만 2015년에는 전년대비 27%가 늘어난 10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박 의원은 "전문직군에 의한 성범죄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피해 여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은폐의 여지도 많다""종교인에 의한 성범죄는 전문 직군 중 성범죄 건수가 가장 많고 계속 증가추세를 보임에 따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서지현이라는 여검사가 8년 전 동기 부친 상가집에서 고위상사에게 당한 성폭력을 고발했습니다. 성추행을 당하는 현장에 법무부 관계자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폭력 피해 고통 속에서 아이 유산, 발작, 극단적인 생각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갔고 내 잘못이라고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검사는 인터뷰에서 제가 범죄 피해를 입었고 또 성폭력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거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니가, 굉장히 내가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구나 하는 자책감에 굉장히 괴로움이 컸다며,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와서 피해자분들께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야기해주고 싶어서 나왔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데 8년 걸렸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비단 서검사만이 아니라 성폭력피해를 입은 많은 여성들이 겪는 일입니다. 검찰 뿐만 아니라 상명하복이 중시되고 위계질서가 강한 폐쇄적인 조직문화에서는 문제가 일어나면 꽃뱀으로 몰리거나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까지 함께 찍혀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이 때문에 피해를 당하고도 용기를 내어 고발하지 못하고 혼자 끙긍 앓는 경우가 많고 급기야는 자기 잘못으로 돌려버립니다. 교회 내 성폭력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반 성폭력피해 여성들이 겪는 고통에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 신고해서 주의 종을 해롭게 하면 벌 받을 텐데..내가 죄가 많아서.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 건가?.”등등 신앙의 위기까지 겪게 됩니다. 더욱 성폭력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네 탓이라며 피해자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는 주위 시선입니다. 서검사는 자신이 고발하게 된 세가지 이유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그런데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고 증언했습니다.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서검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그 가해자는 서울 강남 모교회에서 회개하고 구원을 얻었다는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이 간증 때문에 서검사가 증언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서검사의 말처럼 회개는 일차적으로 피해당사자에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에 귀의만 하면 모든 잘못이 다 용서받는 게 아닙니다. 잘못된 교회의 가르침이 그런 파렴치한을 만들어냈습니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벌을 받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값싼 회개는 십자가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성폭력을 수사해야 할 검찰에서 동료를 상대로 성폭력이 발생했다는 서검사의 증언은 검사와 같은 전문직 신분에서도 이렇게 성폭력이 발생하는데 일반에서는 얼마나 심하겠느냐? 하고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은 피해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앞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여아들과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끊이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사회가 성차별사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차별 사회는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계층에 대해 무시하고 함부로 합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성폭력입니다. 힘 중심인 사회에서 남성들이 자기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힘을 무기로 힘없는 여성과 아동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성폭력은 여성을, 아동을 차별해서 생기는 잘못된 범죄이며 악임을 깨닫는 사회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성폭력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유엔인권선언 1조은 모든 사람의 평등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이 주창은 창세기 126절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천부인권론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현상으로서 존엄한 존재임을,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엄한 존재임을 선언합니다. 어느 한 성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차별하는 매우 큰 죄를 범하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기반으로 한 교회에서 성폭력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성서는 성폭력이 욕정을 해소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어떤 경우도 합리화될 수 없으며, 성폭력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잘못이 있으며 성폭력은 악으로서 가해자를 처벌해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남자의 욕망을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고 성폭력피해자를 이상하게 보거나 또 하나의 가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편에 서서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성폭력 범죄자가 제대로 댓가를 치루지 않고 오히려 폭행당한 여성이 죄인취급을 받으며 자책감과 죄책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인간성을 상실해갑니다. 오늘도 많은 다말들이 숨어지내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다말의 편에 서서 오늘날의 다말들에게 격려의 소리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힘내세요!” 이런 격려와 함께 성희롱과 성폭력이 만연한 문화풍토를 바꾸고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교회를 성평등교회로 만들고, 교회 안에 있는 성폭력을 추방하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교회가 자정될 때 그 힘으로 사회를 자정시킬 수 있고, 이 땅에서 다말의 울음소리가 그치게 될 것입니다.

 

 

 

 

 

 

다말,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한국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말이라는 한 여성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말은 다윗의 딸로 공주였으나 이복 오라비 암논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일생을 비참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다말의 이야기는 왜 성폭력이라는 것이 일어나는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주변에서 어떻게 사건을 처리하는지, 성폭력으로 고통받은 여성들이 얼마만큼 참담한 삶을 사는지 잘 보여줍니다.

첫째 다말의 경우에서 보듯이 성폭력이란 욕정을 채우려는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다말은 다윗왕의 딸 공주였는데, 이복 오라비 암논이 아름다운 다말을 보고 욕정을 품게 되었다는 말로 사건을 시작합니다. 암논은 처녀를 욕보여서는 안된다는 율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말을 정복하고자 꾀병을 알았고, 다말이 병문안을 오자 다말을 강간하려 했습니다. 다말이 암논에게 사정합니다. “오라버니, 이스라엘에는 이런 법이 없습니다. 제발 나에게 욕을 보이지 마십시오. 오라버니가 내게 이런 일을 하면 내가 수치를 당하고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정을 하지만 함정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던 암논은 기어코 다말을 욕보이고 맙니다.

다말이 암논의 욕정을 채우기 위한 대상이었듯, 성폭력은 욕정을 채우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욕망을 채우면서 정복쾌감이 일어납니다. 암논의 경우에서 보듯이 성폭력가해자들은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합니다. 아동성폭력의 경우 대부분 사탕들을 주고 꾀거나 유인해서, 청소년들에게는 돈과 물질 공세로, 여성들에게 함정을 파서 힘으로 정복합니다. 욕보이지 말라는 다말의 애원에도 개의치 않았던 암논처럼 피해자들이 아무리 애원을 해도 그 소리는 욕정을 채우려는 욕망에 묵살당하고 맙니다. 암논에게서 보듯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폭력을 했다는 것도 핑계일 뿐 욕정을 채우려는 욕망이 컸고 그 욕망을 채우는데 권모술수와 힘이 뒷받침을 합니다. 다말 사건은 성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될 수 없음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말을 성폭력한 암논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로인해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율법에서는 본질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성폭력도 금하고 있으며, 특히 근친에 의한 성폭력을 금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율법(신명기 2225-27)소리를 질러도 구하여 줄 사람이 없었을 경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죄가 없고 가해자를 살인죄인으로 규정하고 반드시 책임을 묻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소리칠 수 없는 상황이란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저항할 힘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저항할 힘이 없어 성폭력을 당할 경우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강간을 당한 다말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고발하는 당시의 법에 따라 머리에 재를 뿌리고 입고 있던 색동옷 소매를 찢고 목을 놓아 울며 집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율법에 정한 바에 따라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것을 호소했으나 다말에게 돌아온 것은 침묵의 강요와 외면뿐이었습니다. 다말을 보고 사태를 짐작한 오라버니 압살놈은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율법에서도 금지된 악한 일을 당하고도 다말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딸 다말이 암논에게 강간당한 것을 듣고서 몹시 분개했지만 그러나 암논에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자신이 밧세바를 성폭행한 경험 때문이었을까요? 그런데 후에 압살롬이 동생 다말이 당한 성폭력 때문에 암논을 죽였을 때는 입고 있는 옷을 찢으며 누워버립니다. 만일 다윗이 율법이 정한 바에 따라 암논을 처벌했다면 형제살인이라는 참사는 밀어나지 않았을 텐데요. 권력으로 악을 덮으려 했기 때문에 더 큰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딸이 강간당했음에도 암논을 심판하지 않는 다윗의 태도, 그 때문에 암논이 보복으로 죽임을 당했을 때 애통해 하는 다윗의 모습은 피해자 여성 편이 아니라 가해자 남성의 편이라는, 가부장 사회의 단면을 여지없이 드러내줍니다.

율법에서 성폭력 범죄자를 살인죄와 같은 중벌로 처벌하도록 정해져 있음에도 다윗왕이 이 법을 무시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성폭력특별법이 엄연히 있지만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자 여성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말 사건은 성폭력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는 가부장사회의 잘못된 태도를 고발하고, 우리가 무엇을 경계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다말의 이야기는 여성이 당하는 고난의 역사가 기억되고 그 기억 속에서 부활되어야 함을 전해줍니다. 성서는 성폭행당한 여성들의 고난을 묻어두지 않고 고발합니다. 다말뿐만 아니라 성서 속에 억울하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몇 사례 나옵니다. 들판에 놀러나갔다가 세겜에게 강간당한 야곱의 딸 디나, 집단강간당하고 죽은 레위인의 첩, 다윗에게 강간당한 우리아의 처 밧세바 등, 이렇게 성폭력으로 고통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성서가 이런 여성학대와 여성고통의 이야기를 전승하도록 한 것은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은 성폭력을 악이라 규정하고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악의 뿌리를 뽑기 위함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보상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이스라엘 역사에 기록하여 그 여인의 한과 고난이 기억하고 전승하도록 합니다. 압살롬은 자기 딸의 이름을 희생당한 고모 다말의 이름을 따서 다말이라고 지음으로써 억울한 다말의 고통을 기억하고 위로합니다.

 

오늘 우리가 다말의 이야기를 다시 상기하는 것은 다말, 디나, 레위인의 첩, 밧세바 등 남성들에 의해 성폭행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장에서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동성폭력, 집단강간, 근친강간, 납치강간, 전쟁 중에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 권력에 의한 성폭력 등, 성서에서 고발한 여성들에 가해지는 성폭력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찰조사에 의하면 살인, 강도 등의 범죄는 줄어드는데 유독 성폭력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과 청소년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동성폭력의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일명 나영이 사건과 나주 아동성폭력사건이 있습니다. 나영이 사건이란 안산에서 조두순이라는 사람에 의해 교회 화장실로 납치되어 일어난 8세 나영이 사건고, 나주사건이란 나주에서 7세 아동이 잠자다 동네 아저씨에게 납치되어 도로변에서 성폭력 당한 사건입니다. 때려서 기절한 아이를 강간해 음부와 항문이 심하게 훼손되었고, 장기가 몸 밖으로 유출되어 그 기능을 상실케 했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의 부당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어린 아이를 성폭행했고, 그 결과 어린아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은 평생토록 지울 수 없는 참담하고도 심각한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입혔습니다. 범행의 잔혹성과 범인의 파렴치함으로 범인 조두순(당시 56)은 징역 12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조두순 사건이 있자 2010년에 국회는 유기징역의 상한을 기존 15(가중 25)의 두 배인 30(가중 50)으로 늘렸으며,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였습니다. 또한 전자발찌 착용 최대 기한을 30년까지 연장하는 등의 대책이 마련되어 시행되었습니다. 2020년이 되면 조두순이 출소를 하는데 출소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가서 보자.” 하고 잘못은 뉘우치지 않으면서 감옥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다고 하는데 그가 읽는 성경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편 딸의 친구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이영학사건을 비롯해서 청소년들에 대한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에서도 성폭력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어 6년 사이에 3배가 폭증했고, 카메라 등을 이용한 몰카나 온라인상에서 사진을 합성하는 등 비접촉형 성폭력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데이트폭력 역시 20166674명에서 지난해 7888명으로 급증해 주요 치안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성인 여성에 가해지는 성폭력도 심각한 수준에 있습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율이 현재 전쟁과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폭력)범죄율이 높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성폭력범죄에 취약한 나라인 것이지요.

성폭력은 교회라고 해서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20169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더불어 민주당 박남춘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5(2011- 2015)간 전문직 성폭력 범죄 검거자 1,258명 중 종교인이 450(35.7%)으로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교인 성범죄 검거자는 201189명에서 201483명으로 감소추세를 보였지만 2015년에는 전년대비 27%가 늘어난 10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박 의원은 "전문직군에 의한 성범죄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피해 여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은폐의 여지도 많다""종교인에 의한 성범죄는 전문 직군 중 성범죄 건수가 가장 많고 계속 증가추세를 보임에 따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서지현이라는 여검사가 8년 전 동기 부친 상가집에서 고위상사에게 당한 성폭력을 고발했습니다. 성추행을 당하는 현장에 법무부 관계자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폭력 피해 고통 속에서 아이 유산, 발작, 극단적인 생각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갔고 내 잘못이라고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검사는 인터뷰에서 제가 범죄 피해를 입었고 또 성폭력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거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니가, 굉장히 내가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구나 하는 자책감에 굉장히 괴로움이 컸다며,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와서 피해자분들께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야기해주고 싶어서 나왔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데 8년 걸렸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비단 서검사만이 아니라 성폭력피해를 입은 많은 여성들이 겪는 일입니다. 검찰 뿐만 아니라 상명하복이 중시되고 위계질서가 강한 폐쇄적인 조직문화에서는 문제가 일어나면 꽃뱀으로 몰리거나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까지 함께 찍혀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이 때문에 피해를 당하고도 용기를 내어 고발하지 못하고 혼자 끙긍 앓는 경우가 많고 급기야는 자기 잘못으로 돌려버립니다. 교회 내 성폭력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반 성폭력피해 여성들이 겪는 고통에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 신고해서 주의 종을 해롭게 하면 벌 받을 텐데..내가 죄가 많아서.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 건가?.”등등 신앙의 위기까지 겪게 됩니다. 더욱 성폭력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네 탓이라며 피해자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는 주위 시선입니다. 서검사는 자신이 고발하게 된 세가지 이유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그런데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고 증언했습니다.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서검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그 가해자는 서울 강남 모교회에서 회개하고 구원을 얻었다는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이 간증 때문에 서검사가 증언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서검사의 말처럼 회개는 일차적으로 피해당사자에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에 귀의만 하면 모든 잘못이 다 용서받는 게 아닙니다. 잘못된 교회의 가르침이 그런 파렴치한을 만들어냈습니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벌을 받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값싼 회개는 십자가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성폭력을 수사해야 할 검찰에서 동료를 상대로 성폭력이 발생했다는 서검사의 증언은 검사와 같은 전문직 신분에서도 이렇게 성폭력이 발생하는데 일반에서는 얼마나 심하겠느냐? 하고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은 피해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앞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여아들과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끊이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사회가 성차별사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차별 사회는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계층에 대해 무시하고 함부로 합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성폭력입니다. 힘 중심인 사회에서 남성들이 자기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힘을 무기로 힘없는 여성과 아동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성폭력은 여성을, 아동을 차별해서 생기는 잘못된 범죄이며 악임을 깨닫는 사회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성폭력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유엔인권선언 1조은 모든 사람의 평등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이 주창은 창세기 126절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천부인권론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현상으로서 존엄한 존재임을,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엄한 존재임을 선언합니다. 어느 한 성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차별하는 매우 큰 죄를 범하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기반으로 한 교회에서 성폭력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성서는 성폭력이 욕정을 해소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어떤 경우도 합리화될 수 없으며, 성폭력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잘못이 있으며 성폭력은 악으로서 가해자를 처벌해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남자의 욕망을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고 성폭력피해자를 이상하게 보거나 또 하나의 가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편에 서서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성폭력 범죄자가 제대로 댓가를 치루지 않고 오히려 폭행당한 여성이 죄인취급을 받으며 자책감과 죄책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인간성을 상실해갑니다. 오늘도 많은 다말들이 숨어지내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다말의 편에 서서 오늘날의 다말들에게 격려의 소리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힘내세요!” 이런 격려와 함께 성희롱과 성폭력이 만연한 문화풍토를 바꾸고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교회를 성평등교회로 만들고, 교회 안에 있는 성폭력을 추방하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교회가 자정될 때 그 힘으로 사회를 자정시킬 수 있고, 이 땅에서 다말의 울음소리가 그치게 될 것입니다.

 

                                                                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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