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설교

기억과 전승

한국소금 2019. 3. 22. 20:22

                               기억과 전승

 

                                                                     한국염/교회협부회장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기억과 전승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여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지 않습니다. 여인들의 이야기는 묻혀버리거나 왜곡되어 전해집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되 자기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창세기 1장의 말씀도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전하면서 남자와 여자가 다같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씀은 선포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여성들을 자기의 동역자로 나와 같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소개했음에도 남자에게 쓸 때는 사도나 하나님의 일꾼, 감독이라고 지칭하면서 여자는 그냥 일꾼이나 집사라고 소개합니다.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도 있을 수 없고, 모두 하나님께로 왔습니다.“ 하는 말은 가르치지 않고 남자가 여자를 위해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하는 말씀만 가르칩니다. 가부장사회에서 남성들에게 편리한 대로 설교하고 가르치고 여성들에게 좋은 이야기는 묻어버리거나 왜곡해 전해왔습니다. 이런 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이 여인이 한 일을 전하고 기억하라!”.

여기서 기억하라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기억이란 히브리 말의 어원은 그냥 과거를 회상하고 반성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알고 결단해서 그 일에 동참하는 행동까지를 뜻합니다. 히브리 민족이 유월절 행사를 통해 과거 자기 민족의 출애급 역사와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듯이 기억이라는 단어 속에서는 과거의 회상, 그 일의 의미, 새로운 결단을 하는 일련의 행동이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여인이 한 일을 기억하라고 한 말에는 여인이 한 행위를 회상하고 그 의미를 반추해보고 자기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여인처럼 그렇게 하겠다는 결단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이 한 일을 기억하라고 아무리 말씀하셨지만 교회는 여인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선포되지 않으니까 여성들도 여인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남성들이 기억해주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여성목회의 길을 걸으려는 우리라도 이제 기억하는 일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성서 속의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여성의 눈으로 새롭게 해석해서 기억하는 일을 시작해봅시다. 여성신학자 엘리지베스 휘오렌자는 우리들이 신학을 함에 있어 성서 속 여성들의 이야기, 교회사 속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부장적 교회 전통 속에서 묻혀버리거나 왜곡되어 전해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찾아내어 회상하고 여성해방적으로 살려내어 전승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피오렌자는 왜곡되어 전해지거나 묻혀 지고 잊혀진 여성들의 자취를 찾아내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기본으로 해서 그녀를 기억하며라는 책을 썼습니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들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대열에 서기를 요청합니다.

 

우리가 우선 기억해야 할 여성들은 성서 속의 여성들과 더불어 초창기 우리 한국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애를 썼던 우리 선배 여교역자들입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가부장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압제당하고 차별받으며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자도 남자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하나다.‘라는 남자와 여자, 성 차별 없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유교 전통의 가부장제 하에서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말 그대로 복음이었습니다. 이 복음에 접한 여성들은 성서를 읽기 위해 사경회를 통해 읽기 쓰기를 배웠고 이들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전도부인이 되었습니다. 여성이 집 안에만 있지 않고 전도부인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당시 일반적 규범을 깨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가족과 마을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한 전도부인은 시집식구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여자도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주 예수님 안에서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 복음을 버릴 수 없다며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내걸고 복음을 증거했는데, 그것은 복음이 준 해방과 자유의 감격 때문이었고, 전도부인이 지나간 곳에 새 신자가 생겨났습니다.

이 전도부인들의 역할과 공헌에 대해서 브라운 이라는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교회의 성공에는 전도부인의 노력이 있다.“ 처음에는 선교사들을 돕는 조력자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명실공이 한국교회 여신도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전도부인들은 개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교회 여성들을 조직하고 성장을 도왔습니다. 이렇게 전도부인들이 조직한 교회의 여신도조직들은 국제보상운동 등 일제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는 전초기지가 되었으며, 교회의 만세운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교회가 성장하면서 이런 전도부인의 역할과 공헌은 묻혀버리고 교회제도와 질서는 평등이라는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 가부장적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전도부인들에 의해 해방과 자유로서의 복음을 맛보게 된 교회여성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성차별의 질곡 속에 다시 놓이게 되었습니다. 신학교가 생기고 여성들도 신학공부를 해 전도부인에서 전도사가 되었지만 여교역자들의 역할과 위치는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오죽 차별이 심했으면 1922년이 여전도사들이 남교역자들과의 불평등한 임금을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1930년 남녀 평등에 입각한 교회치리권과 운영권, 여장로와 여목사 안수를 요청하였습니다. 이미 이 시대부터 여교역자들의 지위행상과 평등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교역자들의 요구는 남성교역자와 장로들이 지배하는 한국교회에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바울의 말 때문에 묵살되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사에서 전도부인을 비롯한 여교역자들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반추해야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최덕지목사입니다. 해방후 재건파교회에서 신사참배 반대를 해 옥고를 치루었던 최덕지 전도사의 공로를 인정해서 195143일 목사안수를 주기로 결정하면서 여성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최덕지 선생에게 주는 것이라고 목사안수 허락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자 최덕지 전도사는 일어서서 오늘 나 개인 최덕지에게 목사 안수한다면 안받겠습니다. 여자에게 성직을 줄 수 있는 것이 성경적으로 진리냐 아니냐, 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분명히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자 찬반토론 끝에 여성들도 성경에 따라 안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고 헌법에 여성안수권이 명시되었습니다. 이에 최덕지목사의 뒤를 이어 김영숙, 김가숙 두 여성을 목사로 안수시켰습니다. 여성의 권익을 위해서 자기 이익을 포기한, 여여성연대의 중요한 본보기로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여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것처럼 더욱이 전해지지 않은 여인의 행동이 있는데, 바로 여인이 당시 금기사항이던 남성의 영역을 치고 들어갔다는 점에 대한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리기 전에 이 여인이 맨 먼저 한 일은 남성들만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금기를 깨고 나간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들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용납되지 않던 시대에, 가부장적 문화 틀을 깨고 이 여성은 남성제자들이 있는 자리에 과감히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금기를 깨고 남성들만 차지하고 있는 공적인 영역에 여성이 나아간 행동, 이 행동이 이름 없는 여인이 한 행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을 금하지 않고 두둔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한 일을 전하고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여인이 예수께 기름부은 행동뿐만 아니라 남성의 자리에 치고 들어간 여인의 용감한 행동을 함께 기억하고 전승해야 합니다. 이 여인처럼 교회사에서 금기를 깨드리고 남성의 영역에 치고 들어간 많은 선배여성들이 있고, 그 여성들의 고통과 투쟁 때문에 여성안수를 비롯해 평등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전도부인들과 선배여교역자들의 이야기를 살려내고 기억하려는 것은 당시 여교역자들의 복음을 향한 열정과 공헌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이들의 투쟁의 역사도 함께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물어봅시다. 오늘 우리는 초창기 한국교회의 산 증인이었던 우리의 선배 전도부인들처럼 그렇게 복음을 향해 열정적인가? 복음을 통해 자유와 해방을 맛보는가? 복음의 본질인 평등, 남자와 여자의 평등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가? 이런 것이 없다면 우리는 제대로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 나는 이름 없는 여인, 그녀를 기념하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기억과 전승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로 일본군위안부이야기입니다. 일본대사관 앞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000차 수요시위를 기해 세운 것으로, 아시아의 소녀들을 끌고가 일본군 성노예로 삼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일본군위안부의 참혹한 고통의 역사, 정조를 잃은 죄인으로, 피해자로 계시다가 증언을 통해서 평화운동가, 인권운동가가 되신 할머니들의 고통과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서, 나아가서 다시는 전쟁으로 인해 여성과 어린 소녀들이 성노예로 끌려가지 않는 평화의 세상을 기원하기 위해서 세운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와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가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시작에 바로 한국기독여성운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시작은 30년전 당시 교회와 사회위원회 위원이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효재선생이 정신대문제를 연구하던 이화여자대학교 윤정옥선생님을 소개하여 교회여성연합회가 일본군위안부의 발자취를 따라 일본에 실태조사를 다녀온 것이 출발점입니다. 이후 교회여성연합회를 비롯해 1990111637개 단체가 모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만들었고, 회원단체의 절반이 기독여성단체들입니다. 일본이 일본군위안부존재자체를 거부하자 내가 바로 일본군위안부였다고 신고한 첫 신고자도 바로 동대문감리교회 교인이었던 김학순할머니였습니다. 김학순할머니의 신고 이후 제2,3의 김학순이 나와 239명의 할머니들이 신고를 했습니다. 어느덧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는 1300회를 넘어서고 있으며,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서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유엔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전쟁범죄요, 반인권적인 여성범죄, 전시하 여성인권 범죄의 대표적 사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계속적으로 일본국가 차원에서 강제로 한 것이 아니라고 공식인정과 사죄를 거부해왔습니다. 그리고 2015 한일외교장관합의를 통해서 일본군위안부의 역사 자체를 지우려 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번 한일정부간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우리 의사는 전혀 물어보지도 않고 공식사죄도 아니고, 법적 배상도 아닌 이번 합의는 무효예요.” 라고. “우리가 일본의 사실인정, 공식사죄와 배상을 원하는 것은 우리 미래 세대들이 다시는 우리처럼 성노예로 끌려가는 일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위해서입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할머니들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평화를 위해 일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우리 기독인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1125일은 세계여성에 대한 폭력추방일입니다. 올해 1125일 정대협이 한일합의를 무효와하기 위해 세운 정의기억재단은 5시 청계광장에 모여 이제까지 일본에 굴하지 않고 싸워 35명밖에 남지 않은 할머니들께 백만 시민의 이름으로 여성인권상을 드리는 날로 잡았습니다. 이는 할머니들의 고난의 역사,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자는, 그녀들을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도 꼭 함께 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홀로코스트 박물관 이름은 야드 바셈입니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야드바셈에 이런 말이 씌어져 있다고 합니다. “기억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이지만, 망각은 멸망의 길이다.”

이 여인이 한 일을 기억하고 전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땅의 여성들이 복음을 위해서 한 일을 기억하고 전하라고. 그리고 이 땅의 여성들이 당한 고난의 역사와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전하라고. 기억과 전승으로 새로운 구원의 역사, 해방의 역사를 열어가기를 기원합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이회여자대학교 신학대학원 예배에서 한 설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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