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이정표 문동환 목사님
한국염
문동환목사님에 대한 추모글 부탁을 받고 고민을 많이 하였다. 이미 언론에서 문목사님에 대한 행적과 삶이 많이 조명되었기 때문이다. 사족을 붙이게 될까 우려하면서도 제지러서 추모하는게 마땅하다는 생각에서 한 스승의 삶이 그 제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개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추모글을 남기려고 한다. 이 글은 문목사님께 드리는 나의 사부가이기도 하다.
내 일생의 롤 모델이 되신 두 분의 은사님이 계신다. 한 분은 여성운동가로서의 내 삶의 모델이 되신 이우정선생님이고, 다른 한 분은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내 삶의 이정표가 되신 문동환교수님이시다. 나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다. 한국신학대학(현재 한신대학교)에 들어간 것은 내가 기장교회에 다녔고 한신이 기장 신학교였기 때문이다. 입학을 하고 보니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해서 학교를 그만 두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교수로 계신 이우정선생님을 보면서 “교수는 여자도 될 수 있구나.” 해서 한신에 남았다. 그리고 한신에 남기를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 바로 문동환교수님이셨다. 교수님에게서 배운 첫 과목은 ‘세계와 나’라는 과목이었다. 우리 선배들은 자아확립이라는 과목으로 배웠다고 한다. 이 세계와 나 시간에 배운 것은 “생의 놀라운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릭 프롬의 ‘존재와 소유’라는 가치관을 배운 것도 문교수님으로부터다.
문교수님이 싫허하는 찬송가가 몇장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였다. 특히 “그 가사 중에 괴롭고 죄만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하는 가사였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외아들을 보내기까지 사랑한 곳인데 이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문박사님이 강조하신 것 중의 하나가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그 작은 자와 함께 하고 그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할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그 당시 문교수님은 미국에서 흑인신학을 공부하시고 귀국하신지 얼마 안 되는 때라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다. 강의실에서 외치신던 “아파해야 해요!” 이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이 아파하는 마음이 문교수님을 도시 빈민과 노동자, 특히 여성노동자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삶으로 들어가게 하셨다고 본다. 나는 한신대 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면서 기독교교육을 택하는 학생들이 없어 일대일 수업을 많이 했는데 이때 교수님으로부터 받는 지적인 내용보다는 교수님의 삶의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문교수님의 꿈은 공동체를 통해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벽의 집을 만드셨다. 학생 때부터 새벽의 집을 드나들고 결혼해서도 새벽의 집 옆에 살면서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지, 삶의 목표가 어떠해야 하는지, 남녀 간에 평등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체화하였다.
나는 제2의 이우정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여성운동에 매진하면서도 삶의 가치관이나 목회활동은 문교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려고 노력하였다. 문교수님의 물음, “오늘날 이 땅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내 삶의 물음이 되었다. 그래서 민중교회 목회자가 되었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이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왔을 때 그 때도 문목사님에게 배운 그 물음을 물었다. “오늘날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누군가?”. 그때 내게 들려 온 대답은 “외국인노동자입니다.” 였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고, 특히 여성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들의 인권문제에 나서게 되었다. 목사님을 찾아뵈었을 때 문목사님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하시면 글로벌 시대, 신자유주의 하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라고 하시며 자신도 떠돌이 신학을 하고 있다고 격려를 해주셨다. 얼마 후 부인 문혜림선생님이 세우신 두레방 20주년 기념논문집에 에 떠돌이 신학에 관한 글을 쓰셨고 자신의 정체성을 떠돌이 목자라고 규정하시고 바벨탑과 떠돌이라는 책을 내셨다. 그 책을 쓰시면서 책에 실릴 내용들을 중심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셨다. 그 기억이 어제 같은데 이제 선생님은 떠돌이 목자로서의 생을 마치셨다. 나에게 떠돌이 목자로서의 길을 이정표로 남기시고. 선생님의 영전에서 선생님이 남긴 이정표를 따르겠노라고 감히 말씀드려본다.
이 글은 지난 3월에 별세하신 스승 문동환목사님에 대한 추모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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