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얍복강 나루터를 건너며 -남북여성대회참석기

한국소금 2018. 4. 4. 15:49

얍복강 나루터를 건너며

-615공동선언실천과 평화를 위한 남북여성통일대회에 다녀 와서

 

*2002 남북여성통일대회는 두 차례의 615민족공동행사와 815공동행사, 남북노동자통일대회, 농민통일대회, 청년학생통일대회에 이어 마지막 부문행사로 열리는, 사실상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민간부문행사를 마무리하는 성격으로 이루어졌다. 이 대회는 남측에서 민화협 여성위원회, 7개 종단 여성위원회, 통일연대여성위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우리민족서로돕기 단체가, 북에서는 조선민주여성동맹, 조선여성협회, 민족회해협의회 여성부가 함께 2002년 남북여성통일대회 추진본부를 구성하여 행사를 진행하였다. 이 대회에는 남쪽에서 350여명, 북쪽에서 300, 해외에서 20여명이 참가하였다. 이 대회의 남측 참가자는 7개 주관단체의 회원과 여성정치인, 여성학자, 여성미술작가와 문화예술인, 여성노동자와 농민, 여성경제인, 교육 및 보육관계자, 기자단과 공연팀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를 통해 남북의 여성들은 따뜻한 자매애를 나누었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천을 다짐하였다.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는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한편 분단세월이 가져다 준 이질성을 확인하면서 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함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금강산 단풍이 남하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날인 1015일 아침 7, 16일에서 17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여성대회에 참석하고자 모인 360명의 남쪽 참가자 일행을 태운 버스 9대가 경복궁을 떠났다. 속초 항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 원래는 현대 아산 쪽의 배를 타고 떠나야 하는데, 배가 없어 인천에서 제주까지 가는 춘향호라는 배를 긴급으로 마련하여 떠났다. 마치 제삼국에 가는 것처럼 출입증을 받아 통과를 해야 했다. 같은 나라 땅이면서 다른 나라이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것은 북방한계선을 지날 때였다. 그때까지는 잘 터지던 핸드폰이 한계선 지역에 와서는 터지지 않았다. 정말 다른 곳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이제 북방한계선입니다.” 하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한계선을 건너노라니 가슴이 아려왔다. 저녁에 금강산 온정리에 도착을 했다. 미리 정해진 조별로 줄을 서서 긴장된 마음으로 입국수속을 했다. 대회 시작은 내일부터다. 잠자리에 누우니 내가 누워있는 이 배가 갑자기 압복강 나루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 배에서 내리면 북쪽의 자매들을 만나는데....작년에 카나다에서 만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김혜숙씨도 왔을까? ....

 

대회가 시작하는 16일 아침, 버스를 타고 개회식 장으로 향했다. 개회식이 있는 곳은 김일성 주석의 부인인 김정숙 휴양소 앞마당이었다. 이곳에서 남북, 해에에서 온 여성대표 770명이 모여 개회식을 하고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라고 하는 것은 남쪽에서처럼 자기 의견을 발표하고 그에 따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식이었다. 북측과 남측, 해외여성 대표가 각각 615공동선언 실천과 평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여성이 이 일에 앞장서자는 것을 다짐하는 내용의 발표를 하였다. 혹시 김혜숙씨가 왔나 살펴보니 가운데 앉아있었다. 김혜숙은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국제위원으로 영어도 잘해 통역으로 국제회의에 많이 참석하는 북녘 교회의 여성 대표다. 역시 작년 카나다에서 만난 카톨릭 대표 이산옥씨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있다. 개회식이 끝나자 다가가 인사를 하니 매우 반가와 했다. 꼭 일년만에 만났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상대편도 꾸민 얼굴이 아니라 정말로 반가와 하는 모습이었다. 그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비록 사상이 다르더라도 자꾸 만나면 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점심때는 솔밭에서 북측이 마련한 도시락을 먹었다. 원래 내가 속한 조와 김혜숙씨가 속한 조는 다르기 때문에 점심을 같이 먹을 수 가 없다. 그런데 혜숙 동무가 자꾸 같이 먹자고 권하는 바람에 우리 조에 양해를 구하고 기독여민회의 회장인 정태효목사와 함께 김혜숙 조에 가서 밥을 먹었다. 북측 여성들이 사이사이 끼어 앉아 식사를 함께 나누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남쪽에서 온 한 여성이 북에 정말 교회가 있느냐, 북쪽 기독교인들도 예수 믿으면 천당 가는 걸 믿느냐?”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껄끄러워 졌다. 그래서 내가 중간에서 북에 교회도 있고, 신학교도 있다. 목사님도 전도사님도 있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자 김혜숙씨가 예수 믿고 천당가는 걸 안믿으면 왜 어떻게 기독교신자라고 하겠습니까?“ 하고 답변을 했다. 이 대회에 참석하기 전에 통일원에 가서 서로 난처한 질문은 하지 않는게 좋다는 교육을 받았는데, 역시 축자영감설에 익숙한 한국교인들이고 보니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게 좋다고 꼭 꼬집어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그런 우매한 질문을 한 것이라고 속으로 웃었다.

 

오후에는 운동회를 했다. 남과 북을 함께 섞어 단결 팀과 자주 팀으로 나누어 대결을 하였다. 700명이 다 뛸 수 없어 양쪽에서 대표 주자를 내어 경기를 진행했다. 응원 단장은 북쪽에서 맡아서 했는데 지휘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다 보니 마치 어린 시절 운동회로 돌아간 그런 기분이었다. 운동 경기는 개인 경기가 아니라 남과 북의 여성들이 서로 뒤섞여 팀이 되어 하는 경기로 주로 생활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남쪽 사람들의 운동 실력이 형편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기차놀이를 하였다. 서로 어깨를 붙잡고 그 넒은 운동장을 뛰면서 돌다보니 누가 남에서 왔는지, 누가 북의 사람인지 구별 없이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남과 북이 함께 어울려 운동회를 한다는 걸 꿈도 꾸어보지 못 했었는데, 615공동선언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그 공동선언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와 닿았다.

 

다음 날 아침에 각 분야별 만남이 8시부터 열렸다. 어제 김혜숙으로부터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서 4명이 참석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난감한게 하나 있었다. 왜냐하면 남쪽에서는 개신교 대표로 온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나도 여성단체 연합 소속으로 참석했지 종단 소속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떠나기 전에 참가자 명단에서 개신교 대표들이 없는 걸 알고는 사실 걱정을 했었다. 여차 하면 나 혼자라도 기독교 쪽에 가서 만나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북에서는 4명이 왔다니 어쩌면 좋을까?... 마침 남쪽에서 여성단체 연합 소속 대표로 이 대회에 참석을 한 나를 포함해서 기독여민회의 정태효목사, 여성단체 연합 공동대표 이강실목사, 전주의 김은경목사 4명의 목사가 있었다. 이들에게 사정을 알리고 종단 모임에 참여하자고 제안을 했다. 거기에 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인 윤명선 전도사와 카나다에서 온 서진옥씨, ywca에서 온 한 분 해서 일곱명이 조선 그리스도교 연맹에서 온 여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목사 중에는 제일 선배격이고 김혜숙을 잘 알고 있다는 게 작용해서 내가 사회를 맡게 되었다. 김혜숙씨가 현재 북에는 평양에 봉수와 칠곡 2개 교회가 있고 전국에 513개소의 가정교회가 있다고 북쪽 교회를 소개하고 나서, 지난 107일에 미국이 북한에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없다고 발표한 데 대해 분노하면서 북조선 헌법에 엄연하게 신앙의 자유가 선언되어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힘을 합쳐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앞장 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기독교 모임에 북쪽 측 해외동포로 호주에서 온 두 명의 여성이 참석했는데, 어제 남한에서 온 사람들이 한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북한 교회는 예수 믿으면 천당 가는 걸 믿느냐?” 부득이 또 나서서 말을 잘랐다.

우리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서로 기본에 속하는 질문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자리는 남북의 교회 여성들이 만나서 어떻게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지, 615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해서 교회여성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이니까 그쪽으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지요.“

짧은 시간이라 많은 말을 하지 못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종단 모임이 끝났다. 나중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호주에서 온 사람들은 호주에서 북한의 기아를 지원하는 교회에 속한 사람들로 통일운동이 아니라 북한 선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었다 남북여성대회의 성질도 모르고 북에 관광 차 왔다가 묻어 온 사람들이었다. 통일되면 북한에 교회 깃발 꽂으려는 남한 쪽 교회의 태도들과 똑 같은 것을 보며 해외선교에 대한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짧은 분야별 모임이 있은 후 합동공연이 있었다. 남측과 북측에서 공연을 했는데, 남과 북의 예술세계를 비교할 수 있었다. 북쪽 춤과 노래 솜씨, 특히 어린이들의 솜씨는 가히 혀를 내두를 만 했다. 남쪽에서는 민족 춤패와 꽃다지 민중가요와 운동춤을 펼쳤고 아름나라의 통일노래 메들 리가 이어졌다.. 언뜻 보면 이질감으로 다가오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서로 다르게 발전해 온 이 솜씨들이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으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합동공연 후 북측의 인도에 따라 공동체 춤마당으로 들어갔다. 전체 행사의 절정은 북의 용어인 단심줄꼬기(길쌈자기) 대원무와 폐막식 때의 평화 비둘기 날리기였다. 예술공연 막바지에 전체 참가자들은 단심줄을 꼬기 위해 운동장 한가운데 높이 솟은 솟대를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북측 여성들이 이끄는 대로 춤의 잔치를 벌였다. 춤이 진행되는 동안 어린이들이 솟대 아래로 펼쳐진 오색천을 꼬며 빙글빙글 돌아가자 아름다운 단심줄이 완성되었다. 남북이 어우러진 흥겨운 춤 마당은 북이 우리 민속춤을 기본 사위로 집단 스포츠 춤을 만든 것으로 신나고 운동도 많이 되었다. 북과 남의 여성들이 파트너가 되어 둥근 원으로 춤을 추는 동안 우리 사이에 있던 경계선이 허물어져 갔다. 만나서 같이 놀기 전에는 서로 경계를 하고 거리감이 있고 상상 속에서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만나면서 벽을 허무는 걸 보며 만남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게 되었다. 이 대 원무는 다른 대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성들만의 춤 마당이었다.

 

단심줄 꼬기와 춤 마당에 이어 폐막식이 거행되었다. 폐막인사와 더불어 공동 결의문이 채택되었고 북측 어린이들이 남 북 어버이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낭독하였다.  마지막에 평화 비둘기 날리기로 대회가 절정에 달했다. 이 비둘기는 평양에서부터 갖고 온 것으로 615를 상징해서 6마리 비둘기를 남북 어린이 6명이 날리고, 15마리 비둘기를 남해외 여성들 15명이 날렸다. 하늘을 나르는 비둘기를 보면서 615 공동선언이 실천되어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하였다.

폐회식을 마치고 금강산 구룡폭포로 공동 산행을 하였다. 김혜숙의 전도로 신자가 되었다는 북측 신도가 내 팔을 꼭 끼고는 열심히 통일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두시간은 걸려야 폭포 앞에 가는데, 시간이 없어 한 시간만 올라갔다 도중에 하산해야 했다. 아쉽기 그지없어라! 한 시간 내내 열심히 교육하는 그 신도의 정성도 대단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산행 내내 들어야 하는 내 괴로움도 대단하였다. 어쨌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이 갖도 있는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엄청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이후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태도에 대해 생존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주통일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미국이 언제 침공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허긴 우리도 안일하게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고 있을 형편은 아니지, 북에 전쟁이 터지면, 그 화살이 곧 남으로 올텐데.

 

산행을 마치고 헤어지는 시간이 왔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면서 우리 조에서는 내가 직년 카나다에서 조선여성협회 홍선옥회장으로부터 배워 온 “심장에 남긴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여진데도 헤여진데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이 노래는 북한에서 나온 심장에 남긴 사람이라는 영화의 주제가다. 이 노래를 이해하는 데도 남과 북의 차이를 느꼈다. 이 노래는 북한에서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그리는 노래다. 그런데 우리 쪽에서는 이 노래를 들으며 연인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쨋든 이 노래를 부르노라니, 나는 과연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다시금 에서와 야곱이 만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형 에서를 만나기로 결심하고도 혹시 형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시질 않는 야곱이 많은 선물을 마련해놓고 여차 하면 자기만이라도 살려고 도망갈 방안까지 마련해 놓는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고 보니 그런 노파심들이 다 소용이 없어져 버리고 그곳에는 형제의 정만 있었다. 이 형제의 만남에는 두 가지 만남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수용하는 그런 형제의 만남이 있는 반면, 순수하게 형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혹시나 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야곱 같은 만남도 있다. 이런 야곱이 폭넓은 에서로 인해 더불어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야곱의 관점에서 본문을 읽어왔다. 그러나 진정한 만남은 에서의 입장에서야 가능해진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형제 사랑이라는 입장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그 만남은 에서의 선의를 혹시 나를 헤치려는 모략이 아닐까?’ 한 야곱처럼 불안할 수밖에 없다. 통일을 생각하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만나려 하고 만나고 있는가? 북을 야곱이 아니라 에서와 같은 마음으로 품을 수 없겠는가?

 

* 이 글은 2002년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여성대회 참석 후기로서 기장회보에 게제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