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들의 사색터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한국소금 2019. 3. 26. 19:28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이제 앞으로 두 주만 지나면 겨울이 시작된다. 빨강, 노랑으로 물들었던 나뭇잎이 그 수명을 당하고 낙엽이 되어 거리를 뒹굴기 시작했다. 이렇게 거리를 바람에 불려 쓸려 다니는 낙엽을 보면서 문득 초등학교 때 배운 노래가 생각이 난다. “가랑잎 때굴때굴 어디로 굴러가요. 발가벗은 이몸이 춥고 추워서 따뜻한 부엌 속을 찾아갑니다. ” 내 초등학교 시절은 아궁이에 나무를 때 구들을 덮이던 시절이었고, 있는 사람들은 장작으로 불을 짚이지만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산에 가서 떨어진 나뭇잎을 긁어서 불을 짚이던 그런 시절이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회의 참석차 아테네에 갔다가 지난 주 수요일에 돌아왔다. 회의목적은 이주와 개발이라는 정부 간 주재 모임이 열리는데 이 회의에 시민단체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함이다. 아테네에서는 이주민들의 입장을 몸으로 느끼는 경험을 했고 돌아와서 3일동안의 짧은 나날들 속에서 깊고 긴 생각을 하게 된 두 모임에 참석을 하였다.

아테네는 여러분이 알다싶이 그리스의 수도로서 당연히 그리스말을 쓴다. 당연히 모든 글자가 그리스어로 씌어있다. 문제는 신학교에서 그리스어를 배웠기 때문에 40년 가까이 되었어도 글자를 대충 읽을 수는 있는데, 뜻은 도무지 모르겠다. 아는 것이라고는 exodos 즉 출구 하나다. 이것은 출애급을 엑스도스라고 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다. 가는 곳 마다 이런 답답함에 부딪히면서 우리 센터에 나오는 이주여성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줄을 알면 한국어를 안다고 대답한다. 막상 뜻을 물어보면 하나도 모른다. 한글을 읽기는 읽어도 뜻을 모르는 이들이 얼마나 답답할가를 톡톡히 경험하고 그들의 고통을 몸으로 인지하게 된 것도 나름대로 수확이다.

 

그리스에서 얻은 또하나의 경험은 이주한 사람들의 입장과 위치는 모든 나라에서 똑같다는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밤에 숙소에 들어오면서 신타그마라는 광장에서 전철을 내려 그 일대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국회의사당 앞에서 난민들이 단식투쟁을 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들이 난민을 신청했는데 기각당해 항의하는 농성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이들을 막는 사람이 없어 참 이상하다 했는데, 며칠 후 우리가 데모하러 가서 알게 된 것이 그 자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곳이 아테네 도시국가 시절부터 억울한 사연이 있는 사람이 청원을 하는 그런 자리였고 민주 헌법을 만든 그런 기념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누구도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 부러웠다. 그 다음날 약 천명이 넘는 그리스 사람들이 그 앞에서 도로를 막고 시위를 하였다. 이렇게 도로를 막는 시위는 집회허가를 내야한다. 시위는 노조가 중심이 되어 하는데, 청년실업문제 때문이었다. 그리스에서도 우리처럼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하다. 그리스 인구가 1200만명 되는데 200만의 청년실업자가 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이주민들의 삶의 거처에 대한 문제다. 숙소에서 회의장이 전철로 한 정거장인데 가끔 걸어서 오갔다. 오가는 도중에 보니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거리가 있었는데 슬럼가였다. 누군가 아프리카와 인도 사람들은 도시 끝 쪽에 살고 있고 , 그곳은 이주민들이 많기 때문에 슬럼화되어 있다고 해서 마지막 날 전철을 차고 종점 쪽에 가보았더니 정말로 아프리카, 인도, 파키스탄 등지의 사람들이 가득 했다. 길에서 가방을 파는 보따리 장사들은 거의가 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경찰이 보이면 냅다 뛰는 모습을 보면서 이주민의 불안정한 사람의 자리는 전 세계가 모두 똑같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여기까지가 그리스에서 경험한 것이라면 한국에 와서 사흘 동안 겪은 두 번의 모임에서 느꼈던 생각들을 성서의 말씀과 함께 여러분과 나누려고 한다. 지난 목요일 저녁, 송종완이라는 사람의 10주기 추도식이 있었다. 이 분은 우리교회 초창기 교인이었는데, 복음신문이라는 기독교계통의 신문사에 있다가 해고를 당하고 재건대원과 함께 넝마주의가 모아 온 물건들을 정리해서 파는 그런 일을 하다가 미국에 이민 갔다가 암으로 죽었다. 그분이 죽었다는 것도 한참 후에 알았다. 그런데 이분이 죽은지 10주년이 되었다고 추도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것도 한국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죽었고, 그 가족도 다 죽었는데 추도식이라... 추도식에 가보니 옛날 우리 청암교회 교인이었던 사람들을 주축으로 그를 아는 사람들 한 30명 가량이 모여서 그에 얽힌 사연들을 나누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죽었을 때, 과연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이 추도식이 가능했던 것도 그를 각별하게 추모하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건대 대원이었으며 우리교회 교인이었다가 죽은 사람의 주선으로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된 현민철 목사였다. 현목사가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은 비록 청암교회가 재건대 막사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거리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는 그 재건대원들과 동료처럼 지냈다. 또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물에 빠져 위기를 당했는데 자기가 먼저 나가려고 하지 않고 현목사보고 나가라고 밀어서 보낸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잊지 못하는 현목사가 주위사람들을 독촉해서 추모식을 갖게 된 것이다.이 추도식에 참여하고 나서 나에게 떠오른 질문은 과연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추모할까? 아니면 잠시 애석해하다가 곧 잊어버릴까? 생각해보니 내가 죽었다고 안타까와 할, 가슴아파 할 사람을 만들어놓지 못햇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죽으면 그뿐이라는, 그래서 죽은 후의 일에 왜 연연해 하는가? 하는 생각을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죽은 후의 일에 집착하는 것과 나를 추모할만큼 사랑의 끈을 남긴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또 하나는 금요일 저녁 모임이었다. 선배되는 사람이 회고록을 내어 그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는데, 그 회고록을 발간하게 하고 모임을 주선한 사람은 그의 제자뻘인 두 명의 여성연구원이었다. 선배가 낸 기독교여성평화연구원에서 일하던 두 명의 연구원이 은퇴해서 집에 있는 선배를 재촉해서 글을 쓰게 하고 축하모임을 주선해서 그를 아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 모임에 가서도 느낀 것이 나는 과연 나를 위해 이렇게 해줄 사람이 있는가? “하는 물음을 묻게 되었는데,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이것저것 활동은 많이 벌였지만 딱 불어지게 인간과의 정, 인정의 씨앗을 뿌려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앞의 추도식 경우를 보아도 뒤의 회고록 축하모임을 보아도 많은 사람이 아니라 딱 한, 두 사람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런 한 두 명의 사람을 가졌는가? 오늘 우리가 읽은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쓴 편지다. 이 편지에서 그는 자기의 마지막을 지켜 줄 아들처럼 사랑하는 디모데를 속히 오라고 부른다. 유언처럼 이것저것 부탁을 하면서. 그 부탁 중에는 마가라는 청년을 데리고 오라는 것도 들어 있다. 자기가 섭섭하게 해서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그 마가라는 젊은이를.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를 보면 바울은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비록 처형을 당한 운명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고, 또 그가 사랑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인생의 겨울인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그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갈, 자기의 유지를 받들 수 있는 젊은 디모데 같은 사람이 있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대는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 오십시오.” 라고 절절히 쓴 편지를 이 늦가을에 보면서 나와 여러분이 겨울이 오기 전에 함석헌 선생의 시처럼 그런 사람갖는 은총을 준비하기 바란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한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