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터널을 지나며

한국소금 2019. 3. 29. 01:16


 

여성의 문제는 비단 가정이나 일반 사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성 차별이 정당화되고 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목사와 장로가 될 수 없는 교단들이 많다. 여자에게 안수를 안 주는 이류는 가지각색이다. 배부른 여자가 어떻게 단에 서느냐는 항변도 있다. 이런저런 인간적인 이유는 항변을 받으니까 성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 성서의 권위를 들여댄다. 그것도 종합적이 아니라, 여성에게 불리한 성구만 대면서. 또 교회에서 일하는 여전도사들의 봉금은 평균적으로 남자 교역자의 3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다. 그리고는 여교역자에서 소명감을 강조하며 총성을 요구한다. 여전도사가 기껏 교회를 개척해 키워놓으면 목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내쫓김을 당한다.

 

여신도회 전국연합회에서 근무할 때다. 한 목사님이 오셔서 하시는 확실히 한신 출신은 소명감이 없단다. 사연인즉 그 교회에서 여전도사를 구하는데 월급 10만원을 책정해 놓고 한신 졸업생을 구했더니 월급이 적다고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교회는 큰 교회였고 목사님 월급 기 십 만원에 차가 몇 대가 있는 교회였다. 같은 신학교 졸업한 남자 전도사는 14만원을 주면서 정규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여자라고 고작 10만원을 주다니...그래놓고는 오지 않으니까 소명감 운운한다. 목사에게 물었다. “그 여전도사가 남전도사 보다 선배인데 왜 남전도사 보다 원급을 적게 준다고 했느냐?” 대답은 간단했다. “여자라서!” 그래서 내가 비꼬듯이 발했다. “아니 목사님 여자라고 신학교 다닐 때 학비를 남자보다 적게 낸 것도 아닌데 왜 월급은 적게 줘요?“ 어불성설도 이쯤이면 금메달감이다. 결국 그 돈으로 성경학교 출신 여전도사 두 명을 쓰는 것을 보았다. 이런 식으로 목사들이 월급 조금 주어도 되는 전도사를 쓰다 보니 여교역자의 질은 점점 하락 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다. 왜 목사님들은 여자는 월급을 조금 주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월급을 적게 주면서 미안한 감을 갖기는커녕 소명감이 없다고 몰아붙이는 그 마음은 뭘까? 소명감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언제까지 여자들이 차별 대우에 묶여야 하나? 소명감 이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대우를 받느니 차라리 소명감이 없다고 욕을 먹어도 좋으니 정당하게 대접받는 길을 책하고 싶다.

 

어려서부터 나의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여자는 목사가 못 된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고 자랐다. 다 죽는다고 포기한 병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을 때 주위에서 나는 이 다음에 꼭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도 여러 번의 기적과 같은 내 삶을 통해서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라! 신학교에 들어 가보니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의 좌절감과 분노를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여목사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기장여신도회 전국연합회회에 내 발로 찾아다니면서 그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74년에 여목사제도가 통과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그런데 이렇게 여목사제가 통과되었는데도 여자가 목사 되기는 여전히 바늘구명이이다. 목사가 되려면 교회에서 청빙을 받아야 하는데 도무지 여자라고 청빙을 하려 들지 않는다. 남자들은 남자대로, 여자들은 여자대로 반대한다. 공동체 정신을 부르짖는 교회에서 여성 문제만은 별개로 남는다. 유교적 문화를 배척하는 기독교가 어찌 그렇게 여성 문제에 관해서만은 철저히 연합하는지 모를 일이다.

여자들은 유교의 가부장 문화와 기독교의 가부장 신학에 세뇌되어 여장로나 여목사 모시는 것을 찬성하는 데는 소극적이고 반개하는 데는 적극적이다. 남자들은 남자들 대로 여자가 여자를 반대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냐고 핑계를 댄다. 여자들이 문제니 여자들을 먼저 의식화시키란다. 그러면서 설교단에서 여자는 가정에서 아이 잘 키우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여성의 본분이요, 창조질서라고 가르친다. 매우 스마트하기로 알려진 어떤 목사님은 일년에 한번 씩 드리는 여신도회 주일 설교에서 의례 현명한 아내라는 제목으로 잠언 31장에 의거해서 설교를 한다. 그 잠언 31장의 내용은 현명한 아내란 아침부터 밤 늦게가지 알해서 집안 식구 먹여 살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재산도 불리고 그 대가로 남편을 성문에서 인사받게 한다. 그래서 남편이 당신 같은 여자는 없소!”하고 칭찬하는 내용이다. 이런 여자를 어진 아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문제가 많은 본문인데 이걸 본보기로 들고 있으니 여자들은 그런 여성만이 신앙 있는 여자들이 지녀야 할 여성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구절에는 아내가 손수 거둔 결실은 아내에게 돌리고 아내가 이룬 공로가 성문 어귀 광장에서 인정받게 하라라는 말로 끝맺고 있는데 이 결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설교가 이런 식으로 선포되니 교회에서 성차별이 해소되기가 어렵다.

 

독일 유학시절에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에 관한 성서연구를 맡게 되었다. 위의 본문을 텍스트로 정해 교회의 성차별 현상에 대해 정의와 평화, 창조의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독일에서 신학공부하거나 교회나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목회자들과 그 가족, 독일 선교사들이었다. 발제가 끝나자 한 목사님이 물었다. 질문 요지는 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너는 불행하다는 의식을 심어주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흑인해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절대 찬성이란다. “그렇다면 흑인이 인종이라는 것 때문에 차별받는 것과 여성이 여성이라는 성 때문에 차별받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고 물었다. 그랬더니 흑인은 불행하게 살고 있지만 여자가 왜 불행하냐?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다.”라고 공박을 해왔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여자에게 어떻게 구원의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 그런 식으로 복종을 요구하는 하나님이라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아니오. 내 하나님은 여자도 남자도 똑같이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고 선포하는 분이오.”하고 반박했다. 나보고 다분히 이단적인 요소가 있단다. 그래서 여성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한다고 해서 이단이라면 난 기꺼이 그 이단 행렬에 서겠소!”하고 선언하고 논쟁을 끝냈다.

 

요즈음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광주에 내려간다. 광주에 가면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기다린다. 여성의 눈으로 하는 신학공부를 위해 완도, 해남 등 각지에서 여교역자들이 모인다. 이들과 함께 성서를 연구하고 교회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 매우 신난다. 이들은 정규 신학대학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내가 한신 출신이라고 뻐기던 교만을 회개한다. 우리는 단지 같은 길을 걷는 교역자로서 여성 동지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이들이 여자이기에 교회에서 당하는 아픔, 교인들과 남성 목회자와의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거기다 비정규신학 출신이라 당하는 서러움을 토로할 때 내 마음은 분노와 슬픔과 죄책감으로 아프다. 이런 아픔들을 가지고 성서를 새롭게 읽다보니 하나님이 어머니처럼 때듯한 분으로 다가온다. 여인들을 긍정하시고 품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진정 구원자로 받아들여진다. 한 과정이 끝나고 평가하는 자이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제는 성경에서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반갑고 예수의 이야기가 신나게 다가온다고.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빛으로 향하는 느낌이라고...

평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기차가 터널을 지나게 도자 나는 평가회 때의 그 자매 여교역자의 말을 떠올렸다. 어둡고 긴 터널, 내가 탄 기독교라는 기차도 언젠가는 불평등의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평등의 빛을 향해 나가겠지.!

 

* 1993. 이 글은 아시아여성신학교육원의 52주 여성학 과정에서 논문대신 발표한 나의 이야기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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