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들의 사색터

로뎀나무 아래

한국소금 2021. 1. 19. 16:05

로뎀나무 아래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예언자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 있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다. 오늘 성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까지 오게 된 배경을 알아야 제대로 본문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장면의 앞 이야기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예언자로 부름을 받고 활동을 했던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예언자라면 앞 일을 미라 내다보고 그 일을 알려주는 사람을 생각하지만, 성서에서 예언자란 그런 점쟁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사람이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앞일을 전하는 예언의 말씀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지시를 전하는 교훈의 말씀일 수도 있다. 성서에는 여러 예언자가 나오는데 학자들은 이들은 문서전 예언자와 문서 후 예언자로 시기를 구분한다. 문서전 예언자란 자기 이름으로 된 문서를 남기기 않은 사람들로 나단, 엘리야, 엘리사, 때로는 모세도 이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문서를 남긴 문서예언자들은 4명의 대예언자와 12명의 소예언자들이 있다. 대예언자란 비교적 많은 분량의 기록이 있는 사람들이고, 소예언자는 짧은 예언기록을 남긴 사람들이다.

엘리야는 문서 전 예언가로서 본격적인 예언활동을 시작한 사람이다. 엘리야는 남과 북으로 갈리지고 북왕국에서 오므리 왕조가 일어나 이스라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 오므리왕조의 아합왕 시대에 예언활동을 하였던 예언자다. 엘리야의 활동 기록은 열왕기 상 16장에서 시작하여 엘리야의 승천이야기에 이르는 열왕기하 2장에까지 기록되어 있다.

예언자 활동을 하면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첫째는 가믐 예고에 따른 까마귀 사건이다. 당시 아합왕은 정략적으로 강대국 시돈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그 이세벨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제단을 세웠다. 이에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옐리야는 아합왕에게 나아가 이스라엘에 몇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을 알린다. 예언을 마친 엘리야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요단간 동쪽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서 숨어 지내면서 까마귀들이 날라다주는 빵과 고기를 먹으로 지내고, 시냇가의 물을 마시며 지냈다. 까마귀가 날라다 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엘리야 예언자는 무엇을 느꼈을까?

두번째는 사르밧에 있는 과부의 집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스라엘 전역이 가믐에 들어 식량과 물이 떨어지자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가지고 자식과 죽기 전 빵을 만들어 먹으려고 하였다. 이때 엘리야가 하나님의 지시도 이 집에 들어가 그 마지막 빵을 대접하도록 했다. 이 마지막으로 손을 대접한 빵이 기적을 일으켜 밀가루 항아리와 기름항아리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경험했다. 마침내는 사르밧 과부의 외아들이 병이 들어 죽었다. 이에 엘리야가 하나님께 과부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한 결과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였다. 이런 기적을 보고서 사르밧과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과 엘리야가 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언하게 되었다. 이런 기적을 체험하며 엘리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번 째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예언자들과 갈렐산에서 대결을 버리는 일이다. 어떤 신이 참된 신이냐를 두고 엘리야 혼자와 바알예언자 450명과 아세라 예언자 400명이 단의 제물을 태우는 대결을 벌인다. 여기서 바알예언자들은 제물을 태우지 못하고 엘리야가 주의 단을 쌓아서 하나님께 이 일을 통해 이스라엘 박성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고 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거기에 얹힌 제물을 불태웠다. 온 백성이 이를 보고 바알이 가짜고 하나님이 진실한 신임을 고백하게 되고 바알신을 섬기는 예언자들을 모두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 엘리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늘 일은 이런 일련의 과정 후에 일어난 일이다. 아합왕으로부터 자초지종의 예기를 들은 아홥왕의 부인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세 차례나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엘리야! 그 엘리야라면 이세벨의 명령 앞에서 어떻게 대응했을까? 담대하게 950명의 바알 예언자와 싸워 이긴 엘리야! 그 엘리야는 두려워서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 살려라 하고 브엘세바 광야 길로 들어가니 로뎀나무 한 구루가 보였다. 나 살려라 하고 며칠을 달렸으니 힘이 들어 그 로뎀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았다. 주저앉아서 하나님께 죽기를 간청하였다. 이제 할만큼 했으니, 더 바랄 것도 없으니 내 목숨을 거두어가주십시요. 하고 하소연 하다 누워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누군가 깨워서 보니 모라 맡에 돌에 갖구워낸 빵과 물 한변이 있었다. 어걸 먹고 엘리야는 다시 잠이 들었다. 이에 또 누군가 깨우는데 성서는 이를 천사가 깨웠다고 증언한다. 천사가 먹을 것을 주면서 갈길이 머니 먹고 힘을 내 일어나라고 한다. 엘리야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주이 천사가 이르는 대로 40일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으로 들어갔다. 이 호렙산은 모세가 이집트에서 도망쳐서 미디안 광야생활을 할 때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난 거룩한 곳이었다. 이 호렙산에서 모세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백성들을 인도해 내눈 지도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그러기에 호렙산은 하나님께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는 거룩한 곳의 상징이다. 엘리야도 모세처럼 이 호렙산에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에게 기름 붓는 일, 엘리사를 자기의 후계자로 세우는 사명을 받는다. 하나님은 이런 사명과 함께 엘리야 너 혼자 고군분투 하는 것이 아니라 바알에게 무릅꿇지 않은 칠천명을 남겨놓았음을 일러준다. 혼자가 아니라 또 다른 동지들이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신다.

 

이제까지가 오늘 본문을 파악하는 줄거리다. 여기서나는 로뎀나무 아래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로뎀나무는 엘리야에게 어떤 곳이었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엘리야에게 있어 로뎀나무 아래는 엄청남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한 후 오히려 적대 세력에게 쫒겨 삶의 희망을 잃은 채 죽기만을 바랐던 절망의 장소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절망으로 주저앉은 그곳에서,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그곳에서, 혼자 외롭게 고독조차 느낄 겨를이 없는 그곳을 먹을 것을 주시어 삶을 소생케 하시고 힘을 내어 새 길을 가라고 이끄신다. 절망과 실의의 로뎀나무 이래는 이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의 장소로 변한다. 죽음에서 삶으로, 절망에서 희망을 주는 놀라운 축복의 장소가 되었다. 엘리야가 힘을 얻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새 길 호렙산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세 길을 갈 수 있는 함을 얻는 그런 은총의 장소가 되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엘리야처럼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다. 지금 내가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지난 온 삶을 돌이켜보면 기적과 같은 은총을 받고 산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생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찰라의 위기에 부딪치게 되면 과거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고 이끌어주셨던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잊어버리고 절망에 빠지고 차리리 죽어버렸으면, 죽는게 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을 보고도 엘리야가 갔던 그 도피의 자리, 절망의 자리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진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런 자리, 이 절망의 자리 로뎀나무 아래가 바로 우리에게 소생의 자리, 우리가 다시 하나님에게서 새로운 힘을 받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그런 은총의 자리가 됨을 일깨우주고 있다. 로뎀자무 아래는 엘리야에게 그랬던 것처럼 절망의 자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자리로 변할 수 있다. 우리가 힘들어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희망도 없고 절망스러울 때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은총의 자리임을 알자. 엘리야처럼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느낄 때, 이제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하나님도 없는 것 같은 그런 암담한 처지에 놓일 때, 엘리야와 같은 상황에 처한 것 같을 때 그 때 바로 그 자리가 우리를 찾아오셔서 먹을 것을 주시고 힘을 나게 하는 은총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임을 기억하자. 우리가 실의에 빠져, 지치고 암담한 마음으로 찾아간 그 로뎀나무 밑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의 자리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깨우침이다. 만일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그냥 먹고 소생하기만 하고 새 길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었고, 후계자도 구하지 못했고, 비전도 없이 그대로 삶이 묻혀버렸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 호렙산으로 나아가서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았다. 아직도 7천명이 남아있다는 비전과 함께.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로뎀나무 아래에 있을 상황에 처하거든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새로운 사명을 맡기시려는 길임을 깨닫고 힘을 내자. 견디다 못해 쓰러진 바로 그 로뎀나무 아래가 바로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가게 하시는 은총의 자리다. 로뎀나무 아래를 불행의 자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 은총의 자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축복의 길이 열린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을 세라는 오늘의 신앙시도 같은 맥락이다. 로뎀나무 아래를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희망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신앙의 길을 가자.

2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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