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과부의 기름병
열왕기 17: 8-17, 왕하 4: 1-7
오늘 우리는 두 과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하나는 예언자 엘리아와 얽힌 과부의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와 얽힌 또 다른 과부의 이야기다.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두 이야기 모두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 기름병이 기적의 매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나 씩 정리해보자. 예언자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앞으로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가뭄을 예언한다. 공교롭게도 가뭄을 예언한 엘리야 자신이 그 가뭄의 피해를 받게 된다. 엘리야가 가는 곳 역시 가뭄의 피해로 마실 물이 없어져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인도로 사르밧이라는 곳에 가서 한 과부 여인을 만나게 된다. 엘리야는 마침 땔감을 줍고 있던 여인에게 마실 물과 먹을 것을 요구한다. 이런 엘리야의 청에 여인은 이렇게 답한다. “ 나에게는 지금 밀가루 한 줌과 그 밀가루 반죽에 넣을 기름이 몇 방을 있을 따름입니다. 이 땔감을 가지고 가서 죽기 전에 내 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먹으려고 합니다.” 여인은 아들과의 글자그대로 죽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하기 위해 땔감을 줍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여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막무가내로 그럼 그 빵을 만들어서 자기에게 먼저 주고 그 다음에 아들과 그 여인을 위한 빵을 구우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당신 집 뒤주의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이면서. 여인은 엘리야가 말하는 대로 했고, 그 결과 여인의 집 뒤주에는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열왕기 상 17장에 나오는 엘리야와 사르밧 여인의 이야기고 이 작은 기적 이야기는 여인의 아들이 죽게 되자 이 죽은 아들을 살리는 또 하나의 기적이야기로 진전한다. 어떻게 이 여인은 마지막 남은 것을 엘리야에게 줄 수 있었을까?
기름병과 얽힌 또 하나의 여인 이야기는 열왕기 하4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여인 역시 과부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앞의 여인에게는 아들이 하나였는데 이 여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만난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가 찾아간 데 반해서 이 여인은 여인 스스로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에게 찾아온다. 찾아 와서 자기 두 아들이 노예로 잡혀가게 되었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뒷이야기를 참조하면 남편이 죽기 전에 빚을 진 것이 있었던 듯하다. 엘리사가 집 안에 무엇이 남아있었느냐고 묻자 여인은 기름 한 병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이웃 사람들에게 빈 그릇을 빌려오라고 한다. 여인은 시키는 대로 두 아들과 함께 이웃에게 빌릴 수 있는 만큼의 빈 그릇을 빌려 왔고, 이 빈 그릇에 모두 기름이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모자가 걱정 없이 살게 되었다는 해피엔딩의 결말이다.
이 두 여인의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각각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적 이야기로 읽혀지고 소개되었고, 예언자의 말을 잘 들으면, 즉 주의 종에게 잘하면 복을 받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로 설교되었다. 이렇게 예언자를 중심인물로만 놓고 본문을 읽으면 이 본문은 예언자의 무용담이나 예언자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전형으로 읽혀지게 된다. 그러나 이 본문을 여인의 입장에서 읽으면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첫째로 사르밧 여인을 살펴보자. 밀가루와 기름 몇 방울은 여인에게 마지막 남은 것이었다. 그 여인은 매우 비장하게 말한다. “저와 제 아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으려고 한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고 죽기 위해, 죽음에 앞서 결별을 위한 의식처럼 먹으려 하는 마지막 음식이다. 이 음식을 여인은 엘리아에게 먼저 주었다. 이스라엘의 풍습은 나그네가 오면 대접을 해야 하고 나그네가 부탁을 하면 거절을 해서는 안 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여인은 그 풍습을 따랐을 뿐이라고만 보기에는 이를 넘어서는 대단한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그것이 무엇일까? 여인은 죽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을 포기하고 엘리야에게 주었다. 바로 그 순간에 기적이 이러나게 된 것이다. 마지막 순간, 더 이상 미련 갖지 않고 내 것이기를 포기하고 내어주는 그 순간에, 바로 그곳에서 살림을 위한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기에 기적을 행한 이는 바로 마지막 것을 내어 준 여인이다.
두 번 째 오늘 본문의 이름 없는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빌려 온 그릇마다 기름이 가득 자는, 현실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기적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세 자기 점을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이 기적의 이야기는 비록 엘리사가 지시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이름 없는 여인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본문에 나타난 여인은 매우 적극적이다. 물론 자식이 종으로 잡혀가는 마당에 잠잠히 있을 부모가 어디 있으리오 마는, 두 아들을 지키려는 용기와 신념을 갖고 엘리사를 찾아간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웃에서 빈 그릇을 빌려오라는 엘리사의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지시를 수동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한다. 하나님의 기적은 사람을 통해 이러나지만, 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 기적은 여인 혼자 일으킨 것이 아니라 두 아들과 함께 이루었다는 것이다. 아들들은 어머니가 이웃에 가서 그릇을 빌려오라고 하자 어머니의 말씀대로 이웃에 가서 그릇을 빌려왔다. 문제의 해결은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협력해야 이루어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울 때 그 형편에 공감하는 사람들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
셋째는 과부인 이 여인에게 그릇을 빌려 준 이웃들이 함께 해서 일으킨 기적이다. 여인의 아들들이 어머니의 부탁 대로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러 오자 거절하지 않고 그릇을 빌려준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돌보고, 이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말라고 이스라엘에 지시한 것은 그만큼 생활이 어려웠고 또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이웃들은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도리에 따라 이 과부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고 그 결과 기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웃의 요청에 응해 도움을 주는 이 행위야 말로 감사의 최고절정이기도 하다.
오늘 본문은 여기서 끝난다. 나는 그 뒤의 이야기를 더욱 아름답게 맺고 싶다. 동네에서 그릇을 빌린 이 과부댁이 그릇을 빈 그릇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웃은 기름이 담긴 그릇을 돌려받으면서 과부 집에서 일어나 기적을 듣게 되었을 때 무엇을 느꼈을까? 그 기적에 자기들 집에서 빌려준 그릇이 한몫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보람과 감사를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불과 한 과부 집의 작은 기름병 한 병으로 시작된 이 기적은 결과적으로 그 마을 전체에 감사와 기쁨을 가져다주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가 집적 계시를 내리고 기적을 향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주변의 사람들을 활용하여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다. 이 여인은 자신에게 물질적 풍요를 안겨준 그 그릇들을 보면서, 이웃에게 빌려온 그릇의 수만큼 가득 채워진 기름만큼이나 이웃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그 감사한 마음을 이웃에게 기름을 나눔으로 표시하고 이를 통해서 공동체 전체가 기쁨이 넘치게 되었을 것이다. 진정한 감사란 이런 것이다.
감사란 눈에 보이는 결과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얼머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느냐에 따라도 달라진다. 감사란 혼자 조용히 할 때도 의미가 있지만 여럿이 함께 나누면 그 기쁨이 배가 된다. 그러기에 구약성서에서는 감사와 기쁨의 노래를 혼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이 같이 모여 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여럿이 모여 감사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감사가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한 결과에서 생긴 것이 고백될 때 그곳에는 기쁨이 넘치게 된다. 오늘 두 본문에 나오는 과부의 기름병을 통해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자기 것을 나누고 그로 인해서 기적을 창조해 낸 사르밧 여인의 신앙, 이웃과 함께 기적을 이끌어 낸 과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공동체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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