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일을 하다 낙심하지 말자
본문: 갈라디아서 6장 1-10절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권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서로 짐을 져 주자”라는 내용으로 한 권고의 말씀이다. 갈라디아서는 이방인 기독교인들과 모세 율법에 대한 논쟁, 특히 할례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당시 초대교회에서 이방인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된 이방인 교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조건으로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아야 하느냐, 받지 않아도 되느냐 하는 논쟁이 있었는데 바울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 근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할례 등 율법의 준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 다시 말해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의해서라고 설득하고 있다.
갈라디아서에서만 아니라 바울이 아시아교회에 쓴 편지의 핵심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3대 주장,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총으로만, 하는 슬로건도 바울 사상에서 온 것이다. 바울의 이 말은 자칫 그리스도인들이 행위는 아무렇게 해도 믿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신앙으로 빠질 수 있는데, 실제로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오직 믿음으로만‘이라는 말에 치우쳐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를 져버리고 있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그런데 사도 바울은 믿음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징표로 서로 사랑하며 섬김의 삶을 살라고 권고한다. 오늘의 본문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자유하게 하신 것은 육체의 욕막을 따라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육체적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은 성령을 거슬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랑과 기쁨, 평화와 인내, 친절과 선함, 신실과 온유, 그리고 절제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으로 삶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간곡히 권유하고 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서로 남의 짐을 져주는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한다.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하는데, 자기 몫만 지지 말고 어려운 자의 짐을 같이 져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자기 몫의 짐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선한 일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난관에 봉착할 때가 있는데, 그렇더라도 낙심하지 말라, 지쳐서 넘어지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에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기회가 될 때마다 선한 일을 하라고 격려한다.
최근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 여러분이 연일 언론에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윤미향에 대한 비리를 터뜨리며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을 매도하는 뉴스를 보고 있다. 윤미향 이사장이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후보가 된 후 일본군‘위안부’이셨던 이용수 할머님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현 사태를 보면서 많은 의혹과 우려, 염려가 빗발치고 있다. 위안부 운동에 폭탄을 터뜨한 할머니께서 기자회견에서 제기한 문제는 세 가지다. 왜 모금해서 할머니들에게 나누지 않느냐, 수요집회를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반일감정을 심어주는 수요집회 하지 말라, 운동방식을 할머니 지원으로 바꾸어라, 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모금해서 왜 할머니들에게 안주느냐 하는 문제는 정대협이나 정의기억연대를 할머니 지원단체와 운동단체를 혼동해서 빚어진 문제다. 정대협의 활동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할머니들 생활을 위해 매달 300만원 가까이 드리고 있다. 정대협은 이렇게 모금을 해서 할머니들에게 돈을 지원하는 단체가 아니라 할머니들의 복지를 위한 제도 마련을 정부에게 촉구해서 이를 시행토록 운동을 하는 단체다. 정부가 ‘위안부’생활지원제도를 만들기 전에는 항머니들이 어렵기 때문에 모금을 해서 지원하기도 하였다. 일본에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을 국내외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들이 많은 후원금이 들어오는데 대부분 목적에 쓰이는 지정기탁이라 다른 항목에 쓸 수가 없다. 지정하지 않은 후원금은 운동을 하는 사업비로 쓰이고 있다.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이용해서 극우와 친일세력들이 차제에 수요집회도 하지 말고 소녀상도 철수하라고 주장한다. 2015 한일합의는 정당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할머니들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가 모금해서 할머니들에게 드리지 않고 다른 곳에 썼으니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재정이 투명하지 않다며 부도덕한 단체로 몰고 가는 것이다. 정의연에서 외부 감사를 받아 투명성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9개 친일 단체들이 정의연을 고소하자 검찰이 전광석화처럼 정의연 사무실과 할머님이 사시고 계시는 쉼터를 쳐들어와 압수 수색을 하였다. 그 많은 미심한 건들은 수사를 미루면서 왜 이 문제는 그렇게 빨리 처리할까? 재정문제가 잘못되었으면 그 부분에 관련자들이 책임을 지면 되지만, 이 문제는 그것을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30년 동안의 일본군‘위안부’운동이 폄훼됨은 물론, 운동의 당위성이 설 자리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윤미향이 왜 국회의원이 되려하냐고? 국회에 전문가로서 운동하러 간 것이다. 윤미향 대표를 국회에 보내면 어떠냐는 물음이 왔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다. 운동이 약화되지 않을까?, 다음으로 든 생각은 지금은 정의연이 자리를 잡아 운동은 계속 이어갈 수 있겠으니 정치 쪽에서 운동을 줄기차게 해 온 당사자가 일본군성노예제 관련 입법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정대협 초창기부터 주창해 온 6대 과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겠다, 윤미향을 국회로 파송하자, 이런 마음으로 찬성을 하였다.
윤미향은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밤낮으로 어떻게 하면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를 드높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본에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자기를 던진 사람이다. 이게 내가 30년 가까이 운동을 함께하며 지켜 본 윤미향을 국회로 파송하는 이유였다.
일본군‘위안부’ 운동과 나
내가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1991년 독일에서 돌아온 이후부터다. 한국에 와보니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결성되어 있었다. 이해 8월 14일 김학순할머니가 내가 위안부였다는 첫 증언을 한 이후 할머니들이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 1992년 1월 둘째 수요일에 일본의 미야자와 총리가 한국 국회를 방문하게 된 것을 계기로 수요시위를 시작했다. 진상규명, 사죄, 배상, 교과서에 수록해서 가르치기, 책임자처벌, 일본군‘위안부’ 기림비 건립 등 6개 사하을 요구하면서. 이해 8월에 처움으로 아시아 피해자들을 초청해 아시아연대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실무 총괄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뛰어들게 되었다. 1996년부터 실행위원으로, 2007년부터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근 30년을 이 문제를 위해 나름 열심히 뛰었는데, 오늘의 사태에 이르니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사실 나를 비롯해서 정대협을 만들고 수요집회를 시작한 이들은 이렇게 수요집회를 오래 할지 몰랐고, 이 운동이 이토록 오래갈지 몰랐다. 길어야 2년이면 할머니라는 증인이 있으니 일본이 문제해결에 나서서 사죄하고 배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제국주의의 실상, 일본 국수주의의 실상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해서 수요집회가 1440차까지 오게 되었고, 2015 한일합의라는 변수를 맞아 운동을 다 가열차게 해야만 했다. 그런데 1월에도 수요집회에 참석해서 운동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기함을 토하셔서 나를 자극시겼던 이용수 할머니가 느닺없는 기자회견으로 폭탄을 던진 후 지금 일본군‘위안부’ 운동은 회오리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까?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뜻있는 사람들이 정의연 문제로 관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서로 정의연이 진 짐을 함께 져야 할 때다. 나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많은 사람들이 you raise up me 노래를 함께 부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나에게 힘을 준 오늘의 본문
윤미향과 정의연 문제로 사방에서 욱여쌈을 당하면서 오늘의 본문을 읽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대는 배경이 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고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하는 일을 열심히 했지만 많은 박해를 받았다. 그가 고린도후서 11:21-29절에 적은 대로 수고도 더 많이 했고, 감옥살이도 여러 번 했고, 매도 더 많이 맞았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다. 유대 사람에게서 40에서 하나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칙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피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다. 동족과 이방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했고,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에게 위험을 당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밤새우기도 여러 번이었고, 목마름과 굶주림, 헐벗는 고통을 당했다. 여기에 교회에 대한 염려로 애태웠다. 이 모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당한 고초다. 이렇게 수많은 고초를 당해야 했던 사도 바울은 이런 일련의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한 길을 깨우치게 된다. 바로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기회가 있는 동안에 선한 일을 하라고 권면한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읽으면서 새로운 각오가 생겼다. 내가 정대협으로 출발해서 정의연으로 이어지는 이 운동에 참여한 것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서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을 살리고,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를 되새겨 다시는 전쟁으로 인한 여성폭력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이루기 위함이다. 정의로운 역사, 평화의 세상을 위한 좋은 뜻으로 운동에 참여한 것은 분명 선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이 일에 폭탄이 터졌다고 낙심하거나 주저않는 것은 성령에 이끌림에 의한 삶이 아니다. 불어닥친 위기를 이겨내고 운동을 재정비하고 나가다 보면 열매를 거둘 날이 있지 않겠는가? 언젠가 그 날이 오겠지...하는 믿음과 희망이 생겼다.
낙심하지 말고 기회 있는 동안에 선한 일을 하자
이제까지 여러분은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정의기억연대 사태와 관련한 나의 고백을 들었다. 나는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때가 이르면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하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내 믿음으로 삼고 나아갈 것이다. 여러분도 사도 바울의 권면을 신앙지침으로 삼고 매일을 살았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삶에도 선한 일이라고 시작했는데, 걸림돌이 생기고, 건너야 할 강이 생기고 넘어야 할 산이 생길 것이다. 때로는 어찌 하기 힘든 폭풍우 속에 놓이기도 하고, 회오리 한 복판으로 들어갈 때가 생길 것이다. 이럴 때 사도 바울의 권면을 기억하자.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거나 넘어지지 말자. 그러다 보면 열매를 거둘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있는 동안에 선한 일을 하자.
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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