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신학

결혼예식에 사용되는 신약성서에 대한 단상

한국소금 2018. 2. 16. 15:43

여자는 복종하고 남자는 사랑한다?

-결혼예식에 사용되는 신약성서에 대한 단상

 

한국염

 

나의 결혼식 이야기

 

결혼할 당시 우리 가정만은 민주가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입장식부터 평등하게 하겠다고 마음먹고 들러리를 앞 세워 입장하였다. 처음에는 집안에 남자가 없으니 평소 내가 네 아범이다하는 농담과 함께 먹을 것을 곧잘 사주시던 안병무 교수님의 손을 잡고 들어가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문득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만 누구의 손에 의지하고 결혼식장에 들어가야 하는가? 남자는 혼자 당당하게 들어가는데....신부가 아버지나 오빠의 손을 잡고 들어가 아버지가 남편에게 넘겨주는 것이 꼭 물건을 인계해주는 것 같이 기분이 언짢았다. 양쪽 부모가 신랑신부 모두를 데리고 들어오는 거라면 몰라도..그래서 안교수님에게 내 뜻을 전했더니 그래 알았다. 이 잘난 계집애야.“ 하셨다. 우리가 결혼한 해는 바로 세계여성의 해였고 나는 그 여성의 해에 걸맞는 결혼식을 올린 셈이다.

사실 결혼식에 혼자 입장했다는 사실 보다도 내가 더 신경 썼던 부분은 주례사였다. 기독교식으로 하는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의례 읽혀지는 성구는 에베소서 522절 이하의 아내는 남편섬기기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는 본문이었다. 이 본문은 21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시오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22절부터 읽으면서 주례사는 주로 아내들이여...“부터 시작되곤 한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인 것처럼 아내의 머리는 남자니까 가장인 남편을 그리스도에게 하듯 복종하고 섬기라고 강조한다. 물론 그 다음에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남편에 대한 권면이 이어진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위계질서를 전제로 한 함정같이 느껴져 영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섬기고 복종하든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 한쪽은 사랑하고 다른 쪽은 복종하고 섬긴다는 관계는 위계적 가부장 질서에서나 가능한 얘기였다.

내 결혼식장에서 이런 성차별적 성서가 읽혀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나를 잘 알고 계시는 문동환박사님은 요한복음 2장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셔서 축하해주신 기사를 읽으시면서 우리 결혼이 예수님이 축복해 주시는 자리임을 선포함으로 주례를 시작하였다. 주례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중심으로 서로 사랑하며 민주적인 가정을 이루도록 당부하셨다.

내가 예베소서 522절 이하에 관심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다. 교회학교 선생이 결혼을 하였는데 이 선생이 부부싸움만 하면 우리 어머니를 찾아왔다. 싸움이 크게 되는 이유인즉 남편이 말문이 막히면 바로 이 성구를 들이대며 닦달을 해댄다고 한다.

성경에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이 하라고 했는데 여편네가 남편 말을 듣지 왠 말이 많으냐?”

그러다가 급기야는 주먹질까지 오가는 모양인데 남편에게 매를 맞으면서 부인이 성경에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게 아내 사랑이냐?“고 대들면 자기는 아내를 끔찍이 사랑한단다.

김선생이 이런 하소연을 하면 김선생을 어루만지면서 위로랍시고 전도사 출신 우리 어머니 말씀이 기가 막힌다.

김선생, 못마땅한 점이 있더라도 참고 남편에게 복종해야지 어쩌겠어. 사도 바울선생님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랬는데 믿는 사람이 성경말씀대로 해야지...”

이런 모습을 보며 참 사람 죽이는 성경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랬는데 어른이 되어 결혼식에 참석해보니 번번이 에베소서 5장의 말씀이 선포되는 게 아니가? 대부분의 경우 주례사로 전해지는데 아예 이 말씀을 근거로 결혼서약을 시키는 주례도 있다. 권면의 말씀 정도도 아니고 남편에게 복종을 서약하는 신부 모습을 보면 으스스해진다. 참고로 예베소서 522절에 근거한 결혼서약을 보자.

신랑 xxx, 그대가 000양을 아내로 맞이하는 이 자리에서부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로서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위로하고, 아내를 보호하며, 남편된 자의 책임을 다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서약합니까?”

신부 000, 그대가 xxx군을 남편으로 맞이하는 이 자리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는 신자로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을 위로하고, 남편에게 순종하여 아내된 자의 도리를 다하기로 하나님 앞과 여러 어른들 앞에서 엄숙히 서약합니까?(K목사의 예식과 설교,p.47)

남편은 보호하는 자로, 아내는 순종하는 자로 규정하고 남편의 보호를 받으면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아내의 도리로 선포되는 주례사, 이런 가부장적 질서에 따라 살겠다고 서약을 시키는 결혼식, 이런 결혼식을 통해 태어나는 가정은 어떤 질서를 이룰까?

혼인예식에 사용되는 신약의 성구들

 

그렇다고 모든 결혼식에 에배소서 5장의 훈계가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발생된 교회예식서에 의하면 다음 세 가지 본문들이 주종을 이룬다.

첫째로 마태복음 194-6절이나 마가복음 101-12절이다.

창조주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을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이 성구에 따른 주례사는 혼인이한 하나님께서 정한 것이라는 혼인의 신성함을 강조하면서 붑부는 하나님이 짝지원준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하거나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가정을 이루었으므로 이 신성한 결합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침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결혼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둘째는 고린도전서 13장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이 성구는 모는 예식서에서 다루고 있다. 이 성구는 가정이란 사랄을 기반으로 해야 함과 믿음과 희망 사랑의 가정을 이루도록 하라는 것이 권면의 내용이다.

이외에도 간혹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기독교가정생활 모델로 인용되기도 하고 요한1416-21절의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쫒는다...”는 구절을 통해서 서로 이해하고 더 큰 사랑으로 성숙한 가정을 만들라거나 빌립보 21-2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고 한 마음이 되어 나의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시오.”를 통해 두 사람이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 양뷰허고 희생하고 인내하라는 권면을 하기도 한다.

결혼예식서에 나타난 이런 성구들은 하나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들이 분명하니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앞에서 이야기 한 에베소서 522절 이하의 성구가 모든 교단에서 발행한 예식서에 결혼예식의 모범으로 제시되어 있고, 많은 결혼식에서 이 본문이 결혼식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부장적 결혼질서를 강화하는 에베소서 521-33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이신 여러분, 주님께 순종하는 것 같이,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몸인 교회의 구주이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 같이, 아내들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이신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내주신 것 같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각각 자기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중하십시오.“

 

기독교가정규례 하나의 모범처럼 되어 있는 이 본문은 결혼주례사와 서약서를 통해 기독교가정의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이 본문을 갖고 다음과 같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을 강조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의 원리를 그리스도가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남편과 아내의 행복한 가정을 교회에 세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교회는 신령한 가정이요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교회를 통하여 가정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허물이나 흠이 없도록 영광스런 존재로 세워주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예수님 대하듯 해야 합니다. 아내된 사람은 남편을 왕처럼 받드십시오. 그러면 자기는 왕비처럼 됩니다...(교회 목사 목사의 결혼주례사(여기 언급된 본문에 대한 설교분석 p.86.기독교여성평화연구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내가 선한 남편의 뜻을 어기고 매사에 원망하고 불순종하면 가정에 위기가 닥칩니다....남편의 사랑을 확인할수록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남편이 사랑한다고 해서 방자하게 행하는 아내는 끝내 버림받습니다...(교회 목사의 예수와 우리의 관계, 설교분석.p.87)

 

"오늘 말씀은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요즈음 같은 시대에 이런 말은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여성은 복종이라는 말이 굴욕적이라며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등이란 인격 면, 능력 면에서 다 같이 소중하다는 말이지 생리 면에서 똑같다는 말이 아닙니다....평등하다고 해서 손과 발이 역할을 바꾸거나 똑같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정의 머리는 남편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처럼 가정의 머리는 남편이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피를 흘리신 것 같이 남편도 이와 같은 사랑으로 아내를 대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랑과 복종의 관계없이는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에에 복종만 강조한다면 독제적인 가정이 될 것이요, ...남편과 아내는 동등한 인격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듯 서로를 대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한국기독교장로회 결혼예식 설교문에서).”

 

이 예식문이 다른 설교문과 그나마 다른 것은 막상 남편이 아내의 머리니까 복종하라고 강조해 놓고는 남편과 아내는 평등한 인격을 가졌다고 살을 붙인 것이다. 마치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여자는 잠잠하라.”해 놓고는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다 하나입니다라고 수정을 하듯이. 아내의 복종만 강조하다보니 오늘날의 상황과 기독교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수정을 가한 듯하다. 앞의 설교무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발전했음을 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본문 설교의 가부장성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이 본문을 사용하는 한 여전히 결혼의 가부장적 질서는 남게 된다. 왜냐하면 에베소서 5장과 6장에 이르는 가정교훈들이 이 서신이 쓰이게 된 시대적 배경과 가부장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본문에서 우리 현실에서 얼마나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본문으로 인용되고 있는지는 다음의 한 예가 잘 드러내준다.

몇 년 전 전남의 교회에서 여전도사님의 주선으로 여신도를 대상으로 6주간 여성신학 강좌를 실시하였다. 여성의 눈으로 성서읽기가 주 내용이었다. 교육이 끝난 얼마 후 그 교회 전도사님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편지 속에 주보가 한 장 들어있었다. 주보 뒷면에 가정주간 설교가 요약되어 있었다. 내용인즉 평화로운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에베소서 522절 이하가 본문이었다. 여신도들과 여성신학 공부를 한 바로 그 다음 주 설교였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는데, 설교로도 모자라서 다음과 같은 파견과 위탁의 말씀이 실려 있었다.

목사: 아내 된 여신도 여러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가정의 주인인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기독교가정에서 아내 된 자들의 본분입니다.여신도: ,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가정의 화묵을 이루겠습니다.

목사: 남편 된 남신도 여러분, 가장으로서 가정을 잘 다스리고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십시오.

남신도; ,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521-33절 결혼교훈의 가부장성과 평등결혼 문화를 향한 대안

 

한국교회에서 가부장적 가치관을 강화하고 있는 이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아내들은 주께 복종하듯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인고, 남편은 아내의 머리니까. 이 본문의 신학적 모델은 이미 고린도전서 113절에서 지시된 바 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은 골로새서 318절과 31절 이하와 병행구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 모두 당시 로마의 가정교훈인 가훈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로마사회의 윤리덕목인 가훈표를 교회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가부장적 가정규례를 복음적 규례로 전환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이 권고는 기독교인 아내들에게 말해진 것이다. 특히 모든 일에서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권고는 분명 여성의 종속적인 지위를 강조하고 있는데, 기독론을 통해 강화하고 있다. 비록 초대교회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하나(갈라디아 328)라고 주장하지만 결혼질서까지 당시 사회질서를 벗어날 수는 없었던 듯하다. 25절 이하의 본문을 통해 복종보다 남편이 그리스도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게 먼저라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본문이 갖고 있는 가부장성은 제거시킬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평등한 결혼문화를 위해서 가부장적 예식서를 평등예식서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에베소서 5장 경우처럼 로마의 가부장적 가훈표가 기독교에 전래되게 된 배경에 대해 의심의 눈을 돌리고 이 본문이 갖고 있는 가부장성을 비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혼예식에서 이 본문처럼 위계적 성차별을 조장하는 본문들을 사용하지 않고 평등적이고 여성의 주체성을 살릴 수 있는 다른 좋은 성서본문들을 결혼예식에서 선포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가부장적 성서본문 때문에 종속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 선배 여성들의 한과 고난을 회상하며 평등한 결혼문화와 가정문화가 이루어지도록 창조적인 작업을 벌이는 일이 필요하다.

 

                                                                                  199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