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현장과 신학

결혼 이주여성의 인권, 룻기에서 길을 찾다.

한국소금 2018. 3. 5. 20:30

결혼 이주여성의 인권, 룻기에서 길을 찾다.

 

한국염/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1. 들어가는 말

요즈음 한국에서 가족과 관련하여 가장 뜨는 용어가 다문화가족이라는 말이다. 정작 다문화가족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 또 그 가족의 구성주체인 여성결혼이민자나 그 가족은 소외된 채 다문화가족에 대한 논의가 가족 키워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한국국민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정말로 우리사회는 국제결혼가족을 다문화가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용하고 있는 걸까? 한국에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것이 있다. 처음 이 법이 설정한 소위 건강한 가정의 테두리는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핵가족이 정상가족이었다. ’건강한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한 부모 가족이나 장애가족‘, ’독신 가족은 건강한 가정에서 배제되었고,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건강한 가족이라는 개념 틀이었다. 진보 여성운동계에서 이 건강가정이 지향하고 있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건강가족 기본법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을 수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함에 따라 한 부모가족을 비롯한 여타의 가족이 소외가족의 형태로서 가족의 한 형태로 포함되게 되었다. 이 소외가족의 한축을 차지하는 것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뜨고 있는 다문화가족이다. 문제는 이렇게 다문화가족이라는 보기 좋은 말로 포장된 국제결혼 가정의 핵심 구성원인 결혼이민자들이 정작 다인종, 다문화 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시민으로서의 위상보다는 지원해야 되고 도와주어야 하는 복지대상으로서 주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국제결혼가정, 소위 다문화가족이 변화하는 사회의 정상 가족형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다문화가족이란 포장에 불과할 뿐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이등가족으로, 소외된 가족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문화가족을 말할 때는 무엇보다 다문화가족을 구성하는 그 구성원에 대한 존중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국제 결혼하여 들어 온 이주여성들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무시의 대상이다. 이렇게 된 데는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왜곡된 국제결혼이 중심에 있다.

 

. 국제결혼(다문화결혼)의 현황

 

1. 다문화가족 역사와 시각의 문제

 

1) 한국의 단일민족 신화

한국에서 국제결혼에 대한 편견은 단일민족 신화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실상 1000번 가까운 외국의 침략 속에서 소위 순혈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 민족사적 실상이다. 아무튼 현대적 의미에서 국제결혼의 왜곡된 시각은 한국전쟁 시에 소위 유엔군이 한반도에 상육하면서부터 미군으로 대표되는 유엔군과 한국여성의 한반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의 결혼은 긍정적인 의미 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자리 잡았고, 그로 인해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과 그 자녀들이 겪는 인권과 생존권 등의 고통은 오로지 그들의 몫으로 방기되었다.

2) 세계화와 국제결혼

그러나 1990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한국인과 아시아 인 사이에 행해지고 있는 소위 제2기 국제결혼에 대해서 한국사회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1990년 약 690명가량의 일본여성들이 통일교의 결혼시스템을 통해서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1995년부터는 한국농촌총각 구제명목 하에 중국동포 여성들이 대거 한국남성과 결혼해서 한국에 왔다. 2000년 무렵부터 범위가 동남아로 넓혀졌다. 필리핀, 구 소련계, 몽골, 태국, 등의 나라로 확대되었다. 2003년부터 국제결혼이 증가해서 2005년에는 국민결혼의 11.3% 8쌍 중의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하는 놀라운 증가를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국제결혼이 급속도로 증가하자 국제결혼은 국가에서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3) 부계혈동 중심의 가부정적 가족주의

그런데 숫자로 따져본다면 제1기 유엔군과 국제결혼한 한국여성의 수가 그렇게 작은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의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버려지고 잊혀 졌는데 왜 2기의 국제결혼은 국정현안과제로까지 부각되면서 부상되고 있는가? 또 한편으로 1988년 올림픽 이후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 온 이후 남성외국인노동자 결혼한 한국여성들도 상당수가 있는데, 이들에 대한 별다른 대책은 없었으면서 유독 한국남성과 결혼한 여성결혼이민자들과 그 자녀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한국인 혈통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주의 때문으로 판단된다. 주한 미군과의 결혼은 미국남성과 한국여성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여성과 자녀는 한국이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어서 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한국에 살고 있을지라도. 그래서 미군과 결혼하여 한국에 버려진 여성들은 기지촌 여성으로, 그 자녀들은 미국인 혼혈아로 내 팽겨져 인권과 복지사각 지대에 놓여졌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시작된 국제결혼은 주로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사이에 행해지고 있으며, 국민들은 한국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은 당연히 한국인으로,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한국인 2세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인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정책을 세운다. 한국 여성과 결혼해서 한국에 살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에 대해서는 특별한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한국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우리 사회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2. 국제결혼이 증가하는 요인

 

1) 국제적 요인

 

(1) 빈곤의 세계화

전 세계적으로 일 년에 185백 명 이상의 인구가 자기 나라를 떠나 이동을 한다. 이중 65-70%가 생계유지나 새로운 일자리의 추구 등 경제적 이유에서 이주를 한다고 한다. 이 경제적 요인에 기반한 이주의 증가는 "신자유주의 시장질서'에 의해 파생된 빈곤의 세계화에 그 원인이 있다. 각국의 개발정책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거센 물결은 저개발국가의 빈곤을 갈수록 심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노동력의 담보자인 노동자들이 국경을 넘는 이주를 하게 된다.

(2) 이주의 여성화 현상

한편 이러한 이주노동의 증가 현상에서 눈이 띠는 것은 여성의 이주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지구촌의 불평등적 경제구조는 상대적으로 빈곤의 여성화 현상을 유발하며, 이 악성적인 빈곤의 여성화가 이주의 여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2003Asian Migrant Year BookUNIFEM의 보고에 의하면 약 2000만 명의 아시아여성들이 타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스리랑카가 85%, 인도네시아가 70%, 필리핀이 69% 등 이주노동인구의 70% 이상을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이주의 여성화라고 한다. 이 흐름을 타고 아시아 여성들은 가사노동이나 공장노동, 성산업에서 일을 하며 때로는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를 하는 이주의 여성화현상이 나타난다.

(3) 아시아여성의 코리안 드림

그렇지만 여성의 이주가 단순히 빈곤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젊은 여성들의 결단이라는 측면도 있다.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정책으로 인해 아시아에서 한국으로의 이주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이주의 여성화 현상에 따라 결혼을 통한 이주를 생존과 꿈을 펴는 대안으로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경제적 상승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한국에서 나름대로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서 국제결혼을 택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국제결혼의 85%가 아시아 여성과 이루어지고 있다.

 

2) 한국사회 요인

 

첫째는 과거의 남아선호사상에 의한 왜곡된 성비례로 인해 결혼하지 못하는 남성의 수효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모든 여성은 결혼을 당연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였지만, 현재 여성들이 관습적인 결혼보다는 자아실현을 선호하고 있으며, 직장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의 경우 결혼으로 인해 빚어지는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인해 결혼을 기피하거나 늦게 결혼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결혼적령기를 넘긴 총각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셋째, 경제적 수준이나 문화적 여건으로 한국여성과 결혼하지 못할 입장에 처한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이고,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남성들 중에 한국여성과 결혼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총각들과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여성과 이혼한 남성들이 재혼의 대상으로 제삼세계 여성과의 결혼을 선택한다.

 

3. 상업화된 국제결혼 시장을 통한 매매혼적 결혼의 문제와 인권침해

국제결혼에서 가장 큰 문제는 매매혼적 국제결혼 과정에서 파생되는 여성의 상품화다. 이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국제결혼 관행은 국제결혼으로 이주해 온 여성들의 존엄성을 해침은 물론 이로 인해서 많은 인권문제를 야기 시킨다.

1) 가부장적 여성이미지로 상품화

현재 가난한 제삼세계 여성들과 한국남성들과의 국제결혼은 이미 전통적 개념의 결혼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상업화된 결혼시장을 통해 알선된다. 아시아의 여성이 가족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제결혼이 통용되고 있는 실정에서, 국제결혼시장을 통해 추진되고 있는 한국남성과 제삼세계 가난한 여성과의 결혼은 심한 경우 매매혼의 성격까지 갖고 있으며 사기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국제결혼중개업의 현수막이나 결혼 알선 사이트는 아시아 여성을 가부장적 이미지로 상품화 하고 있다. 결혼과정도 마치 성구매자가 구매할 여성을 고르듯 그런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결혼 결정권은 형식상은 남녀 모두에게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남성에게 선택권과 결정권이 있다. 일부 나라에서는 결혼알선업체의 중개에 의한 결혼을 법으로 금하고 있지만, 지하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이 결혼경비가 모두 남성이 지불하는 식이 되다보니 자칫 결혼하는 당사자의 한국가족이나 한국사회에 돈을 주고 사온 신부라는 인식이 자리매김하게 되고 이런 인식은 차별과 편견으로 이어져 인권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국제결혼 중개업체가 내건 인신매매성 현수막의 광고와 결혼중개업의 중개과정은 한국인들 뇌리에 국제결혼 이주여성을 돈 주고 사온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고착화시키고 있으며, 이주여성과 결혼한 한국남성 당사자들도 내가 돈을 들여 데리고 왔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하는 생각으로 이주여성을 동등한 배우자로서가 아닌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고는 곧 인권억압으로 이어지기 미련인 바, 그 배우자 여성은 가정폭력과 인격모독, 유기, 경제를 위한 노동활동 강요와 임금갈취 등,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경우를 볼 수 있다.

 

2)인권침해

 

(1) 가정폭력

결혼이주여성이 직면하는 가장 큰 인권문제는 가정폭력이다. 20073월 발표한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의하면 12%의 여성들이 가정폭력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우리 센터의 상담이나 이주여성 긴급전화 상담에 의하면 상담 내용의 35% 이상이 가정폭력에 관한 것이다. 이 가정폭력의 기저에는 남편들의 의처증이 깔려있고 이 의처증의 중심에는 10-30살의 나이 차이와 남편들의 경제적 무능력으로 인한 자신감 상실이 있다. 2005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의하면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가정 52.9%가 최저빈곤층이다.

 

(2) 유기와 인격모독

결혼이주여성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남편들이 아내를 버리는 경우다. 뚜렷한 이유 없이 이혼을 강요하는데, 합의이혼을 하면 이주여성은 강제출국대상이 되어버린다. 또한 성적 학대나 인격 모독, 남편의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이상 등으로 이혼할 경우, 이 범위는 가정폭력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그 여성 역시 한국에 거주할 수 없다. 한국의 체류법은 혼인파탄의 사유가 이주여성에게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귀책사유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3) 혼인파탄의 증가

지난 415일자 발표된 대법원 등기호적국의 국제혼인 현황에 따르면 2006년 국제결혼 건수가 전체 국민 결혼의 11.6%를 차지하는 반면, 국제결혼 이혼율도 해마다 증가해서 20031.6%에서 2006년에는 4.9%3배 가량 늘었다고 한다. 특히 농촌 지역이 도시보다 이혼률이 높은데 이렇게 농촌 지역의 국제이혼 비율이 높은 것은 결혼방식이 신랑이 모든 비용을 대고 한국보다 어려운 나라에서 신부를 데리고 오는 방식의 매매혼적 결혼을 그 근본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사회문화적 차이가 갈등의 요인으로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매매혼적 결혼이 아시아 배우자에 대한 학대와 유기, 착취 같은 가정폭력을 유발하고 그 결과 이혼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다문화가족의 안정을 위해서는 매매혼적 국제결혼의 문제 해결과 성평등적인 다문화 사회로의 인식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3) 한국사회 적응문제

 

(1) 여성결혼이민자들은 문화적 차이와 의사소통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말이 안 통하니까 한국에 와서 가족들이 특별한 배려가 없다면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여성결혼이민자들이 한국어를 모르는 것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에 한국어 교육은 한국생활 적응은 물론이고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일차적인 과제다.

(2) 한국사회는 이미 21나라 이상과 결혼 관계를 맺고 있어 이미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보의 정책이나 국민인식을 보면 다양성을 수용하기 보다는 한국문화로의 동화주의를 강조한다. 특히 국제결혼 해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여성의 경우, 일부 나라를 제외하고는 구사회주의권 나라 출신으로 한국보다 양성평등적인 가족구조와 가족문화를 갖고 있다. 이 여성들의 문화가 존중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 수용을 강요당하는데서 문화적 갈등이 일어나고 이 갈등이 혼인파탄의 주요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문화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주여성들에게 한국문화를 강요하다보면 자칫 가부장적 가족문화를 강요하는 것이 됨으로 이주여성에게 한국의 생활문화를 익히는 기회를 주되, 오히려 한국가족의 의식을 바꾸어 평등가족문화를 형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4)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

현재 45천명에 이르는 다문화가정의자녀들은 혼혈인이라 하여 차별을 당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가정이 빈곤하기 때문에 성장에 필요한 지지를 충분히 받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다문화가정의 자녀에 대한 차별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는 사회적 인식 개선 작업과 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 국제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성서적 응답

 

1. 국제결혼에 대한 성서의 입장

성서에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다 함유되어 있다. 부정적인 면은 이방인을 로 경멸한 태도에 대한 것과 국제결혼을 피가 부정해 진 것으로 간주하는 이스라엘 민족 중심의 배타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구약 초기 원래 공동체의 정신은 국제결혼에 대해 전혀 배타적이지 않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고 선택적이었다. 족외혼과 동족혼인이 교차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우러러 보는 요셉과 모세는 이방 여인 즉 다른 부족의 여인과 결혼했으며, 기드온이라는 민족의 지도자 역시 가나안 여인과 결혼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여인이나 가나안 여인, 헷 족속, 암몬, 모압 족속 등 다양한 족속과 결혼을 하였다. 라합이나 룻 등의 여성이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족보를 형성하고 있다. 다윗왕의 경우 밧세바와 결혼할 때 강한 반대에 부딪쳤는데 그것은 밧세바가 헷 족속이었기 때문에가 아니라 부하의 아내를 빼앗은 탓이었다. 타민족과의 결혼이라서 해서 야훼의 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물론 타 부족 간의 결혼을 반대한 경우도 있으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이런 족외혼 소위 국제결혼이 가능했던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때로는 이민족 사이에서 사는 기간 동안에, 때로는 주변의 혼합 민족과 경제적 문화적 상호교류를 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배타적인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나타난 것은 민족사적 아픈 경험에서 기인한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점령한 시리아가 사마리아를 붕괴시키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혼인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흩어버리려 했던 민족사적 경험이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이 성전을 회복하고 민족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국제 결혼한 이들에 대한 숙청을 자행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사회에서는 타민족과의 결혼을 페지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에 보면 (에스라 10,5. 느헤미야 13) 보면 남왕국 유다 재건과정에서 이방인 아내를 다 내좇고 핍박을 했는데, 이는 종교적 이유 때문이었다. 종교지도자들은 타민족과의 결혼을 통해 이스라엘을 결속시키고 있는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붕괴하고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파괴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타민족과의 혼인은 일관되게 배타되거나 긍정된 것이 아니라 민족이 처한 상황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한편 성서에는 매매혼에 대한 경우가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창세기 3115절에서 레아와 라헬은 자기의 남편 야곱에게 자기 아버지 라반이 자기들을 팔았다고 분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팔았을(마카르) 뿐만 아니라 우리 몫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야곱은 아내를 얻기 위해서 14년간 장인에게서 머슴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신부를 얻기 위해 신부에게가 아니라 신부 부모에게 물품을 건네주거나 예물을 주기도 한다(창세기 3412). 성서에서는 아내를 얻기 위하여 남편이 아내 될 부모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모하르라고 한다. 귀중품이나 땅, 패물로 모하르를 삼는 경우도 있었고, 가난한 경우 신부의 아버지가 원하는 일을 이루어 주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그 전형적인 경우가 다윗이 미갈과 결혼하는 값으로 블레셋 사람을 100명 죽인 일이다. 그러나 비록 성서에 매매혼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타나고 때로는 몸값을 뜻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매매혼은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몸값을 지불하는 것과는 맥락이 다소 다르며, 지금 한국의 국제결혼상에서 일어나는 매매혼적 결혼의 성격과도 일치하지는 않는다.

 

성서에서 매매혼적 국제결혼을 살피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제결혼의 이상적인 모습과 더불어 국제 결혼한 이주여성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룻기를 통해서 그 본보기를 볼 수 있다.

2. 룻기를 통해 본 이주여성 인권옹호 실제

룻기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살이 이후 주전 5세기 중엽에 씌어진 작품으로서 국제결혼에 배타적인 느헤미야나 에스라서와 달리 외국인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서로 평등하게 자유로이 사는 것이 올바른 공동체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룻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모압 여인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이주 노동자로 일하다가 나오미의 주선으로 친척 보아스를 만나 결혼을 한 이방인 여성을 을 주인공으로 한 본문으로 우리가 이주여성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좋은 귀감이 된다. 전통적으로 룻기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거나 이방인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선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이 룻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인종차별, 민족차별, 계급차별, 성차별을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한국사회가 국제 결혼하여 우리 땅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을 어떻게 돌보고 보호해야 하는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1) 아름다운 고부상

 

국제결혼으로 이주어진 가정사의 한 형태로서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첫째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연대와 자매애의 모습이다.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가족이 유다에 기근이 들자 모압으로 이주를 한다. 거기서 두 아들이 각각 모압여자와 결혼을 해서 살다가 죽었다. 마침 그 무렵에 유다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시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데리고 유다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시어머니 나오미는 따라나서는 며느리들을 말리며 친정으로 돌아가 둘 다 새 남편을 맞아 보금자리를 꾸미라고 한다. 첫째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한사코 돌아가서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말리자 친정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자 이렇게 말하며 나오미를 따라 나선다.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니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어머님이 눈을 감으시는 곳에서 저도 눈을 감고 같히 묻힐 랍니다. 죽음밖에는 아무도 저를 어머님에게서 떼어놓지 못합니다(룻기 116).

이토록 룻이 끝내 따라나서겠다고 하자 나오미는 더 말리지 못하고 함께 길을 떠나 유다로 향한다. 며느리들의 앞날을 위해 친정으로 돌려보내려 하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며느리에 대한 사랑, 끝까지 어머니를 따라나서려고 하는 며느리들의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려 한 며느리들의 태도는 본문에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가 밑받침이 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결속은 국제 결혼한 한국 가정에 좋은 귀감이 될듯하다. 국제 결혼한 이주여성들은 남편하고의 관계도 문제지만 시어머니, 시누이와 많은 갈등관계에 부닥치고 있다. 나오미처럼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행복을 고려한다면 갈등의 소지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다음으로 며느리 룻이 보여준 자세다. 룻은 고향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힘없고 소망을 잃은 한 여성의 편에 서기로 한다. 다른 여성의 편에 서기 위해서 룻은 일신상의 편안함은 물론 민족과 종교까지도 포기한다. 자칫 룻이 자기의 신을 버리고 나오미의 하나님을 선택한 것에 대해 기독교우월주의를 내세우거나 시집을 왔으면 시집종교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룻이 나오미의 고향을 자기 고향으로,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기로 한 것은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맹목적으로 따른다거나 기독교의 우월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나오미와 함께 떠나는 룻의 이야기는 진정한 연대란 힘 가진 자가 약한 자의 편에 서서 철저히 자기 것을 포기하는 데서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국제 결혼한 한국가정에서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 힘을 가진 한국 가족이 소외된 이주여성을 보듬어 안고 지지하고 격려하는 연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2) “함께 밥을 먹읍시다 .”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이스라엘에 온 룻은 생계를 위해 이삭줍기를 나간다. 그 밭은 먼 친척으로 있는 보아스라는 사람의 밭이었다. 보아스가 룻을 누구냐고 묻자 일꾼들은 룻을 나오미의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이방여인인 모압 여인으로 소개한다. 보아스는 룻에게 말한다.

우리 밭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줍도록 하시오. 남자 일꾼들에게 댁을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겠소. 목이 마르거든 주저하지 말고 물 단지에 가서 물을 마시시오.“

보아스가 룻의 이삭줍기를 허용한 것은 이스라엘민족이 지켜야 할 약자보호법의 전통에 근거한 것이다. 이스라엘민족에게는 이주민보호를 위한 약자보호법을 지킬 의무가 있었는데 추수법과 십일조 법, 첫 열매를 드리는 법등 세 종류의 법이다. 신명기 1428-29, 2419-22, 2611-19, 레위기 199-10, 19-22, 에 의하면 이삭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다. 이스라엘은 추수할 때 이삭을 싹 훑어 자기 집에 가져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 추구한 곡식 한두 단을 잊어버리고 왔을 경우 다시 찾으러 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 곡식단은 가난한 과부나 고아, 외국인을 위한 몫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그 공동체에서 가장 힘이 없는 이주민, 과부, 고아는 공동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데 이들의 보호와 하나님의 복은 서로 직결되어 있다. 약자 편에 서계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가난한 이들이 이삭을 주을 수 있도록 남겨놓는 전통을 만들었다. 이렇게 율법은 소외된 이주민을 보호할 것을 법으로 규정해 놓은 데서 한 걸을 더 나아간다.

너희 동족 가운데, 아주 가난해서, 도저히 자기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너희 곁에 살면 너는 그를 돌봐주어야 한다. 너는 그를 나그네나 임시거주자처럼 너와 함께 살도록 해야 한다(레위기 25:35). ”

이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이주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가난한 동족을 보호하듯이 이주민을 돌보아주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자기 동족을 이주민처럼 잘 대우하라고 할 정도로 이주민 대우가 약자보호의 이상형으로 나타나 있다.

 

보아스는 이 약자보호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데 끝나지 않고 약자보호법의 정신을 살려 점심시간이 되자 룻을 불러 음식을 넉넉하게 나눠준다.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룻을 괴롭히지 말고 오히려 단에서 이삭을 조금씩 뽑아 흘려 룻이 이삭을 넉넉하게 줍도록 배려한다. 이렇게 친절한 보아스의 태도에 룻은 이렇게 말한다. “저를 이처럼 위로하여 주시니 보잘 것 없는 이 몸이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룻이 낯선 나라에서 이삭줍기를 한 것은 생계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생계 때문에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그들의 나라를 등지고 우리나라에 노동자로, 국제결혼으로 이주를 한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회는 이들에게 그들의 생존문제를 배려하기 보다는 온갖 폭력을 행사하고 불법체류자임을 미끼로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또한 돈을 들여 데려왔으니 내 마음 대로 해도 된다고 마구잡이로 대한다. 우리도 보아스처럼 이주민들에게 용기를 주는, 친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3) 성적 착취와 성의 상품화에서 보호

보아스는 룻에게 이삭줍기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 마실 것을 주었으며, 그의 일꾼들에게 룻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여기에서 일꾼들이 괴롭힌다는 말은 룻에게 성 희롱이나 성적 착취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보아스의 이런 행동은 이주민의 생계를 보장함은 물론 여성의 성을 함부로 짓밟지 못하도록 보호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 공동체의 법정신임을 깨우쳐 준다.

우리나라에서 이주민 여성들은 가정폭력, 성폭력의 위협 앞에 노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상품화 현상 속에서 성매매의 함정이 이들 이주민 여성들 앞에 도사리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기지촌에는 85-90% 이상이 한국여성에서 이주여성으로 대치되고 있는 실정에서 유흥가, 밤거리에까지 성과 관련된 직종에 이주민이주여성들이 내몰리고 있다. 이주여성 성매매의 국제화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한편 국제결혼으로 이주하는 여성들은 그 과정에서 국제결혼 중개업에 의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되어 성차별과 인종차별적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보아스가 모범을 보여주었듯이 이주여성들의 성을 착취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일에, 이주여성들을 성의 상품화에서 존엄한 인간으로 대접하는 일에 한국 교회가 나서야 할 것이다.

4) 자기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도록 도와

룻이 돌아와 그날 있었던 일을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말하자 나오미는 룻의 행복을 위해 보아스와 룻을 결혼시키려고 한다.

룻은 나오미의 계획에 따라 밤중에 보아스의 발끝에 가서 살며시 눕는다. 보아스가 누구냐고 묻자 룻이 대답한다.“접니다. 어른의 품에 저를 안아주십시오. 어르신은 속량자로서 저를 맡아야 할 분입니다.” 영어번역에 의하면 하나님의 법에 따라서 저를 당신의 부인으로 삼아주십시오라고 되어있다. 룻의 이러한 행동은 신명기 255-10절의 자식이 없이 남편이 죽었을 경우 죽은 형의 동생이 형수를 맞아들여 그 형의 후손과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는 레비라토율법에 근거한 것이다. 룻기에서는 이 레비라토 율법을 직계 형제가 아닌 집안 친척에게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가난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률의 한계가 없음을 뜻한다.

룻과 나오미는 보아스에게 레비라토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나오미와 룻의 이러한 자세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그저 가진 자들, 힘 있는 자들의 자선이나 처분만 바라서는 안 됨은 물론 자기들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용기와 지혜로 나서야 함을 뜻한다. 인권이 무시되는 불의한 사회에서의 권리회복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에서 비롯됨을 룻과 나오미가 가르쳐준다. 이주민의 권익보호 문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산업연수생으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에 대해 항의했을 때 처우개선이 된 사례가 있다.

지금 한국에는 이주여성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들이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이주여성들의 인권이 향상되도록 법을 개정하고 국민 의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계가 있다. 룻과 나오미처럼 이주여성 스스로가 일어서야 한다. 이주여성과 함께 하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주여성이 자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4) 법을 제정하고 악법을 바꾸는 일에 앞장

나오미와 룻의 소망을 안 보아스는 나오미 집안의 유산지분으로 있는 땅을 속량시키고 이를 통해서 레비라토법을 이행하려 한다. 레위기 2524-28절의 속량법에 의하면 누가 가난하여 땅을 팔 경우 가까운 친척이 사서 나중에 형편이 좋아질 경우 되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 능력이 없어 되살 수 없다 해도 희년에는 되돌려주어야 한다. 보아스는 이 법에 따라 나오미의 제일 가까운 친척을 찾아가 나오미가 팔려고 내어놓은 땅을 사라고 한다. 그 친척이 사겠다고 하자 그 땅을 사는 대신 룻에게 레비라토법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오미에게서 밭을 넘겨받는 날 당신은 고인의 아내 모압 여자 룻도 떠맡아야 하오. 그리하여 고인의 이름을 이어 그의 유산을 차지할 사람을 낳아주어야 하오.” 그러자 자기 재산만 손해 볼 것 같아 그 친척은 자기 속량자의 의무와 그 권리를 포기한다.

그러자 보아스는 나오미의 땅을 사기로 하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마홀론의 아내 모압 여자 룻까지도 유산과 함께 아내로 얻었습니다. 나는 고인의 이름을 이어 그 유산을 차지할 사람을 낳아주어서 고인의 이름이 그 형제들과 함께 남아 이 고장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본래는 별개인 속량법과 레비라토법을 서로 뒤섞어 적용하고 있다. 이 상황은 우리에게 힘없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어떤 법 보다 우선하며 또한 가난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률마저 바꿀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4) 인종편견을 거부

이주민의 유입에 따른 국제결혼으로 야기되는 문제가 많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현재 남자 중심으로 되어있는 한국가족법에 따른 고통이 이주민들을 괴롭힌다. 법도 법이지만 배타적인 인종편견을 갖고 있는 한국인의 의식이 더 큰 문제다.

룻기는 이 인종적 편견을 거부한다. 나오미는 이주민 여성을 며느리로 맞았으며 그 며느리와 일심동체를 이루어 산다. 보아스는 이방여인과 결혼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 이방여인이 결국 이스라엘의 민족의 중심이 되는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었고 예수의 조상이 되었다.

룻과 나오미의 관계는 국제 결혼한 고부간의 아름다운 관계의 좋은 모델이다. 나오미는 며느리 롯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의 안녕을 위해 힘을 쓴다. 그리고 같은 여성들로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연대는 새 날을 여는 원동력이 된다. 국제결혼해서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은 남편과의 관계 보다 시어머니, 시누이와의 갈등으로 더 큰 고통을 당한다고 호소한다. 한국 가족의 전형적인 갈등구조를 이주여성들이 고스란히 겪고 있다. 그 기본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며느리라고 무시하기 대문일 것이다. 나오미와 룻 같은 그런 관계를 형성할 수는 없는 걸까?

 

 

나가는 말-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 사회의 인권지수는 그 나라에서 가장 차별받는 계층의 인권실태로 가름한다고 한다. 이주여성은 우리사회의 인권잣대다.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고 우리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오미와 룻이 행한 자매정신, 보아스가 룻에게 한 나그네보호 행동을 우리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국제결혼 이주여성을 비롯한 이주민들이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공동체적 사고를 회복해야 한다.

세계인권조약은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고 선언하는데, 이 조약의 근거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한 사람”(창세 1,27 참조)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주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인권정신을 인지하고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요, 교회에서는 이주 여성도 하느님의 형상이므로 차별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대책을 세우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25장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나그네를 돌보는 것이 예수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요, 반대로 나그네를 돌보지 않은 것이 곧 예수 자신을 돌보지 않은 것이라고 하시며 나그네를 돌볼 것을 명령하신다.

사도 바울은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 28)라고 선포하고 있다. 이는 바오로의 독창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초대교회 당시의 세례 고백문이다. 이런 고백을 해야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고백문은 구체적으로 인종 차별, 계급 차별, 성차별의 금지를 선포한다. 그런데 이주 여성에 대한 차별은 삼중의 범주에 모두 해당되고 있다. 따라서 이주 여성을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지상 명령과 같은 것이다.

베드로서 211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둔 시민으로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서의 삶을 사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늘나라의 나그네로서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나그네를 형제자매처럼 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추상적인 하나님의 가족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국인과 이주민이 하나라는 고백, 이주여성들이 내 가족이라는 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  이 글은 2008년 가톨릭 우리 신학연구소에서 발행한 잡지에 게재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