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들의 사색터

오실 그분, 예수가 하신 일은?

한국소금 2019. 3. 25. 17:04

오실 그분, 예수가 하신 일은?

 

오늘은 총회가 제정한 선교주일이다. 이 날은 우리 교단이 출범한 것을 기념하면서 교단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교를 다짐하는 날이다. 그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신학에 입각하여 세상의 구원을 위해 노력해 왔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방주라는 상징으로 이해되었다. 세상은 망할 곳이니까 구원의 방주인 교회에 들어와야 한다, 그러므로 교인 한 사람을 만드는 것, 즉 전도가 매우 중요했다. 그러다 세계 일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각성이 일어났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상처입은 세상을 보면서 이 세상은 망할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시면서가지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하시는 곳이라는 깨우침이 생겼다. 이 세상에서 교회는 방주가 아니라 구조선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자각이 생겼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상징이 배인 것은 바로 이 교회관의 전환 때문이었다. 교회상이 변했지만, 여전히 선교의 주체는 교회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60년대 후반에 와서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 선교론은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서 구원의 사역을 하신다고 믿고 우리는 그 분의 선교역사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선교신학은 고통 받는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교단은 세상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창조된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 이들을 억누르는 불의에 항거하여 정의, 평화, 사랑, 창조질서의 보전을 위해 관심을 갖고 다방면으로 노력하여 왔다. 그래서 우리 교단은 예언자의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한 교단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 우리 교단은 급격한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와 함께 했던 소위 운동권들이 모두 자기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여 더 이상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우리보다 앞장서서 세상에서 불의에 항거하고 평등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그리고 지구의 존속을 위한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는 지금 우리 교단이 삼천교회라는 수에 집착하고 있는 지점에서, 사회 운동이 발전하면서 많은 민중교회들이 사회운동동권과 결별했거나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지금, 과연 교회로서 자기 정세성이 무엇인가 되묻게 된다.

 

과연 우리에게 예수는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 동안 민중교회로서 민중의 아픔을 직시하면서, 탁아방과 공부방을 열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지 않은 노력들을 해 왔고, 또한 노동자 중심의 민중교회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면서 언제나 오늘 우리 사회에서 민중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물었다. 마침 중국인들이 우리 교회로 피신온 사건을 계기로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이라고 생각해서 외국인노동자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외국인노동자선교는 민중교회로서의 청암교회의 정체성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 교회의 중심이어야 할 노동자교인들이 하나 둘, 교회를 떠났다. 아직 돌봄이 필요한 교인들이었는데, 교인들의 선교적 역량이 채 성숙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목회자의 욕심으로 외국인노동자선교를 시작한 데서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본다. 청암교회 교인으로는 외국인노동자선교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몇 사람과 실무자들만 남아 있는 게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시점에서 교단 선교주일을 맞아 우리의 선교현장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선교 때문에 기장이 발전안되었다고 패배주의에 빠져 대교회주의, 물량주의로 가고 있는데, 아주 작은 교회로서 우리의 선교방향은 옳은 것인가? 청암교회 공동체와 구성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다시금 하게 된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은 바로 그런 질문을 하고 있다. “오실 그 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요한은 헤롯의 불의에 항의하여 감옥에 갇혀 있었다. 요한은 그러한 세상을 구해줄 메시아를 간구하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예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을 들었다. 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때, 그 분이 메시아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 바로 그분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단순히 듣는 것만 전한 것이 아니다. 직접 본 것을 알려주라고 하셨다.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신 누가복음 418절의 말씀 그대로이다. 외롭고 괴로운 사람들, 차별받고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들, 보고 듣지 못하면서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 깨어지고 비뚤어진 인간들을 사랑으로 치유하여 온전케 하는 것이 예수님의 공약이고 삶의 모습이다.

 

예수는 바로 이런 분이다. 이런 예수를 만나고 그 예수가 하신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교회의 역할이요 선교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 믿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믿음으로 힘을 얻고 흔들림 없이 우리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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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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