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와 지지가 불러 온 특별한 선물
뉴욕의 한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졸업을 앞 둔 학생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한 명씩 교실 앞으로 나오게 해 껴안아 주면서 각작 반에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를 설명하였다. 그런 다음 아이들에게 파란 리본 하나씩을 달아주었다. 리본에는 “당신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입니다.”하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세 개의 파란색 리본을 더 준 다음 그것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달아주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일주일 뒤에 그 결과를 써내도록 했다.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은 학생들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에게 이 리본을 선물할 것인지 고민스러웠다. 한 학생은 학교 근처에 있는 회사의 부사장을 찾아갔다. 언젠가 자신의 진로문제에 대해 친절하게 상담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부사장의 옷깃에 파란 리본을 달아준 다음 두 갱의 리본을 더 주면서 말했다. “이건 저희 선생님께서 생각해내신 일인데, 이 리본을 부사장님께서 존경하는 특별한 사람에게 달아주세요.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 사람의 특별한 사람에게 달라주게 하세요. 대신 그 결과를 일주일 뒤에 저에게 꼭 말씀해주셔야 해요.”
그날 오후 부사장은 사장실로 올라갔다. 사실 그 회사 사장은 직원들 모두에게 지독한 인물로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허지만 부사장은 사장에게 다가가 사장이 가진 천재성과 창조성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사장은 무척 놀란 듯이 보였다. 부사장은 파란 리본을 꺼내면서 감사의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장은 당황하면서도 기쁘게 말했다. “아 정말 고맙소.” 부사장은 파란 지본을 사장의 가슴에 달아주고 나서 나머지 한 개의 리본을 더 꺼냈다. 그리고는 말했다. “제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시겠습니까? 이 여분의 리본을 사장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특별한 사람에게 달아주십시오. 사실은 한 학생이 이 라본을 가지고 와서 제게 건제주면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간 사장은 열일곱 살 난 아들을 앉혀놓고 말했다.
“오늘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나한테 일어났단다.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부사장이 들어오거니 내가 대단히 창조적이고 천재적인 인물이라면서 이 리본을 달아주더구나. 그동안 나에게 불만이 많았을 텐데, 나더러 창조적이고 천재적이라는 거야. 그리고 여분의 리본은 하나 더 건제주면서 내가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달아주라고 하더구나. 퇴근길에 집으로 오면서 누구에게 이 리본을 달아줄까 생각해봤지. 그러다 널 생각했어. 난 너에게 이 리본을 달아주고 싶다. 이어서 그는 말했다. “난 사업을 하느라 종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그래서 집에 오면 너한테 별로 신경을 써주지 못했어. 이따금 성적이 떨어지거나 집안을 어질러놓은 것이 대해 고함이니 지르고... 허지만 오늘밤 난 네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넌 나에게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이야. 네 엄마와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지. 넌 훌륭한 아들이고, 난 널 사랑한단다.”
놀란 이들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들은 온몸을 가늘게 떨며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본 아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아빠, 사실 저는 자살을 결심했었어요. 모두가 저를 미워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거든요. 그런데 아빠가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았으니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아빠. 정말 사랑해요.”
이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책 속에 실린 ‘뜻밖의 선물’이라는 글 내용이다. 인정과 지지, 격려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격려와 지지는 죽을 사람도 살리는 큰 힘을 갖고 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 이야기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우리는 대림절 한 복판에 서 있다. 대림절 신앙의 중요한 사항 중 하나가 아기 예수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고백이다. 성서는 마리아가 성령에 의해 예수를 잉태했다고 증언하고, 마리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예”하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으시고” 라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이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은 그 마리아가 유대 산골에 있는 엘리사벳을 방문한 이야기다. 북쪽 나사렛에서 남쪽 유다 산골에 있는 엘리자벳을 찾아갔다는 것은 마리아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잘 말해준다. 당시에 처녀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 죽는 게 법이었다. 비록 자신이 임신한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라고는 하나, 약혼자 요셉이 받아들였다고는 하나, 마리아에게 왜 고뇌가 없고, 고통이 없었겠는가?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서 엘리사벳을 찾아간 것이다. 뜻밖에도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은 복받은 자다. 당신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위대한 분이고, 거룩한 아이다.” 하는 축복의 인사를 들려준다. 이런 엘리사벳의 격려를 받고 부른 노래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마리의 노래다.
“내 마음이 주를 찬양하며
내 영혼이 내 구주 하나님을 높임은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
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내 마음이 주를 찬양하며” 로 시작한다고 해서 마그니피캇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리아의 노래에는 엄청남 내용이 들어있다. 독재자들은 마리아의 노래에는 ‘혁명을 일으키는 균’이 있다고 믿고 이 노래를 무서워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노래에는 혁명의 물결이 있다. 마리아는 현재 지배질서의 역전을 노래한다. 하나님은 권세 있는 자들의 힘을 꺾으시고 약한 자를 일으키신다. 주린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며 부요한 자를 내치신다. 낮은 자를 들어 높이신다. 구체적으로 억압 속에 살고 있는 여성, 정치적으로 눌려 지내는 힘없는 백성, 경제적으로 착취당해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세상을 노래한다. ‘빽’ 없는 사람들이 기 펴고 살 수 있는 사회,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가 해결되고 부자가 더 이상 부를 축적하지 못하는 사회를 노래한다.
엘리자벳의 격려를 받고 부른 마리아의 노래가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는 귀한 존재임을 노래한 것이다. 사실 마리아의 입장에서 아무리 천사의 일러줌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혼도 안한 여자 입장에서 임신을 한 처지에서, 처녀가 임신했다는 질시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벳의 격려는 마리아에게 자신이 임신한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 수 있게 하였다. 엘리사벳의 격려와 지지를 통해 마리아는 자기가 잉태한 아기, 메시야가 가져 올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비전을 노래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격려와 지지, 연대가 가능할까? 무엇보다도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엘리자벳은 갈릴리 북쪽 끝에서 유대 남쪽 끝에 살고 있는 자기를 찾아 온 마리아를 보고 마리아가 곤경 속에 처해있다는 것을 감지하였다. 임신한 마리아의 모습을 보고 마리아의 문제를 직감하였고, 그래서 뱃속의 아기가 위대한 분이 될 것이라고 축복함으로 마리아를 곤경에서 해방받게 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면 결코 마리아가 그런 해방의 노래를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격려와 지지, 연대는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수용하는데서 비롯된다. 어머니가 자존감이 없으면 그 엄마의 아이도 자존감이 없고 문제 인물이 된다는게 심리학자들의 말이다. 이런 자존감은 주변의 격려와 지지를 통해서 세워질 수 있다. 청암교회 교인들이 먼저 자기 가족들, 교인들을 지지하고 격려함으로 자존감을 심어주고 미래의 세상에 대한 꿈을 갖게 하자. 자식들에게, 배우자에게, 교인들 서로에게 “당신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하는 지지를 보내자. 다음으로 우리가 눈을 돌려 보면 우리 주변에 우리의 격려와 지지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엘리자벳과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마리아를 향한 엘리자벳의 격려와 지지, 연대는 어떤 사람들과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첫째는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끼라의 연대다. 엘리사벳도 인간적으로는 상상못할 아이를 임신한 여성이다. 마리아 역시 그렇다. 임산부인 엘리사벳이 같은 임산부인 마리아에게 해 주는 격려, 그 격려를 받고 부르는 마리아의 노래는 연대와 자매정신의 좋은 본보기다.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격려를 해주는 일,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 주는 일은 어떤 큰 일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이 격려와 지지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된다. 엘리자벳의 격려를 받고 마리아는 자기가 꿈꾸고 바랐던 세상, 메시아가 가져 올 해방의 새 날을 노래할 수 있었듯이,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목표를 가진 청암교인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지지하고 격려하고 연대한다면 이 청암교인들을 통해 평화의 세상이 열릴 것이다.
또한 연대는 같은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입장이 다르고 삶의 자리가 다른 사람들과도 연대를 이룰 수 있다. 마리아는 나사렛에 사는 일개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엘리사벳은 제사장의 부인이었다. 삶의 자리가 다르다. 이렇게 삶의 자리가 다름에도 엘리자벳은 힘들어 찾아 온 마리아를 격려한다. 입장과 처지가 다른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격려했듯이, 그 일을 통해 새날을 이루는 일에 힘을 주었듯이, 우리 청암교인들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지지하는 일은 이웃에 큰 힘이 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큰 힘이 된다. 마리아의 노래는 이런 형제자매애와 연대를 통해 변화가 일어남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미혼모, 이주노동자와 난민들, 결혼이주여성들,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성매매피해 여성들, 비정규노동자들과 청소노동자들, 남자와 여자,...우리 주변에 우리의 격려와 연대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격려와 지지, 연대는 지금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날 힘을 주고 고난을 극복할 힘을 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했듯이 연대성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찌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성탄절 기쁜 소식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희망없이 사는 이들, 고통받는 이들, 작은 자들과 함께 하는, 작은 자들을 격려하고 지지하고 연대하는 이야기다. 우리와 연대의 징표로 오신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이 대림절에 우리도 우리의 인정, 격려, 지지, 연대의 마음을 표현해보자. 작게는 우리 내 가족에서, 청암식구들에게, 직장돌료들, 이웃들, 오랫도록 소원했던 지인들에게 당신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는 칭찬으로 기를 살리게 하고, 그로서 작은 기적을 일으켜 보자. 격려와 지지라는 뜻밖의 선물을 전하는 대림절 한 주를 보내자.
이 글은 2020년 대림절에 청암교회에서 한 설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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